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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克己)에 대하여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이자

by 박종호

어릴 적 학교에서는 극기 훈련을 갔다. 극기, 자기를 이긴다는 것을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래서 어릴 적에는 극기가 춥고 배고프고 무서운 것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이를 조금 더 먹으니 극기가 욕망에 대한 자재심으로 바뀌었다. 먹고 싶어도 참고하고 싶어도 참는 것. 그래서 더 먼 미래에 더 크고 의미 있는 성과를 가질 수 있는 자질이 극기라고 생각했다. 미래의 더 큰 보상을 위해 지금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를 참아라.


지금 생각하면 무엇을 참고 욕망을 극복하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두는 것이 유치하게 느껴진다. 극기라는 말에는 언제나 '남자답게'이라는 단어가 붙어 '극기=마초'의 느낌까지 자아낸다. 나는 남자 고등학교를 나왔는 데 겨울 조회 시간에 중년의 선배가 단상에 나와 냉수마찰로 극기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남자 호들갑이다.


오십에 가까워 다시 극기란 단어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요즘 느끼는 극기란 '다름에 화내지 않는 마음'이다. 화가 나는 이유는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을 내 마음처럼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생각과 명확하게 반대되거나 다른 생각이라면 오히려 쿨하게 존중하는 입장에 설 수 있다. "공감하지 못하지만 이해는 한다"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대상은 소위 내편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이다.


종교계에서는 서로 뿌리가 다른 종교보다 비슷한 데 다른 사이비와 끝에 가서 무언가 다른 이단이 가장 거센 증오의 대상이다. 정치에서는 서로 으르렁 대고 싸우면서도 상대당은 원래 저런 인간들이려니 하지만, 같은 당 안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을 배신자, 변절자라 부르며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우리는 상대가 내 마음처럼 바뀌어지기를 바라지만 내가 내 마음 바꾸기도 쉽지 않다. 다른 이들, 특히 가까운 이들의 생각이 나와 비슷할 것이라는 혹은 같아야 한다는 무언의 전재를 내려놓고 그들의 '다름'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나면 화 낼 일이 없어진다.


자기를 이겨야 어른이 된다. 하지만 어려서 붙은 사고의 습관은 쉬이 고쳐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반성하고 수행하고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자. 日新又日新.


(금번 100일 간의 글쓰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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