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후덥지근하다. 어젯밤 잠이 들기 전에 켰다가 타이머로 꺼짐 설정을 해 놓고 잔 에어컨을 다시 켜야하다 생각하다가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평소같으면 이 시간에 체육관에 가거나 산에 오르려 나설테지만 지난 주부터 둘째가 와 있어 혼자 두고 나갈 수가 없다.
어제 부산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온 것이 피곤했는 지 딸은 일어날 기색이 없다. 아이들을 깨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저 흔들며 큰 소리를 내는 방법, 윽박지르며 협박하는 방법, 그리고 눈이 번쩍 뜨일만큼 매력적인 옵션을 제시하는 방법이 있다. 나는 또 다른 방법으로 그냥 자게 내버려 두기로 했다.
요즘 아주 오랫동안 읽지 않던 소설을 읽고 있다. 책을 꾸준히 읽지만 어느 순간부터 소설은 읽지 않게 되었다. 왠지 생산성 없이 소일하는 기분이었을까. 하지만 최근에 600페이지가 넘는 <스토너>를 읽고 1000페이지로 두 권으로 나뉜 <리트라이프>도 단숨에 읽었다. 어제부터 다시 읽으려 꺼낸 책은 <오만과 편견>이다.
얼마전 교보문고에서 제인에어의 탄생 23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오만과 편견> 특별판을 보았다. 내가 가진 책은 민음사에서 출간한 번역본이다. 작년 내 생일날 잘 생긴 대학동기가 선물이라며 빨간 포장지 위에 내 생일 날짜와 책 제목이 적힌 <오만관 편견>을 선물해 주었다. 나는 제목이 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안국동의 빵집은 문여는 시간이 늦다. 아침 밥을 먹기 위한 식사용 빵집이 아닌 사진을 찍기 위한 인스타용 빵집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딸 아이와 나는 문이 연 빵집을 찾다가 포기하고 현대건설 사옥 지하의 아케이드로 갔다. 목에 사원증을 맨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우리는 김밥을 사들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월요일 아침에 출근을 하면 잠시 한가한 듯하지만 이내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 정신 없이 바빠진다. 나는 평소에 11시면 점심을 먹으러 나선다. 11시는 조금 이르다 싶은 시간이어서 왠만한 식당에는 첫 손님이고 꽤 유명한 맛집에도 줄을 서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 오늘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집에서 냉면을 먹었다.
오후에는 채용 중인 디자이너 부문의 지원자가 면접을 보러 왔다. 요즘에는 나의 회사처럼 작은 회사에도 면접을 보러 지방에서 올라온다. 지방에서 온 면접자가 그다지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도, 면접을 보러 서울까지 올라온 정성과 노력을 보아서라도 자꾸 좋은 점을 찾으려 노력한다. 공정한 면접이란 없다.
아침부터 후덥지근하던 날씨는 오후가 되면서 펄펄 끓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도 사무실에만 있는 것이 답답하여 동네를 두어 바퀴 산책했다. 오래된 건물의 별로 시원하지 못한 에어컨이 돌아가는 사무실이어도 사무실로 돌아오니 살겠다 싶었다. 에어컨은 특별히 칭찬 받아야할 문명의 이기이다.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매일 그렇지만 어느새 퇴근 시간이 왔다. 어제 부산 여행에서 지나치게 많이 먹은 것을 대신하여 오늘 저녁은 아주 가볍게 먹기로 했었다. 그런데 막상 무엇을 먹을까 고르다 우리는 삼겹살로 합의를 보았다. 삼겹살이란 생각에 따라 매우 가벼운 음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집 근처 인사동 골목에 853이란 고기집이 있다. 내가 종종 들르는 집인데 고기도 좋고 무엇보다 잘 숙련된 직원들이 고기를 구워준다. 딸과 나는 삼겹살을 2인분 시켜 놓고 공기밥도 두 개를 시켰다. 고기는 밥과 먹을 때 제일 맛있다. 우리는 각오를 깨고 목살을 1인분 추가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절제란 무례한 행동이다.
배를 두드리며 인사동 골목을 나와 카페로 왔다. 아주 가볍게 디저트로 도넛을 먹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팀홀튼(Tim Hortons)은 캐나다에서 온 카페이다. 딸과 하루 종일 맛있게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