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부산 먹방 여행

by 박종호

오늘은 둘째 딸과 당일치기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그동안 네 가족이 틈틈이 여행을 다녔지만 이렇게 둘이 여행을 간 적은 없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는 아내와도 단 둘이 여행을 간 적은 없었으니 십 수년 만에 매우 특별한 이벤트라 할 수 있겠다.


일곱 시 반 서울역에서 떠나는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다행히 서울역은 집에서 가깝다. 중학교 1학년 여아를 깨울 때는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출발도 하기 전에 큰 싸움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첫 번째 단계를 무사히 통과했다.


집 앞 길 건너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했다. 나는 부산에 당일치기 여행을 자주 가는 데 기차를 타기 전에 역사 롯데리아에서 델리버거를 먹는 습관이 있다. 이 습관은 30년 전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생긴 것인데 휴가 마지막날 자대 복귀를 할 때 마지막으로 먹는 사재 음식이 항상 델리버거였다.


당시에는 부대 PX에서 사 먹을 만한 음식이 드물었다. 주말에 나오는 햄버거는 딸기잼을 싸구려 햄버거 패드에 발라 나왔다. 그 조차도 기다려지는 형편이었지만 군대에서 아무리 특식이라 하여도 휴가 중에 먹는 가장 싼 햄버거 맛을 못 따라간다. 나에게 델리버거는 러시아에 처음 소개된 맥도널드 같은, 자유의 양식이었다.


기차에서 먹는 간식은 특별하다. 대학 때 기차여행을 많이 다녔는 데 그때만 하여도 승무원이 카트를 밀고 다니며 간식을 판매했다. 삶은 계란과 귤, 맥주와 커피 등이 주된 메뉴였는 데, 한국의 기차 음식은 일본처럼 각 지역의 특산물을 넣은 도시락과 간식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편의점과 프랜차이즈에게 의존하게 되었다.


나는 햄버거 대신 샌드위치와 커피를, 딸은 스콘을 들고 열차에 올랐다. 물론 가방에는 과자도 두어 개 챙겼다. 여행이란 먹는 것이다. 이 말은 어떤 위인이 하였는지 만국에서 통용된다. 기차 안에서도 부산에서 무엇을 먹을 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먹고 싶은 음식들에 비하여 우리 위장의 사이즈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우선 이 여행의 안전선을 정하기로 했다. 전국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중에 내가 가고 싶다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가는 동반자의 원망을 사고 딸과의 여행은 이번으로 마지막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하나, 무조건 편하게 움직인다. 둘, 딸이 하고 싶은 것은 하고 나머지는 옵션이 아니다. 셋, 싸우지 않는다.


깡통시장에 가기로 한 계획을 접었다. 지난번 부산 여행에 먹었던 이가네 떡볶이를 먹으러 가려했는 데 일요일은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범어사를 들르거나 아난티앳코브에 들렀다가 해운대로 가는 코스를 제안했지만 딸은 단호하게 아니, 해운대만 갈 거야라고 잘라 말했다.


이번 부산 여행은 아주 심플해졌다. 해운대에서 물놀이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돌아오는 것. 해운대는 이미 개장하여 성수기를 대비한 준비를 마쳤다. 백사장에는 파라솔들이 줄지어 서있고 많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나왔다. 우리는 다이소에서 슬리퍼와 양산, 비치볼과 돗자리를 사서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물은 아직 차가웠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씨 때문에 더 차게 느껴지는 지도 모른다. 발만 담그고 있는 데도 온몸이 시원하다. 비치볼로 공놀이를 하다 반바지를 다 적셨다. 딸한테는 옷이 젖을지 모르니 여벌의 옷을 가져오라 해놓고 나는 안 챙겼다. 괜찮다. 젖은 바지는 뜨거운 태양이 말려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람들은 바닷가나 수영장에서 꼭 레쉬가드를 챙겨 입는다. 모두 입으니 안 입은 사람이 좀 민망해진다. 나는 뜨거운 태양에 살을 태우는 것을 좋아하여 레쉬가드가 있어도 잘 안 입는 데 남들이 다 입는 데 나만 허연 살을 드러낸다고 매번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다. 해변의 복장에도 TPO가 있는가.


줄지어 세워진 파라솔에 비하여 아직은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정도는 아니다. 그 대신 외국 관광객이 많이 왔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일단 레쉬가드를 입지 않은 이들의 피부색이 다양하다. 한국인들은 물이 아직 차서 수영을 잘하지 않는 데 외국인들은 아랑곳없이 몸을 담그고 즐거워한다.


나는 그들 사이에 섞여서 어중간하게 발만 담그고 반바지에 웃옷을 벗고 딸과 공놀이를 했다. 잠깐 놀았는 데 딸은 배가 고팠는지 그만 밥 먹으러 가자 하여 해변을 나왔다. 잠깐이었는 데 집에 오니 팔뚝이며 등이 벌겋게 탔다. 예전에는 매일 바닷가에서 피부를 그을렸는 데 이제는 잠깐 해을 쬐어도 따끔거린다. 나이탓인가.


해운대에 오는 택시 안에서 한 게임에서 내가 졌기 때문에 점심 메뉴는 딸이 고를 수 있었다. 나는 해운대에 오면 자주 들르는 갈빗집에 가자고 꼬셨는 데 딸은 끝까지 떡볶이를 먹겠다고 했다. <불오뎅 해운대 시장점>은 이번에 발견한 맛집이다. 가래떡이 들어있는 떡볶이, 어묵, 김말이, 만두, 꼬마김밥이 식탁을 채웠다.


해운대 시장은 식당 거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곰장어, 족발, 새우 등 술과 함께 할 수 있는 식당이 있는 가 하면 벌꿀 아이스크림, 호떡, 떡볶이 등의 젊은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가게들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우리는 분식 만찬을 마치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뻥튀기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뻥스크림.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고 더 먹을 수 있을 때까지 시원한 곳에서 칼로리를 조금 소모해야 했기에 우리는 코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5층에서 해운대역에서 해운대까지 뻗은 구남로가 내려 보이는 노래방이다. 1시간 반 동안 우리의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 노래방 점수를 못마땅해하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스크림 때문에 순서가 뒤로 밀렸던 호떡을 마지막으로 해운대의 먹거리를 마무리했다. 이제 기차를 타기 전까지 남은 할 일은 밀면을 먹는 것이다. 내가 가장 즐겨 가는 곳은 부산역 맞은 편의 <영동밀면>이다. 어떤 연유인지 같은 이름에 주인이 다른 두 가게가 지척에 있는 데 두 곳의 맛이 대동소이하며 두 집 모두 맛있다.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 나이가 지긋하신 택시 기사님이 "저기가 부산에서는 밀면으로 제일 유명하지요" 하는 집 앞을 지났다. <초량 밀면>이다. 나는 부산역에 다 가기 전에 차를 세워 초량밀면을 먹어보기로 했다. 워낙 유명한 집이니 내가 맛을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부산 사람은 입맛에는 초량, 서울 사람은 영동?


딸과 함께한 부산 여행은 부산 먹방 여행이 되었다. 잘 먹은 덕분에 서울 올라오는 기차에서는 푹 잤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딸에게 물었다. 부산 여행 어땠어? 딸의 대답했다. "맛았었어." 집에 와서 딸은 외국에 있는 엄마에게 오늘 먹은 음식들을 자랑했다. 그리고 내일은 하루 종일 굶겠단다. 글쎄, 서울에도 맛집이 천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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