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 해영회관 건물 (1968년~)

안국동 148

by 박종호

우리 회사 사무실이 있는 10층 건물은 한 여자 대학교 재단의 소유이다. 내 나이보다 오래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느리기는 해도 관리를 잘하여 여전히 깨끗하다. 이 건물은 오래된 역사만큼 오래된 규칙들이 있다.


일단 구식 공동 냉난방 시설은 9-6(나인투식스)에만 가동한다.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냉난방이 가동되어도 건물의 내부는 여전히 덥고 춥다. 우리 사무실은 제일 꼭대기 층이라 옥상에서 내려오는 열기와 냉기가 내려와 냉난방을 무력화한다. 주말에는 아예 가동을 안 하니 나 같이 주말에도 출근하는 구시대 사장은 괴롭다.


우리 건물은 외부 음식 반입이 금지이다. 해충과 냄새를 막는다며 배달 음식은 물론 건물 안에서 라면 등을 먹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요즘처럼 배달 음식이 잘 발달된 시대에 배달 음식이 금지라는 것은 건물 내 구성원들의 선택권을 현저히 저해한다. 순찰까지는 다니지 않으니 나는 샐러드를 사다 먹고 증거를 철저히 인멸한다.


반려 동물의 시대이다. 강아지,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는 가게와 식당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런데 이 건물은 반려동물 출입 금지이다. 단순히 금지가 아니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데리고 사무실에 들어오는 경우에 퇴실을 하여야 하는 규칙이 있다. 그래서 나는 강아지 대신 강아지 인형을 하나 들였다. 진짜다.


각 사무실의 마지막 퇴실자는 1층 프런트에 퇴실 시각과 이름을 적는다. 각 층에 모든 사람들이 나가면 각 층마다 보안 시스템을 잠근다. 그리고도 밤새 한 시간에 한 번씩 모든 층과 건물 외부를 순찰한다. 요즘 건물들에는 곳곳에 CCTV를 달아 살피는 데 우리 건물은 경비원 아저씨가 직접 발로 돌며 지킨다.


해영회관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구식의 규칙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 건물이 그저 오래된 구닥다리 건물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낡은 시설의 오래된 규칙에도 불구하고 이 건물에 들어와 있는 회사들은 한결같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30,40년씩 한자리를 지키는 회사도 여럿이다. 그 이유는...


이 건물은 안국동의 중심에 자리한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정확히 중간의 위치에 서 있다. 바로 뒤 건물은 헌법재판소이다. 이웃의 건물은 이 건물의 위상을 동시에 고양한다. 건물 옥상에 오르면 남쪽으로는 남산이 서쪽으로는 인왕산, 북쪽에는 북악산이 보인다. 북악산 자락을 타고 청와대, 경복궁, 북촌 한옥마을의 한옥 지붕들이 줄지어 보인다.


건물의 지리적 위치와 압도적인 풍경은 시설의 낙후함과 오래된 규칙의 불편함을 뛰어넘는다. 세월이 흘러도 역사적 위치는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더 흐르면 이 건물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될지도 모른다. 다른 어떤 곳과도 대체될 수 없는 자리의 매력은 쉬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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