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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Apr 30. 2016

강요하지 마로라

덕후 테스트

우리들은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는 않는 사이가 됐다.


서로가 정한 1순위, 2순위, 3순위에 져버려서

당일에도 약속을 취소하는 그런 불투명한 사이다.

빼곡히 만났건 만나지 않았건 시간은 쌓여 처음 만난 때로부터 햇수는 8년이 넘었건만.


너밖에 지금 내 영혼의 외로움을, 일상의 건조함을 이해해줄거라 여겼던 바람은

이제 흔적이 없다.


우리가 살부딪치며 마주하고 있는 옆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일상을 함께하다 깊어지고

또 그러다 어느 순간 과거의 우리들처럼 이별하게된다.


왜 내가 전학가야하냐고 

세상에서 유일한 단짝과 헤어지기 싫다고 울고불고 매달렸던

초등학교 6학년이, 세월이 흘러 다시 고등학교에서 그 친구와 만났을 때

다시 친구가 될 수 없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




                                                                                            출처 : rappart.com




하지만 요즘들어 사람을 만나는게 하나의 노동같이 느껴질 때


이렇게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친구들이

정말 좋다.



태어난지 8개월되는 조카 얼굴도 2주만에 비춰주니까 얼마나 찡찡거리면서 낯을 가리던지.

마음을 사려고 굴욕적인 짓을 했다. 가족이란 존재도 이렇게 사람을 혹사시키는걸.



사람 만나는게 나이가 들수록 피곤해져만 가는 이유는

상대가 내게 뭘 줄수 있고 그 댓가로 나는 뭔가를 줘야한다는

인간관계 속 계산기가 점점 업그레이드하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만났던 인사담당자님도 그랬다.

얌전하고 말이 없는 선배에게 "어떤 분야의 덕후신가요?"라는 질문.


선배는 성실하고 모범생 스타일이어서 우물쭈물하고 두루뭉술하게 답하고 말았는데

그게 담장자님이 원하던 답이 아니었다는 것은 그 자리의 모두가 느꼈다.

 


덕후성


마이너하고 집중적인 특정한 분야의 취미가 다른 분야에서도 곧 능력을 발휘한다는 믿음으로

요새 트랜디한 인재상이다.


하지만 왜 굳이 그래야해요?


나는 소설책을 좋아하고, 유기농식품에 탐닉하는 경향이 있어요.

미지근하게 좋아해요.

그정도의 온도로 내가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거라구.


덕후의 기준 좀 정하지 말아줄래?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테스트할때부터

덕후라면 응당 이래야한다는 공식을 들이댈때부터

사랑한다면 이정도는 해줄수 있는거 아냐라고 투덜대는 애인에게처럼

어쩔줄모르겠는 기분이다.


  

게다가 일상을 충실히 산 사람이라면,

<능력자들>에 나온 사람들처럼

치킨모양만 가지고도 전국 시장 중 어느시장에서 파는 치킨인지 알아맞추는

덕후가 되긴 어렵다.


왜 자기가 맡은 바를 최선을 다해 성실해 하고, 나머지 욕구들은 절제하며 해왔던

삶의 무수한 노력들을 왜 하찮게 여기는걸까.


그때의 목표와 과제에 집중하며 차곡차곡 쌓은 노력들을

한탕주의적 성과측면에서 비웃고 무시하는 풍조가 너무나 만연하다. 우습게도



아무런 목적없이 이유없이 무작정 끌렸으니까

알아서 깊이를 조절할테니까

쓸데없이 장려하거나 조장하지 마시길


인간은 모두 무언가의 덕후라는 사실은 틀림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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