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하루

오늘 하루 (250711)

Leaving Fukuoka (Momochihama)

by 박종호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방학 중에 한국에 와 있던 둘째 딸과 함께 후쿠오카로 들어가기 위해서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세 시간 넘게 남았다. 사흘이면 다시 돌아올 텐데 지금까지 먹던 한국음식이 무엇이 아쉬운지 일본에 가면 못 먹을 음식으로 골라 시켰다. 곰탕과 짜장면+군만두 세트.


내일 일본 집의 이사를 한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서이다. 후쿠오카에 이사 온 지 9년 만이다. 첫째 딸은 초등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생이 되었고 둘째는 다섯 살에 일본에 와서 중학생이 되었다.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은 늙는다. 근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나무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이 세월의 증거이다.


집에 도착하니 작업 온 청년들이 집에서 쓰던 에어컨과 냉장고, 세탁기 등을 장인댁으로 옮기고 있었다. 텔레비전이 없는 거실과 냉장고가 없는 부엌은 어색하다. 습관처럼 시선을 두고 문을 열어 속을 들여다보던 물건이 없으니 이 집을 떠나는 것이 실감이 난다. 습관은 장소와 묶여있다.


일본 집은 복도를 따라 방을 나누는 구조이다. 멘션인 우리 집의 구조도 바다 쪽에서 산 쪽으로 긴 복도를 따라 서재, 아이들 방, 다다미방 그리고 거실이 이어져있다. 밖은 35도가 넘는 데, 우리 집에는 복도를 따라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분다. 덕분에 덥고 습하기로 유명한 후쿠오카의 여름에도 에어컨을 몇 번 켜지 않고 살았다.


우리 집은 12층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면 멀리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거실을 지나 복도 끝 서재의 창 너머로는 바다가 펼쳐진다. 왼쪽에 보이는 섬이 노코노지마이다. 오른쪽에는 후쿠오카 타워가 서 있다. 아이들 학교가 길 건너이기도 했지만 산과 바다가 막힘없이 보이는 것이 이 집으로 이사 온 가장 큰 이유였다.


집 근처에는 시립도서관과 미술관이 있다. 후쿠오카 타워와 페이페이 돔 야구장까지 바닷가 백사장을 따라 긴 산책길이 이어진다. 내가 사업을 이 한다고 주로 한국에서 지내기 전까지는 매일 모모치 하마 해변에 나와 아침 에는 일출을 보고 저녁에는 일몰을 보며 지냈다. 뜨고 지는 태양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감동을 선물했다.


내가 이 집과 이 동네를 충분히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다지 열심히 할 것을 찾지 못하고 한량처럼 지냈기 때문이다. 무엇을 좀 열심히 하려던 중에 코로나가 터졌다. 한창 출장이 많던 때이었는 데 두바이에서 인천 공항을 지나 후쿠오카에 들어와서는 2년 간 이 바닷가 동네에서 묶여 지내게 되었다. 천국의 시간이었다.


우리 집 식구 넷은 코로나 기간 중에 매일매일을 즐겁게 지내려 노력했다. 학교는 원격으로 수업을 진행하다 긴 방학을 가졌다. 한국으로 오거나 여행을 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바닷가를 산책하고 집에서 <초원의 집> 같은 긴 드라마를 함께 보고 뜨개질을 하고 <아빠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이런저런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었다.


아름다운 해변 동네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굴뒹굴 거리며 보내는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이 집은 그 추억의 장소이다. 사람들이 은퇴를 하고 살고자 하는 인생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그때가 되면 지금처럼 즐겁지 않을 것이다. 설마 그때도 아이들이 나와 놀아줄까.


큰돈을 주고 포장이사를 맡겼는 데 아내는 그냥 옮겨 실으면 될 정도로 짐을 거의 다 싸 놓았다. 나와 아내는 이사를 여러 번 해 보았지만 이사는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결국 업체에 맡겨 두면 어느새 이사가 끝나있다. 이 집처럼 이사를 가면 큰 아쉬움이 남는 집이 있었던가. 많은 추억을 남겨준 집이었다.


내일 이사가 끝나고 장인댁에서 이틀을 더 묵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9년 전 후쿠오카에 처음 왔을 때에도 이사를 하기로 한 집이 정리가 될 때까지 네 식구가 장인댁에서 묵었다. 그때 5살, 8살이던 둘 딸은 이제 훌쩍 커서 집이 북적인다. 장모님은 아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외롭다며 고양이 한 마리를 들이셨다.


매일 보던 풍경이 아쉬워 자꾸 사진만 찍는다. 언제나 다시 놀러 오면 되지라고 말해도 그게 언제나 마음처럼 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또 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벌써 아쉬움이 그리움이 되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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