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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May 19. 2016

이 시대의 사랑

최승자를 읽다

이 시대의 사랑 _ 최승자


 시가 너무 멀리에 있다. 나는 좋은 글을 쓰지 못할 것이다. 솔직하게는 써야지. 며칠째 잠을 못자 따끈한 눈을 깜빡거려본다. 참 건조하다. 시가 스미기엔 날씨도, 나도. 일주일 내내 학교에 나오고 있다. 컴퓨터. 그러니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다. 그 옆에 최승자의 이시대의 사랑이 있다. 


사랑은 언제나 

벼락처럼 왔다가 

정전처럼 끊겨지고

갑작스런 배고픔으로 

찾아오는 이별


「 여자들과 사내들 中 」 - 최승자


 연애는 사랑인가? 어두운 배경이 깔리는 시간의 지하철에서 너와 통화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자주색 소쿠리를 들고 하모니카가 연주되는 스피커를 단 분당선의 할머니 걸인도, 꼴꼴 꼬여버린 수화기선같은 움직임의 지체장애우도, 김치전 냄새가 나는 트림을 하는 술주정하는 아저씨도. 모두 보지 못했다. 전화기에 갖다댄 귀만 살아있었다. 나머지는 질끈 감았다. 


 “시를 쓰겠다는 동기가 있어요” 자현오빠의 말이었다. 참 무모하다. 149cm에 32kg 의 삶을 감당하겠다는 걸까, 고시원과 원룸촌을 전전하며 살다가 들어가는 정신병원에서 “밥 잘 주네” 하며 살 수 있다는걸까. 강렬하지만 실체는 없는 삶의 열망에 담글 수 있단말인가. 최승자다.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3호선 지하철 충무로역에서, 종로3가 길가에서, 마주쳐 뒷걸음질쳤던 혼자 떠드는 작은 여인이 아니었을까.


 왜 이런 시를 쓴걸까. 왜 미쳐버린걸까. 왜 타협하지 않는걸까. 다시 되돌아오는 길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죽자고 덤벼든걸까. 인간의 정체성이 쓰레기고 배설물이라면, 최대한 비슷하게 생겨먹은 것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뀌고 싸면서 살면 그뿐인 것 아닐까. 생명의 허무주의를 뜨겁게 노래한다는 게 오히려 모순아닌가. 성실하면서 건강하기까지 한 자기파괴가 읽힌다.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아 썅 ! (왜 안떨어지지?)  


 「 꿈꿀 수 없는 날들의 답답함 中 」 


 자해하지 않으려면 거짓과 가벼움을 욕망해야 한다 세상에 흠집을 내가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나를 낳은 이들이 그렇게 살아갔고 그 윗세대들이 생존해왔다. 1975년 이 시집이 쓰여질 시기에 인혁당사건이 있었다. 18시간만에 사형이 결정됐다. 신영복 선생님께선 20년 20일동안 오래 참으셔서 출소할 수 있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같은 책도 내시고 지용오빠의 아버지도 되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젊은이들에게 강연도 여시며 나같은 사람에게도 하늘 한번 풀한포기 쳐다보게 만드셨던 큰 스승이셨다. 산다는 건 ‘이렇게 살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최승자시인이 노래하는 자기소멸에 비켜서고 싶다. 


 악어같은 작은 이빨의 남자친구는 대체로 귀여우니까 그냥 사랑하기로 한다. 용돈이 들어오는 날엔 만삼천원 초밥정식도 먹을거다. 앞길을 가로막는 미친 이의 앞을 빠르게 걸어 빠져나올 것이다. 월급을 200만원보다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빅데이터 수업도 안구건조증이 온다 할지라도 인공눈물을 짜가며 배울 것이다. 엄숙한 표정을 지어가며 최승자 시집과 페미니즘 책을 옆구리에 끼고 학교를 누빌것이고, 교실 앞자리에 앉아 거슬리는 질문이나 해댈 것이다. 그게 내가 선택한 삶이다. 자기파괴에 따르는 자위적 쾌감이 더 공허하다. 태어난때부터 죽음은 마주보며 온다. 최승자 시인은 그 블랙홀로 질주한다.


 깨고 싶어 부수고 싶어

 울부짖고 싶어 

 비명을 지르며 까무러치고 싶어 

 까무러쳤다가 십년 후에 깨어나고 싶어


 「 나의 시가 되고 싶지 않은 나의 시  


 잠을 좀 자고싶다. 사실은 거짓말인 셈이다. 어느순간 뚝 떨어져 심하게 차여버린 시같은 것에 대하여 쓴다는 건 고슴도치의 털을 빗는 심정이다. 시인들은 다른 시인에 대한 에세이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최승자는 <시인 이성복에게>에서 키 큰 바람, 바람의 거인이라는 문장은 남겼어도 골수를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내는 착즙 에세이는 흥 하며 달아났을 것이다. 시인들이 버리고 간 일들을 나같은 사람들이 한다. 수업에 들어가 내 이름이 불리기를 귀기울여 대답하고, 여름이 오면 망각해버릴 조별과제라는 전쟁을 치른다. 다음에 다시 만날 가능성이 적은 학우들에게 나의 무능력을 들키고, 그들의 무지를 속으로 냉소하면서.


오 행복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삼십세 中


 하도 앉아있어 뻑뻑해진 척추를 껴안고 찌뿌둥한 표정을 하며 졸리게 사는 것 말고는 정말 뾰족한 수가 없어보인다. 그래 이건 그냥 징징거리는 얘기다. 타인의 감수성에 이입된 나머지 새들도 “자본 자본” 하며 우는 소리를 듣게될 바엔 그냥 나의 20대의 이야기나 해보련다. 우리들 문제를 외면하는 늙은 사람들에게 빼액거리고 싶다. 설령 내 미래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하더라도. 학교 다니는 것보다 성실히 낸 등록금이 몇천인데 왜 바퀴벌레 기어다니는 화장실은 그대로인건지, 왜 생리혈 묻은 강의실 의자는 바뀌지 않는건지, 교수님들은 왜 10년 전 자료들을 가지고 강의하시는건지 묻지 않을수가 없다. 왜 대한민국 청년들은 77명을 학살한 노르웨이 테러범이 수감된 교도소방보다 작은 고시원에서 살면서도 부모에게 죄인이 돼야하는걸까. 속수무책으로 삼십살, 마흔살로 곤두박칠치듯 늙어갈 때 쯤엔 알 수 있을까. 아무래도 돈많은 애인이나 얻어서 따뜻한 무덤을 마련해 천천히 취해가는 술을 마시다 천천히 꺠어가는 커피를 마셔야겠다. - [우우, 널 버리고 싶어]



내 청춘의 영원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출처 : 1000drawings.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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