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출장 2일 차

KCLL, 전시 준비하는 날

by 박종호

어젯밤 자정이 넘어 호텔에 도착했다. 항공사에서 판매하는 패스트 트랙을 사놓지 않았다면 입국 수속을 밟는 데만 족히 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얼마 전 캄보디아에 다녀오며 깔아 둔 그랩 덕분에 많은 짐을 싣고 호텔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한 밤의 고속도로는 한가했지만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한국과의 한 시간 시차를 생각하면 평소에 자는 시간을 훌쩍 넘겨버린 시간이다. 씻고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전시장에 진열만 하는 되는 날이라 늦잠을 좀 자야지 하고 생각했는 데 한국시간으로 매일 일어나던 시간에 맞추어 눈이 떠졌다. 배꼽시계는 무섭게 정확하다.


호텔의 지척의 거리에 전시가 열리는 KLCC 전시장이 있고 그 앞으로 도심에 오아시스 같은 큰 공원이 있는 데 이곳이 KLCC 공원이다. 공원 너머에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쌍둥이 건물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s)가 솟아 있다. 88층에 452m, 2004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아침에 공원에서 산책을 하려 하였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일곱 시가 되어도 여전히 어두웠다. 말레이시아는 좌우로 길레 늘어서 있는 데 시간대를 하나로 묶어 놓아 동말레이시아와 서말레이시아의 해 뜨는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곳의 아침형 인간들은 야행성에 가까우리라.


호텔 조식을 먹고 KLCC 공원을 산책했다. 공원을 한 바퀴 도는 트렉에서 많은 이들이 한 방향으로 뛰고 있었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러너들을 볼 수 있다. 뛰는 일이란 다른 사람을 스스로와의 경쟁이다. 잘 뛰지는 못하지만 나도 달리기를 아주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평소에 조금 더 달려볼 생각이다.


전시장 부스의 디스플레이를 마쳤다. 처음 참가하는 전시에는 항상 도면으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데 이번에도 도면만 보고 너무 외진 장소에 부스를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란 항상 기싸움이다. 자리가 어느 곳이든 만날 사람은 만나고, 만날 사람을 만나 거래가 성사되면 전시는 성공하는 것이다.


트윈 타워 밑 쇼핑몰을 구경을 했다. 거대한 몰 안에는 명품 브랜드가 즐비하다. 나는 명품에 관심이 없지만 딱 보기에도 대단한 가격이다. 누군가 명품은 물건이 아니라 꿈을 판다고 했다.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게 될 때 자신이 고양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명품의 가격이 현지의 물가를 따라 싸질 이유가 없다.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었다. 종업원이 추천해 주는 데로 스테이크 덮밥을 주문했는 데, 메뉴판의 사진을 믿지 말라는 교훈을 얻었다. 몰을 나오려는 차에 열대성 소나기인 스콜이 내렸다. 노상의 커피샾에서 눌어 앉았다. 카페는 오픈한 지 30년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 보아야 내가 대학생 때이니 나의 나이도 대단하다.


KLCC(Kuala Lumpur City Center), 도심 구역에는 거대한 몰들이 많다. 호텔 근처의 몰 안에 있는 그랜드마마스(Grandmama's)란 식당에서 말레이시아 음식을 먹었다. 볶음밥인 나시 고랭(Nasi Goreng)과 코코넛 밀크를 넣은 밥이 나오는 나시 레막(Nasi Lemak)을 주문했다. 입맛은 습관이다. 낯선 음식은 언제나 힘들다.


아침부터 산책하고 전시장 주변을 돌아다니느라 녹초가 되어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부터 사흘 간의 전시가 시작된다. 전시는 항상 첫날이 가장 힘들다. 이튿날은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그다음 날은 익숙해졌다고 생각되며 전시가 끝나버린다. 이런 흐름을 잘 알면서도 전시 전날에는 항상 첫날이 너무 힘들까 걱정이 된다.


겪지 않은 힘듦을 걱정하는 것은 아무 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냥 편하게 흐름에 몸을 맡기자. 내일 아침에도 전시 시작 전에 공원을 산책할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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