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하루

오늘 하루 (250714)

후쿠오카에서 서울로

by 박종호

이사하는 날 비가 오면 부자로 산다는 데, 우리 집은 얼마가 부자가 되려는 지 이삿날마다 비가 내린다. 이러한 믿음이 생기니 다음 이삿날에도 비가 오기를 은근히 기대하게 되어, 남들은 이삿날을 잡을 때 손 없는 날 등을 찾으려 달력을 보는 데 나는 비 오는 날을 찾으려 일기예보를 보아야 할 판이다.


후쿠오카에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여느 때처럼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렸다. 내가 있을 때면 커피를 내리는 일은 나의 몫이다. 나는 나의 커피가 어느 커피 전문점에 내어도 손색이 없는 핸드드립 커피라고 자부하지만 아직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본 적은 없다. 어제 사 온 카스텔라와 시폰 케이크로 아침을 먹었다.


장인 장모 아내 아이들과 함께 어제저녁에 했던 <인랑>이란 카드 게임을 했다. 인랑은 인간 늑대이다. 사회자가 나누어준 카드에는 인랑, 예언자, 시민의 세 종류의 카드가 있다. 사회자를 제외한 참여자들이 인랑이 누구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인랑을 찾아낼 수 있는 논리적인 추론 방법은 없다. 표정과 감으로 인랑을 지목한다. 왠지 영화 <타짜>가 떠오른다.


9년 전 일본에 왔을 때 아이들은 5살, 8살이었다. 장인과 장모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지금도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친구처럼 지낸다. 조부모와 살가운 추억이 없는 나는 아이들과 외조부모의 관계가 무척이나 부럽다. 장인어른은 나의 술친구가 되어주셨다. 우리는 두 집의 중간 즈음에 있는 술집에서 일주일에 서너 번 만나 술을 마셨다.


처음 들어간 집은 장인댁 가까운 곳에 있는 이층 집이다. 지은 지 50년이 넘는 집이었다. 나무로 지은 집은 매우 컸지만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더웠다. 집은 큰 데 실제로 생활하는 공간은 한정적이었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 2층 전체를 사용하지 못했고 겨울에는 추위에 1층의 다다미방에서 네 식구가 모여 잤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가면 실내 온도가 4도였다. 이 집에서 3년을 살았다.


두 번째 집은 지금까지 살던 바닷가의 멘션이다. 아이들의 다닐 국제학교가 바로 길 건너에 있기도 하였지만 바다와 산이 앞뒤로 보이는 전망이 좋아 이 집에 들어왔다. 오래전부터 바닷가에서 살고 싶었는 데 그 꿈을 이곳에서 이루었다. 평화로운 동네는 골목마다 꽃과 나무를 잘 가꾸어 놓았다. 아침저녁으로 해변을 걸었다. 밤이면 아이들과 연인들이 바닷가에서 불꽃놀이를 했다. 항상 이곳이 낙원이지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장인 장모는 우리를 배웅하러 공항까지 오셨다. 점심을 함께 먹었다. 올여름 더위가 좀 가시면 한국으로 여행을 오시라고 했다. 심심하면 언제라도 찾아가던 장인댁이 순식간에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날이 개고 창 밖으로 후쿠오카 페이페이 돔과 후쿠오카 타워가 보였다. 우리가 살던 동네이다. 아듀! 모모치하마. 하고 마음속으로 말하고는 갑자기 쓸쓸함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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