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집착, 우동의 발원지 후쿠오카
i.
TBC(서일본방송국, 후지티비 계열)의 아침 프로그램, <모모치하마스토어(ももちはまストア)>에 매주 수요일 정규 코너인 <우동MAP>은 리포터 오카자와가 후쿠오카현 내 각지의 우동집을 돌며 그 집의 대표적인 우동을 먹어 보는 프로그램이다. 한 지역을 방문하여 차를 타고 지나가다 혹은 걷다가 우동집이 눈에 띄면 가게로 들어가 즉석에서 촬영을 한다. 우선 리포터가 가게에 들어가 주인에게 촬영이 가능한지를 묻는 데 그동안 우동집 주인이 얼굴이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은 보았어도 촬영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편집 되었겠지.
이들이 지금까지 다려간 우동집은 600개가 넘는다. 오카자와는 하루에 최소한 두 세 집을 돌며 각 집을 소개하고 주인장이 내어 놓은 우동을 마지막 국물까지 깨끗이 해치우는 데(完食),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루에 저 많은 우동을 다 먹을 수 있나’하고 의아해하지만 실재로는 며칠에 나누어 촬영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지난해 12월, 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우동집을 모아 소개하는 잡지 <우동MAP>의 세 번째 판이 출간되었다.
ii.
후쿠오카 사람들의 면 사랑은 면을 사랑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유별나다. 일본의 대표적인 면 요리라면 소바(메밀면), 우동, 라멘(라면)을 꼽을 수 있다. 특별히 지역적인 특색을 갖지 못한 소바에 비하여 라멘과 우동은 일본 내에서도 지역별로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다. 후쿠오카와 큐슈 사람들에게 물으면 라멘은 돈코츠, 우동은 하카타 우동, 그리고 술은 이모(고구마) 소주라 말한다.
후쿠오카는 이전에 후쿠오카란 이름의 지역과 하카타란 이름의 지역이 합치어져 만들어졌다. 지금도 후쿠오카 사람들은 후쿠오카적인 무언가를 부를 때 ‘하카타’란 이름을 붙인다. 하카타역, 하카타 뱅(사투리), 유독 후쿠오카에 미녀가 많다고 붙여진 하카타 비징(미인), 후쿠오카 사람들과 약속하면 꼭 늦게 도착한다고 붙여진 하카타 지칸(시간), 그리고 하카타 라멘과 하카타 우동.
일본의 라멘은 국물을 만드는 주재료에 따라 쇼유(간장) 라멘, 시요(소금) 라멘, 미소(된장) 라멘,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토마토 라멘 등 여러 종류로 나뉘는 데 후쿠오카의 라멘 즉 ‘하카타 라멘’은 돼지 뼈와 고기를 우린 국물로 만들어 돈코츠(豚骨) 라멘이라 불린다.
우리가 면 요리를 먹을 때 국물 맛에 중점을 두는 반면, 일본 사람들은 국수 자체의 맛과 식감을 중요하게 여긴다. 국물 맛으로 차별점을 강조하는 라멘도 주문을 받을 때 손님에게 항상 ‘면은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어본다. 이럴 때 ‘많이 주세요’해 버리면 큰 일이다. 종업원은 손님에게 국수의 익힌 정도, 즉 당신이 좋아하는 국수의 식감을 물어보는 중이다. 푹 익힌 ‘부드러운 면’, 불기 전에 내어 놓는 ‘딱딱한 면’, 그 중간에 해당하는 ‘보통 면’ 중 하나를 자기가 좋아하는 국수의 식감에 따라 알려주면 되는 데, 나의 장인의 말씀에 의하면 후쿠오카의 돈코츠 라멘에는 어느 가게이든 ‘보통’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대단히 신뢰할 만한 정보이다.
iii.
후쿠오카 사람들은 우동을 좋아하는 것을 넘어 ‘원조’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후쿠오카시 하카타구에 있는 절, 승천사(承天寺)에는 ‘우동과 소바의 발원지(饂飩蕎麦発祥之地)’라고 적힌 비석이 서 있다. 11세기 승려 원이(円爾)가 중국으로부터 면 문화를 가지고 들어온 후 이곳에서 일본의 우동과 소바가 시작되었다는 설이다. 오래 전 후쿠오카가 한반도와 중국의 문화가 가장 먼저 전달되었던 곳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한 이야기이지만 천년 전 세워진 비문의 진위를 이제 와서 확인할 방법은 없다. 우리 말에도 ‘먼저 침 묻히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있지 아니한가. 내가 우리집 앞마당에 ‘AI의 발원지’라고 적힌 커다란 돌덩이를 세워 놓고 천년 쯤 지나면 사람들은 21세기 후쿠오카에 살던 ‘박 뭐시기’란 사람이 처음으로AI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될지 모른다. 역사는 항상 쓰는 놈이 주인공으로 나오기 마련.
하카타 우동은 다른 지방의 우동에 비하여 식감이 부드럽고 면이 두껍다. ‘마키노 우동’(牧のうどん)이 대표적인 하카타 우동 전문 체인점인데 우동집으로서는 독특하게 우동(면)의 식감을 (부드러운, 보통, 딱딱한 면 중에) 고를 수 있다. 이 집 우동은 나오자마자 금새 불기 시작하여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우동’으로도 유명하다. 대신에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 우동 국물을 한 없이 부어가며 먹을 수 있는 데, 우동을 먹는 속도가 면이 불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던 나는 정말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면 때문에 고생을 했다.
후쿠오카에서 가장 오래된 우동 가게는 1882년(메이지시대)에 창업하였다고 알려진 ‘카로노우롱’이다. ‘모퉁이의 우동(집)’(角のうどん, 카타노우동)을 여러번 부르다 보니 발음이 바뀌어서 나온 이름이란다. 십 년 전 즈음 와이프를 따라 케널씨티(몰) 근처에 있는 이 가게에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해져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는 데 역사와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동안 다시 찾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당시 나에게 그다지 임팩트 있는 맛은 아니었는가 보다. 유명세와 상관 없이 자기 입맛에 맞는 식당을 고를 수 있는 것은 나같이 노련한 현지인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후쿠오카 사람들이 후쿠오카가 우동의 원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하면 하카타 우동은 후쿠오카 사람들 사이에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린다. 앞서 말한 ‘마키노 우동’ 등 몇몇 가게를 제외하면 요사이 후쿠오카식으로 두껍고 부드러운 면을 내놓는 가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동에도 트랜드가 있는 모양이지.
iv.
아직 일본의 우동에 초심자라면 <우동MAP>을 만드는 리포터 오카자와처럼 발품을 팔아 다양한 우동을 맛보고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우동 노트’를 만들고 여러 지방의 우동집을 찾아 다녀야 한다. 가게들이 지닌 우동(면)들의 특징들, 즉 저마다의 우동이 가진 두께와 탄성 등의 아주 사소한 차이들을 알아채기 위하여 우동을 수 없이 먹어보고 기록하여야 한다. 그렇게 긴 훈련의 과정이 끝나고 이제 당신이 ‘맛있는 우동이란 무엇이다’라고 누구에게나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그 즈음에, 그대는 발견하리라. 주위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우동 프렌차이즈 ‘웨스트’(West)의 우동이 가장 맛있다는 사실을.
· 추기 : 나는 한동안 일본의 사누키(讃岐)란 지방이 우동의 발원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 데 ‘사누키 우동’이라 써 붙인 가게가 많은 탓이었다. 사누키는 일본 전체에서 1인당 우동 소비량이 가장 많은 곳이라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 별걸 다 조사한다.) 보통 사람들이 우동을 한 끼의 식사로 생각하는 데 반해, 사누키 사람들은 우동을 간식 정도로 여기고 그야말로 ‘밥 먹듯이’보다 더 자주 우동을 먹는다고 한다. 사람들의 극성스런 우동 사랑 덕에 사누키에는 우동집도 많이 생기고 그 중에는 맛집도 많아져서, 언제부터 인가 관광객들이 우동을 먹으러 찾아올 정도로 우동으로 유명한 지역이 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