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와상 vs 준노스케

글쓰기에 대한 반성문

by 박종호

일본 영화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Always 三丁目の夕日, 2005)>에는 안 팔리는 작가 차가와 상(씨)이 등장한다. 단칸방 구석에 놓인 작은 책상 앞에 차가와 상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원고지를 쏘아본다. 책상 주변에는 신경질적으로 구겨진 원고지가 뒹굴고 재떨이에는 만원 전철처럼 빼곡히 꽁초가 박혀 있다.


그는 계속하여 문학상에 도전하지만 번번이 실퍠한다. 그는 자신의 글을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좌절과 가난뿐이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어린이 잡지에 소설을 연재한다. 그나마도 마감일에 쫓기고 재미없다고 잘리기 직전이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처럼 그는 어느 날 눈을 뜨니 유명해졌다. 어린이 잡지에 그가 연재한 소설이 소위 대박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글은 그의 것이 아니다. 그가 얼떨결에 떠맡아 함께 살게 된 초등학생 준노스케가 쓴 글이다. 어른은 아이의 작품을 훔쳤고 처음 작가로서 성취감을 느낀다.


준노스케는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왔다. 새로운 곳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준노스케는 혼자만의 이야기를 지어 노트에 쓰며 외로움을 달랬다. 우연히 준노스케의 이야기를 본 친구들은 순식간에 그 이야기의 팬이 되었고 다음 연재를 기다리게 된다.


나의 글쓰기를 생각하며 차가와 상이 떠올랐다. 무엇이라도 써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영화 속 차가와 상과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이란 항상 너무 진지하다. 자기도 무엇인지 모르는 마음속의 것을 글로 써서 남에게 보여주니 글 쓰는 사람만큼 그 글을 읽는 사람도 답답하다.


준노스케는 자기가 상상한 것, 머리에 그려지는 것들을 글로 쓴다.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지구에 등장한 괴수들이 서로 싸우는 이야기이다. 준노스케가 상상한 것을 읽는 사람들도 함께 떠올리며 손에 땀을 쥔다. 사람들은 그의 글을 좋아한다. 공감하고 다음 글을 기다린다. 준노스케는 인기에 힘입어 더 열심히 쓴다.


준노스케를 떠올리며 나의 글쓰기를 돌아본다. 나의 글쓰기는 즐거웠는가? 혹시 의무감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는가? 나의 글은 반성의 계기가 되었는가? 혹은 새로운 발견과 각오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 나는 충분한 생각 끝에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썼는가? 그 주제를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게 전달하였나?


글쓰기는 공감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그러니 독자(들)가 공감할 만한 내용을 써야 한다. 자기만의 생각에 취하여 타인과의 공감을 끈을 놓쳐버리면 술 취한 사람의 주정이 되어버린다. 우선 자기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을 써야 한다. 내가 모르는 무엇을 쓰려하니 글이 산으로 간다.


나는 글쓰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글의 재미라고 생각한다. 좋은 내용도 재미가 없다면 읽는 것이 고역이다. 어른 차가와 상의 글이 가지지 못한 것은 아이 준노스케의 글 속에 넘치는 재미이다.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아무리 의미 있는 내용이어도 정작 재미가 없다면 끝까지 읽히기 어렵다.


나는 나의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으면 좋겠다. 나는 상품을 기획하면서는 내 생각을 내려놓고 시장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글을 쓸 때는 항상 내가 원하는 글을 쓰다가 읽는 사람의 표정을 놓쳐버린다. 글쓰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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