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대지진, 9년 후

2020년 코로나 사태 속에 돌아본 동일본대지진(2011)

by 박종호

빈센트 반 고흐는 농촌의 풍경을 자주 그렸다. 그의 그림 <수확하는 사람(reaper)>에는 한 농부가 뙤약볕 아래에서 커다란 낫을 들고 노랗게 익은 밀대를 성둥성둥 잘라내고 있다. 고흐는 농부의 커다란 낫에 잘려나가는 밀대를 보며 인간의 죽음을 떠올렸다. (고흐가 동생 태오에게 보낸 편지 중, 1889년9월 5-6일) 농부의 낫이 지나가면 밀대들은 우수수 쓰러진다. 자연의 낫 질은 무차별이고 불가항력적이다.


고흐는 ‘마치 온세상에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찬란한 태양빛 아래에서 쓰러지는 밀대를 무덤덤하게 바라본다. 자연의 일이란 우리의 감정이 들어설 여지를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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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오늘은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한지 9년 째 되는 날이다. 2011년 3월 11일 오후2시 46분, 일본 동북 지방 미야현 오시카반도에서 동남 방향으로 130킬로 떨어진 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은 (지진계 측정이 기준인) 리히터 규모9.0, (피해 규모를 기준으로 한) 진도 7.0을 기록하였고 해안 지역에 높이 10미터 이상, 최대 폭 40미터에 달하는 쓰나미를 몰고 와 약 560 제곱 킬로 미터의 지역이 침수되었다.


이 지진으로 인하여 1만 6000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6000명이 넘는 중경상자, 2500여명의 실종자가 발생하였는 데, 사망자 중 대부분은 쓰나미로 인하여 익사하였다. 지진 이후 지금까지 연관 사망자도 3700여명에 이른다.


코로나 확산에 대한 우려로 그동안 매년 이어졌던 대규모 추도 행사는 취소되었지만 테레비젼에서는 저마다 동일본대지진 9주년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였다. 9년 전 오늘 동일본 연안에서 거대한 파도가 집과 차, 사람을 쓸고 가는 영상을 당시의 현장음과 함께 흘러 나왔다. 바싹 말라버린 듯한 숫자들과는 달리 당시의 영상들은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 시각, 사람들은 오로지 자신이 서 있는 곳에 따라 생사가 갈렸다.


2011년, 우리 식구는 미국 켈리포니아(Torrance, CA)에 살고 있었다. 태평양 너머 와이프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전파를 타고 티비 화면으로 전해졌다. 토렌스는 일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였고 우리가 사는 타운하우스의 이웃집 아주머니도 동북지방 출신이었다. 다행히 우리 주변에는 지진의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이 없었다. 있었다고 하여도 아마 우리는 그들을 위한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말로 차마 다 전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


ii.


살아 남은 사람들은 당시의 일을 이야기했다. 당시의 영상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아이는 청소년이되고 중년은 노인이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9년전 오늘이 눈 앞에 생생히 남아있다. 지진은 그들의 삶을 지진 전과 지진 후의 삶으로 나누어 놓았다.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긴급 소계령으로 옷가지도 재대로 챙기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 했던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주민들에게 얼마전 일본 정부는 해당 지역의 복구가 완료되어 피폭으로 부터 안전하다며 ‘귀환’을 허가하였다.


일본인들에게 고향의 힘은 대단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향은 태어난 곳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삶의 터전이고 죽기 전에 반드시 돌아가야하는 자리이다. 지진으로 인하여 하루 아침에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이제나 저제나 고향에 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방송국 카메라는 고향으로 돌아온 한 중년 남성을 따라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9년 만에 돌아 온 집은 사방에 곰팡이가 가득하고 가재도구들은 당시 지진에 바닥에 널부러진 채 썩어가고 있었다. 애초에 수십년이 걸릴 것이란 방사선 피폭의 복구가 올림픽을 직전에 두고 10년도 안되어 안전하게 복구 되었다는 정부의 말도 믿기 힘들지만 ‘그날’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고향이란 묵직한 추를 마음에 달고 사는 일본인들에게도 한동안 힘든 일이 될 것 같다.


iii.


2013년, 7년 후의 올림픽 개최지로 동경이 선정되었다.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가 발생한지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일본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지만 (전체 인구 1억 3000만명 중90세 이상이 200만명을 넘고 100세 이상이 7만이 넘는) 초고령화와 함께 산업의 성장 동력을 상실한 일본은 금번 올림픽 개최가 내수 진작과 인프라 개발 등을 통하여 이전의 영화를 되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56년 전, 1964년 개최된 동경 올림픽의 향수가 가득하다. 동경 올림픽은 아시아 국가에서 최초로 개최된 올림픽이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자신들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전세계에 알렸다. 이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산 컬러 텔레비전이 전국에 보급되었다. 한국나쇼날(national)전기가 한국에서 최초로 컬러 티비를 생산하기 10년 전 일이다. (1974년, 삼성전자 ‘75년)


지난 리오 올림픽 폐막식에서 다음 올림픽 개최지를 소개하며 마리오 복장을 한 아베가 지구를 관통하여 리오의 스테이디움 가운데에 뿅!하고 나타났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일본은 아베를 동경 집무실에서 리오의 스테이디움으로 순식간에 옮겨 준 그 터널처럼 올림픽이 뿅!하고 다시 한번 이전의 영화를 돌려줄 것이라 믿었고 나라의 모든 경제 시간표를 올림픽을 기준으로 맞추어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그동안 지속적인 국제 사회의 경고에도 방사능 피폭의 위험성을 무시해온 이유이다.


지금은 코로나라는 복병이 갑자기 나타나 일본 정부가 눈 뜬 장님 행세를 하며 애써 외면해온 방사능 위험을 대신하여 올림픽 개최의 가능성을 급격히 어둡게 하고 있다. 벌써부터 만약 올림픽 개최가 내년까지 미루어진다면 ‘Tokyo Olympics 2020’이라 적힌 기념 제품들의 ‘2020’이란 숫자를 어떻게 ‘2021’로 바꿔야 할지 고민한다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농담이 오간다. 개최를 취소하게 되면 경제적 손실이 88조(원)에 이르는 데 일본이 먼저 취소를 하겠다고 하면 보험비를 받을 수 없으니 IOC가 취소 통보를 내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진위 불명의 기사도 나온다.


iv.


2016년 10월, 후쿠오카 시가 큐슈대학과 함께 주최하는 ‘innovation studio’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총 8주간의 프로그램으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팀을 이루고 한 가지 주제에 대한 다양한 솔루션을 찾는 데, 이 중 성공적인 프로젝트에는 후쿠오카시에서 사업화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는 재해 방지와 재난 후 도시재생에 관한 주제였는데, 그해 4월 쿠마모토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던 것(쿠모모토 대지진)과도 연관이 있었다.


이후 참가한 start-up 육성 프로그램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가 재해, 특히 지진에 대비한 상품과 서비스의 개발이었다. 이미 일본은 재난 대비 용품이 잘 발달되어 있다.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드라이푸드, 5년간 보관이 가능한 생수, 수동 발전식 렌턴과 라디오, 일회용 화장실 등등. 그리고 대부분의 집들이 최소한의 재난 대비 물품과 비상식품을 챙겨 놓는다.


일본은 ‘재난 대국’이다. 일년 내내 크고 작은 지진과 태풍이 수없이 지나가고 몇 년에 한 번은 꼭 ‘기록적인‘이란 수식어가 붙는 큰 재난이 일어난다. 사정이 이러하니 재난에 대하여 일본 만큼 철저하게 대비하는 나라도 없다. 전국 어디서든 지진이 발생하면 거의 즉각적으로 속보가 뜨고 태풍과 호우에 대비하여 기상청은 최첨단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모든 지역이 재난 발생시 주민들의 피난 지역을 지정해 놓고 있으며 재난 시 행동 요령에 관하여 지속적으로 알리고 교육한다.


하지만 자연의 재해는 항상 인간의 예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애초에 자연의 작은 움직임에도 조금처럼 대응하기 힘든지도 모른다. 고흐가 무덤덤하게 보았던 자연의 낫 질이 두렵고 두렵운 이유이다.


iv.


일본에는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지금 사는 모모치하마로 이사 오기 전, 오하시라는 동네에서 살던 널찍한 개인집에서 살았는 데 작지만 멋진 정원이 딸린 이 집은 지은지 30년이 훌쩍 넘은 ‘고택’이었다. 일본에서는 우리 식으로 아파트에 해당하는 멘숀이나 개인집이 오래되었다고 부수고 다시 짓기 보다는 내부와 외벽을 깨끗하게 수리하여 사용하니 오래된 집이어도 리모델링을 한지 얼마 안되었다면 들어와 사는 데는 새 집과 크게 다를 것이 않다.


문제는 오래된 집일 수록 지진을 대비한 내진 설계가 취약한 것이다. 사상자 5만명을 기록한1995년 고배대지진 이후 일본은 건물의 지진에 대비한 설계 기준을 대폭 강화하였다.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변화는 수도 꼭지에 있다. ‘95년까지는 레버를 아래로 물을 켜고 내려서 잠그는 수도가 많았는 데 고배대지진 이후에 개정된 건축법에는 레버를 위로 올리면 켜지고 내리면 잠기는 수도꼭지를 사용하는 규정이 생겼다. 혹시 일본에 와서 식당 화장실의 수도꼭지가 레버를 위로 올려 잠그는 것이라면 살짝 가까운 비상구를 확인해 둘 일이다. 나도 넘겨 들은 이야기이니 믿거나 말거나.


*이 글은 2020년 3월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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