K는 우리 회사 부스의 통역을 맡았다. 그녀의 한국어는 음절마다 조금씩 끊기져 조금 부자연스러웠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그녀는 거의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했다. 그녀는 14살 때부터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는 공동체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녀는 전주에서 일반 대학교와 직업교육을 하는 전문학교를 동시에 다녔다.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여 생활비를 보탰다. 고된 생활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공동체에서 몸에 익힌 성실함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두 달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유지는 K가 한국에 가면 그곳에서 공부하여 자리를 잡고 다시는 캄보디아로 돌아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달 전에 아버지의 유지를 어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온라인으로 알게 된 한 남자가 있었다. 그 캄보디아 남자는 한번 만난 적도 없었지만 외로운 타국에서 그녀의 의지처가 되어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슬픔에 잠겨있던 그녀에게 그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파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교회에서 돈을 빌렸다. 주변에 십여 명의 지인들에게도 돈을 빌려 그 돈을 남자에게 송금했다. 돈을 받자 남자는 돌변했다. 그녀가 사기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감옥에 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모두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다. 당장 돈을 갚지 못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이 슬펐고 그놈은 그 슬픔을 이용했다. 그녀는 이제 슬픔에 더해 좌절하고 미안하고 분노했다. 그 복합적인 감정은 결국 자책과 더 큰 슬픔으로 모아졌다.
사람들은 그녀가 그들을 사랑했던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자기의 돈을 돌려달라 요구하기보다는, 그녀에게 괜찮다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기다리겠다고 말해 주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려 어려운 사람들의 돈을 빌렸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큰 어려움에 처했다. K는 자기가 자란 캄보디아의 선교 공동체의 보증으로 한국에 왔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그녀이다. 하지만 금전의 문제가 세간에 알려지면 공동체의 신용에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해 공동체 후배들이 더 이상 한국에 오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녀는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K는 크리스천이다. 11살 크리스마스날, 선물을 받으러 한국인 선교사가 세운 교회에 갔다. 선물은 모두 떨어져 그녀를 위한 선물은 남아있지 않았다. 선교사의 딸은 그녀에게 다음 주일 교회에 오면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주일에 그녀는 사탕을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제가 받은 진짜 선물은 주님과 만나게 된 것이었어요. 그녀가 말했다. 14살, 여자는 집에서 자라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K는 선교 공동체에 들어갔다.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된 학습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많은 이들이 포기했다. K도 더 이상은 무리라고 포기하려 했을 때 선교사 선생님, 그녀의 두 번째 엄마는 그녀를 잡았다. 너는 공부를 더 해야 돼.
K의 아버지는 중국 사람이고 그의 직업은 무당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네 번째 부인이 낳은 딸이다. 첫 번째 부인은 전쟁 중에 죽었고 두 번째 부인은 병으로 죽었다. 세 번째 부인은 밭에 일하는 남편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길에 도적의 칼에 목이 잘리어 죽었다. 예순에 가까운 아버지는 네 번째 부인을 만났고 K를 낳았다. 딸이 교회에 간다고 하였을 때, 집을 떠나 살며 공부를 한다고 하였을 때 무당인 아버지는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기의 시대를, 자기를 이기고 어린 딸을 집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K는 지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절반 밖에 마치지 못한 학업을 마치기 위하여서가 아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자기를 믿고 돈을 빌려준 교회와 지인들의 돈을 갚을 수 있고 고향의 어머니에게 생활비도 보탤 수 있다. K는 캄보디아로 돌아와 한 한국 회사에 취직했다. 일을 하며 외국인 연수생으로 한국에 취업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여 빚을 메꾼다. 슬플 겨를도 없다. 자책할 여유도 없다. 사람들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하여 그녀는 힘차게 나아간다.
공동체에는 그녀 또래의 아이들이 모여 살았다. 다툼이 많을 나이다. 싸움이 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싸우면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해야 해요. 난 네가 이러이러해서 기분 나빠. 화가 나, 안 그러면 좋겠어. 그래도 안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께 간다고. 선생님은 항상 너희들끼리 이야기해서 잘 해결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밤이 되고 다시 아침이 오면 그 싸움은 모두 지난 것, 끝난 것이 된다고. 그래서 미워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고 했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
K는 그녀를 속인 그를 용서했다. 난 이 일을 경찰에 알리지 않을 거야. 그런데 너는 그렇게 계속 살면 언젠가는 그 죗값을 치르게 될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럼 너의, 아니 다른 사람들의 돈은? 이 사회의 정의는? 너의 억울함은? 그녀는 크리스천이다. 크리스천은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예요. 그녀가 말했다. 사람들은 용서할 수 없지요. 그런데 사람 안에 있는 예수님은 용서해요. 그건 예수님이 용서하신 거예요. 울컥 화인지, 좌절인지, 부러움인지, 감동인지 알지 못하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 있어요. 하지만 그냥 믿으면 하느님도 도와줄 수 없어요. 노력해야 해요. 하느님도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저의 뒤에는 하느님이 계시니 다 잘 될 거예요.
노력하는, 이겨내는, 용서하는 그녀의 앞길에 언제나 든든한 그분이 함께하시기를,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그녀가 잘 쓰이기를, 큰 그릇이 되게 하시되 너무 힘든 시련을 주지 않으시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