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위스키 간략사

한국산 위스키의 탄생을 기다리며

by 박종호

i.


글감을 찾으려 웹 서칭을 하고 자료들을 이것저것 펼치다 보면 의외의 발견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지난 주말에는 술에 관한 글을 쓰려다 20년 전 바텐더(조주사)교육을 받았던 씨그램스쿨의 초대 원장 김종국선생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서울대 농화학과 63학번인 것을 고려하면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인데 2009년부터 시작한 네이버 블로그에 작년 여름까지 꾸준히 글을 올려 놓으셨다.


김종국 원장은 대학 졸업후 당시 두산 계열이었던 OB맥주에 입사하여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영국에서 위스키를 배워 돌아왔다. 그는 캐나다 씨그램사와 합작하여 만든 OB씨그램(現디아지오)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를 세웠고(1982년)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패스포트와 썸씽스페셜(시바스브라더스社 계열의 힐 톰슨社 제품)의 을 국내에서 생산(병입), 출시하였다.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 9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는 더이상 한국에서 위스키를 증류하고 있지 않다(註1). 천사가 마셨다고 하여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는 불리는, 숙성 중에 오크통에서 증발되는 위스키의 양이 너무 많아 채산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한다.(일반적으로 매년 2%, 한국 5%) 기후 탓이고들 하나 내 생각엔 확실히 ‘그들’이 너무 많이 마시는 탓이다.


ii.


몇 해전(2014) 방영되었던 NHK아침 드라마 <맛상(マッサン)>의 주인공은 일본에서 처음으로 위스키 공장을 세운 타카즈루 마사타카(竹鶴政孝)이다. ‘맛상’은 그의 애칭.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양조 기술을 배워온 그는 코토부키야(寿屋,현재 산토리위스키)의 토리사장 (鳥井信治郎, 토리 신지로)과 함께 일본의 첫 번째 위스키 공장, 야마자키(山崎)증류소를 세우고(1924년) 이후 독립하여 니카(Nikka, 註2)위스키를 설립(1934), 자신만의 위스키 만들기 시작했다.


십년 쯤 전부터 산토리 위스키를 중심으로 일본 위스키가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야마자키, 하쿠슈, 히비키와 같은 고급 제품들은 없어서 못파는 정도에 이르렀다. 일본에서 정통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한지 10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이룬 쾌거이다.


오늘의 일본 위스키가 있기까지는 타카즈루씨와 같은 장인들의 헌신과 당시 사업가들의 대담한 투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양질의 제품을 싼 값에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무엇보다 ‘진짜베기’(정통 위스키)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들의 열정에 부응하여 일본인들의 국산 위스키에 대한 사랑또한 대단하다. 마트에서는 가격대 별로 다양한 일본 위스키를 만날 수 있고 여느 식당에서도 술을 파는 곳이면 위스키와 탄산을 섞은 ‘하이볼’을 맛 볼 수 있다.(註3) 무엇보다 일본 위스키는 일본 주당들에게 골라 마시는 술의 종류를 하나 더 늘려 주었고 구지 큰 돈을 지불하지 않고도 위스키 한 잔으로 하루를 멋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집 밖에서 위스키를 마실 때면 언제나 바가지를 쓰는 기분이다. 관세 등의 세금으로 국내에서 파는 양주의 가격이 해외에 비하여 월등히 비싼데에다, 바에서는 이 가격에 ‘따따블’, ‘따따따블’ 혹은 그 이상의 가격으로 술을 팔기 때문이다. 알 수록 속이 쓰리다. 우리에게 산토리나 니카(nikka) 같은 회사가 있었으면 이런 폭리는 참고 당할 일이 없었으리라.(내 참고 마신다)


iii.


언젠가 우리도 한국을 대표할 만한 위스키 하나 쯤 가질 수 있을까. 20세기의 ‘실패한 꿈’으로 접어두었던 국산 위스키의 꿈을 21세기에는 다시 한 번 시도할 수 있지 않으려나. 혹시 우리가 언젠가 멋진 한국산 위스키를 가지게 된다면 40년 전 이천에 국내 첫번째 증류소를 세웠던 김종국선생은 국산 위스키의 원조로 기억될 수 있지 않으려나. 언젠가 포장마차에서 제대로 된 국산 위스키에 얼음을 띄워 홀짝 거리거며 꼼장어와 오돌뼈를 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 추기:


내가 씨그램스쿨을 다닌 것은 1998년 즈음으로 기억된다. 교대역 근처에 있던 씨그램스쿨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두시간씩 6주간 열린 <조주사 전문가 과정>에 참가하였다. 대학생은 나 혼자였고 대부분의 수강생이 현역 바텐더이거나 업소의 주인들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특급 호텔의 바텐더들이 커피와 음료부터 맥주, 와인, 위스키까지 광범위한 소재로 강의를 했고 당시에 흔하지 않던 와인과 위스키를 시음할 수 있었다. 술이라면 얼마든지 마실 수 있을 것 같던 당시의 나는 강의 중의 시음만으로도 즐거운 추억이었지만 당시 주워들은 술에 관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좋은 안주거리가 되어준다. 물론 나의 빈약한 기억력은 왕왕 왜곡된 정보를 술자리에 확산시킨다. (다행히 듣는 분들도 잘 잊어 주신다)



——

註1) 이천의 증류소에서 숙성된 원액이 사용되어 출시되었던 유일한 제품은 <디프로매트(Diplomat)>이다.(1987년) 알콜도수40%. (스카치원액 42%, 국산원액 37%, 주정 21%.)


註 2) 초기 회사 이름은 <大日本果汁>, 약칭 <日果(nikka)>, 1950년대 아사히맥주로 편입.


註3) 한국에서도 이자카야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던 산토리 위스키 하이볼을 만드는 산토리 위스키 ‘카쿠빙(角瓶)은 1937년에 출시되어 현재도 일본 내 판매량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 위스키로 비싸지 않은 가격에 구매가 가능하다.(700ml 기준 1200엔, 4리터 약 7000엔) 나도 집에서 이 ‘카쿠(角) 하이볼’을 종종 ‘말아’ 마시는 데 경험상 반드시 산토리 위스키 마크가 박힌 전용잔을 사용하여야 제 맛이 나고 되도록이면 편의점에서 파는 큼직한 얼음을 넣을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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