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출장 3일 차

MIBF 전시 첫날

by 박종호

오늘부터 사흘 간의 전시가 시작되었다. 첫날 아침은 부스의 테이블 위에 상품을 꺼내어 전시를 하고 노트와 명함, 리플릿 등을 보이기 쉬운 곳에 배치하는 등 상담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전시는 10시에 시작하지만 준비를 위하여 일찍 출발하느라 아침 식사 시간을 줄여야 했다.


전시장에 가는 길에 전시 중에 쓰일 비품들을 사러 슈퍼마켓 <Cold Storage>에 들렀다. 부동산이 비싼 지역의 슈퍼마켓이라서인지 물은 <에비앙> 밖에 안 팔았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랬던가, 한국에서도 안 마시던 에비앙을 꺼내 들었다. 에비앙의 물맛을 평하자면, 그냥 그렇다. 물맛이 찰진 삼다수와 백산수가 훨씬 낫다.


이번 전시는 부스의 위치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주최사가 부스 위치를 추천할 때 내가 요청한 두 가지는 메인 통로에 인접할 것과 중국 단체관에서 떨어져 있을 것이었다. 우리 부스 앞에는 중국 단체관이 있고 메인 통로와 정반대 쪽이다. 옆 자리는 계약이 안되었는지 아예 벽으로 막혀 있다.


아무리 만날 사람은 만난다고 하지만 다른 곳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데 우리 부스의 통로로 걸어 들어오는 사람들은 몇 되지 않았다. 다행히 그중에 한 둘 중요한 바이어를 만나기는 하였지만 트래픽이 적다는 것은 거래 성사의 가능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미팅도 헌팅도 많이 해야 여친을 만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전시는 한 없이 길게 느껴졌다. 원래 전시는 한가할수록 시간이 천천히 가고 힘이 더 든다. 나는 아주 지루한 전시, 전시장에 손님이 하나도 오지 않는 전시에도 참가해 본 경험이 있는 데 그때는 누구라도 지나가면 반가웠다. 기다리는 시간에는 <즐거운 편지>나 <임의 침묵> 같은 시를 외웠다.


전시를 여러 번 하다 보면 말을 걸 때부터 아니 멀리서 걸어올 때부터 그 사람이 나의 잠재적인 바이어인지 아닌지 판단이 선다. 들어서자마자 무슨 문제로 찾아왔는 지를 딱 알아맞추는 점쟁이의 '촉'과 비슷하다. 이런 촉은 다양한 사람들을 수 없이 만나며 길러진 감각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직업병이거나.


해외 전시장에서 우리 물건을 수입할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빠르게 상대를 파악하여 거래 성사 가능성이 낮거나 관련성이 없는 방문객들은 빠르게 지나쳐야 한다. 선별적인 응대가 몰친절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정된 시간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경험적에서 나온 방법이다.


오늘은 우리 부스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 되는 데로 붙잡고 한담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정보를 얻게 된다. 전시에 여러 번 참가하다 보면 나라를 바꾸어 가며 전시 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도 있다. 사고파는 사람들을 한 곳에 모으는 전시는 시장 같기도 하고 축제 같기도 하다.


대면 접촉이 제한되었던 코로나 때에는 전 세계의 모든 전시가 취소되었다. 온라인에서 상품을 찾고 화상미팅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온라인 전시와 미팅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오프라인 전시를 대신하고 새로운 거래 방식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코로나가 지나가자 전시는 이전보다 더욱 활기를 띄었다.


전시란 구닥다리 비즈니스 방식이라 생각되면서도 여전히 거래 성사율이 가장 높은 거래 방법이다. 역시 얼굴을 보고 이야기한다는 것만큼 신뢰를 담보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모양이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서로가 진짜를 알아보는 자기의 '촉'이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여전히 감성의 동물이다.


긴 하루가 지났다. 수고 많았다. 내일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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