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에서 걷고 먹으며
아침이 되어 밤 사이의 고민을 툴툴 털고 집을 나섰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어젯밤 새 비가 내려 땅의 열기를 식힌 탓이리라. 아, 좋다 하며 사무실에 따라온 딸과 함께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교복을 입은 동덕여중, 여고 학생들이 학교로 향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짝지어 우산을 나누어 쓰고 깔깔거리며 걷는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도 교복이 있었다. 겨울 교복은 감색 양복이라 그나마 폼이 났지만 여름 교복은 위아래 모두 연두색으로 어느시절 군복을 연상케 한다. 선배들은 오랜 시간이어온 학교의 전통으로 시대에 한 없이 뒤처지고 미적 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옷을 후배들에게 남겼다. 교복이 후질수록 동문회가 강하다.
아침 일찍 여는 빵집에서 빵을 샀다. 이 집은 성수동에서 식빵으로 유명해져 우리 회사 인근에 빵집을 내었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찢어 먹는 식빵이다. 안국동은 카페와 빵집이 거의 포화에 이르렀지만 일찍 문을 여는 가게는 아직 많지 않다. 동네 주민 장사보다는 관광객 장사가 위주인 탓이다.
두어 달 만에 한국에 온 딸에게 그동안 없어진 가게와 새로 생긴 가게를 이야기해 주었다. 오래된 방앗간에서 떡볶이를 팔던 <풍년쌀농산>이 문을 닫았다. 아이들과 가회동길 <명품떡볶이> 집과 함께 자주 찾던 곳이다. 어르신들이 운영하던 가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영업종료를 선언한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사라진 노포들을 적는다. 천도교회당 옆 <간판 없는 김치찌개> 집, 이제는 갤러리로 바뀐 <우드 앤 브릭스(빵집)>, 나와 동네 형님들의 오랜 단골이던 <창덕호프>, 지금은 <다찌한판>으로 자리를 옮긴 <북촌해물>, 당구장 밑에 있던 중국요릿집 <봉궁>, 계동길 에스프레소 <sorry, sorry> 등등.
사라진 것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그 시절, 그 자리에 머무르던 사람들만이 추억과 함께 기억한다. 그 기억이 시절을 다하면 자리도 영원히 사라진다. 그 유한성 때문에 추억은 더 소중하다. 서로의 기억을 맞추며 그 추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다.
점심에는 아내와 둘째도 회사에 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다이어트를 한다며 김밥을 한 줄씩 먹었다. 사무실에서 책을 읽던 첫째는 금새 배가 고프다고 징징거려 라볶이를 먹이고 들어왔다. 결국 모두 점심을 부실하게 먹었다고 불만이라 저녁에는 인사동에서 소고기를 먹었다. 다이어트에도 총량보존의 법칙이 적용된다.
하루 종일 중요한 업무도 많았는 데 기억나는 것은 먹고 놀았던 일뿐이다. 그러니 오늘도 분명 참 좋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