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하루

오늘 하루 (250712)

이사 가는 집 청소

by 박종호

대학을 졸업하고 길림성의 성도 장춘에 있는 <길림대학료>에 중국어를 배우러 갔다. 길림대학교는 동북의 명문대학이라고 하지만 당시의 중국이란 여러모로 낙후한 탓에 별도의 유학생 숙소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 대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이란 적지않은 수익원이었다.


중국의 개방 정책과 함께 중국어 붐이 불던 때였고 전세계에서 유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코이치는 일본에서 온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는 멋진 중국어를 구사하고 유학생 뿐 아니라 중국인 아저씨 아주머니들과도 두루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그가 그를 따르던 일본 학생 두 명과 함께 기숙사 밖에서 방을 얻어 함께 살겠다고 했다.


그가 이사 가기 전날 그의 방 앞에서 그를 만났다. 코이치는 물 묻은 휴지로 문틀을 열심히 닦고 있었다. 코이치, 뭐해? 청소. 무슨 청소? 이사 간다 그러지 않았어? 맞지 내일 나갈꺼야. 그런데 왠 청소? 내가 살던 방이니까 나가기 전에 청소를 해야지. 나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잘 정리하고 나가면 될 일이지 저렇게까지?


오늘은 우리 집 이삿짐이 한국으로 가기 위해 컨테이너에 실렸다. 아삿짐 센터 직원들은 아침부터 일사분란하게 짐을 싸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짐이 많아 기존에 예상했던 20피트 컨테이너 분량을 훌쩍 넘고 아침 9시 시작한 이삿짐은 오후 6시가 다 되어 모두 빠졌다. 텅 빈 집에서 아내와 나는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집을 비울 때는 처음 들어올 때의 상태로 원상복귀하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단순히 어디 고장이 났나를 확인하는 수준이 아니고 대청소 수준으로 깨끗이 집을 청소하고 나간다. 가구가 있던 자리에 흔적이 남아있을까 두세번 확인하고 손이 닿지 않는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나는 아내의 '지시'에 따라 평소에도 그다지 해 본 적이 없는 청소를 시작했다. 가구가 없으니 직사각형으로 드러난 마루를 손걸래로 닦고 특히 모서리 부분은 더 신경 써서 먼지를 닦아 냈다. 숨어있던 공간이 드러나며 숨어 있던 먼지들도 나타난다. 평소에 자주 하지 않던 베란다 청소와 수납장 안쪽까지 꼼꼼히 닦았다.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 시킬 수는 없지만 내가 본 일본인은 다음과 같은 행동을 했다. 화장실 휴지를 삼각형으로 끝을 접어 놓는다. 스카치 테이프를 사용하고 끝을 살짝 접어 놓는다.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하고는 자기가 먹은 자리를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놓고 일어난다, 등등.


이들의 행동에는 자기가 사용한 후 다음 사람의 편의를 생각하는 배려가 담겨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규칙에 따르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문화가 갑갑하다가도 그 근저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음을 생각하면 나도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를 나가는 집을 평소보다 더 깨끗이 치우고 가는 배려의 마음을.


집이란 살아가는 '터'이어서 오랜 시간 살다보면 집이 마치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기분탓이지만 실재로 우리는 '우리집'이란 이름으로 자기가 사는 집에 나름의 성격을 부여한다. 이사를 하려니 그동안 우리를 품었던 우리집의 따스함이 새삼 느껴졌다.


청소를 하며 물신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동안 너와 함께 너무나 행복했어. 고마워,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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