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볶음밥과 짜파게티
오늘도 무척 더운 날이었다.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6월을 지났다고 한다. 곧 한반도가 동남아 날씨가 된다고 한다. 대구에서 재배하던 사과는 강원도로 북상했고 바다에는 열대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제저녁에는 찌는 듯 덥다가 갑자기 국지성 소나기(스콜)가 내렸다. 우박이 내린 곳도 있다 한다.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땀을 줄줄 흘리며 돌아왔다. 이제 더위 때문에 아주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 아니면 산책 나갈 엄두를 내기 힘들어졌다. 산책을 좋아하는 나는 양산이라도 들고 걸어보려고 하지만 더위에 금세 지치고 만다. 그래도 점심에는 정독 도서관까지 걸어가 구내식당 소담정에서 돈가스를 먹었다.
며칠 전 둘째 딸과 드라마를 보다가 극 중의 아빠가 요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아빠도 요리를 좀 하지 하고 너스레를 떨다가, 그럼 스팸볶음밥 해줘라고 주문을 받고 말았다. 나는 사실 꽤나 훌륭한 요리 솜씨를 가졌지만 세상에 아내가 만든 밥만큼 맛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긴 세월 나의 실력을 숨기고 살아왔을 뿐이다.
퇴근길에 양파와 당근을 한 봉지씩 샀다. 내가 나의 요리 실력을 써먹지 않는 이유는 혼자 사는 탓에 요리를 할 일이 없어서이다. 아주 가끔 집에서 밥을 먹을라 치면 먹는 음식보다 남기는 음식이 더 많다. 하지만 여름 방학이라고 한국에 놀러 온 막내가 스팸볶음밥을 주문했으니 재료가 남아 버리더라도 할 수 없다.
스팸, 양파, 당근을 잘게 썰어 자글자글 볶다가 계란과 큰 그릇 즉석밥을 두 개나 넣었다. 내가 스스로 요리를 잘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실패하기 힘든 쉬운 요리만 만들기 때문이고 웬만하면 맛이 없어도 맛있다고 할 만한 사람에게 요리를 만들어 대접하기 때문이다.
딸은 어려서부터 편식이 심하다. 하지만 엄격한 차별을 피한 음식에는 무한한 관용을 베푼다. 딸은 음식을 먹어보기도 전에 겉모습만 보고도 좋아할지 싫어할지를 판단한다. 안 먹겠다고 선언한 음식은 무슨 수를 써 보아도 입에 대지 않는다. 다만 딸이 먹는 음식은 내 입맛에는 평균 이하의 맛도 모두 맛있다고 먹는다.
나의 스팸 볶음밥은 큰 칭찬을 받았다. 너무 많이 만들어 절반 정도는 냉동시켰지만. 나는 칭찬 욕심에 짜파게티 두 봉지를 연달아 만들어 올렸다. 역시 연단 극찬을 받았고 나는 칭찬에 약하다. 기분이라며 냉장고 깊숙이 숨겨 놓았던 사이다를 한 캔 꺼내어 나누어 마셨다.
평일 이른 저녁부터 집에 돌아와 딸과 드라마를 보며 저녁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나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한 층 고양되었고 나의 스팸볶음밥은 당분간은 딸에게 그동안 먹어본 중에 가장 맛있었던 볶음밥의 타이틀을 유지할 것이다.
하루는 매일 다른 속도로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