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출장 4일 차

평범한 전시 2일 차

by 박종호

여행자들은 현지인들이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보고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간다. 웬만한 여행지가 모두 나름대로 행복한 곳이라고 느껴지는 이유이다. 여행자는 그 사회가 가진 오래된 불안과 부조리와 불편을 모두 외면하고 잘 짜인 세트 안에서 자신이 설정한 역할극을 수행하다 돌아간다.


쿠알라룸푸르를 잘 지어진 도심인 KLCC는 여행자들에게 미래 도시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건물들 사이에는 지붕이 씌워진 고가로 연결되어 있어 사람들은 차들과 섞이지 않고 고가를 통해 걸어서 주변의 빌딩으로 이동할 수 있다. 고가 안에는 에어컨도 설치되어 있다. 그래도 덥지만.


전시장 뒤는 KLCC 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거대한 고무나무들이 서 있고 공원의 가장자리에는 러너들을 위한 트랙이 설치되어 있다. 마천루들 특히 트윈빌딩이 내려보는 이 공원은 마치 마천루에 둘러싸인 맨하튼의 센트럴파크 같이 생겼다.


KLCC 구역 안에는 여러 몰들이 들어와 있는 데 몰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 어제는 전시장에서 신고 온 신발의 밑창이 떨어져 <Pavillion> 몰 안의 <Parkson> 백화점에서 운동화를 하나 샀다. 꽤나 유명한 브래드를 50% 싼 가격에 사서 이번 출장의 기념품으로 삼았다.


어제 우리 부스에 찾아와 나의 불만을 들은 전시회 담당자 조엔은 약속한 데로 옆에 막혀있던 부스를 터서 우리 부스 크기를 두 배로 만들어 주었다. 부스 위치로 전시 관계자에게 컴플레인을 했던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이번처럼 옆 부스를 터서 부스를 넓혀준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사업이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한다. 마주치는 상황마다 내가 작은 가게 사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는 데 이를 스스로 <작은 가게 이론(SST : Small Shop Theory)>이라 부르기로 했다.


밤 새 부스는 사이즈가 두 배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나의 SST에 의하면 이미 단골을 확보한 노포가 아니라면 작은 가게보다는 큰 가게에 맛과 위생에 대한 기대가 높다. 부스가 커지니 회사가 더 튼실하게 느껴진다. 유명인을 광고 모델로 쓰는 이치와 같다.


전시 이틀 째인 오늘은 많은 바이어를 만났다. 그래서인지 어제보다 시간이 빨리 흘렀다. 이것은 평범한 하루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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