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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Aug 13. 2019

트럼프가 한국 와서 ‘콕’ 찍은 중소기업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국내 주요 기업인 중 제가 있었던 이유는···”

진원무역 오창화 대표
50년 역사 지닌 수입과일 1위 유통업체
트럼프 대통령과 경제인간담회에 참석해
“미국에 입양 간 한국인 시민권 위해 힘써달라”


“트럼프 대통령과의 간담회 참석 전 긴장 많이 했습니다.”

6월30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국 주요 기업인 간 간담회가 열렸다.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주요 기업인 20여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미국에 투자했거나 인연이 있는 기업이었다. 허영인 SPC 회장, 박준 농심 부회장, 박인구 동원그룹 부회장 등이 주요 유통·식품 경영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기업인 중엔 낯선 중소기업의 이름이 있었다. 미국 청과물을 수입하는 오창화 진원무역(49) 대표를 강서구 진원무역 본사에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과 간담회 전 한국 기업들에게 미국 투자를 요청할 것이라는 추측기사가 있었습니다. 미국 농산물을 취급하는 저희 진원무역 같은 회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진원무역이 수입해올 수 있는 농산물은 올해가 최대치입니다. 현실적으로 투자를 더 늘릴 수는 없었죠. 그러나 예상과 달리 30분간의 회동에서 대미 투자 압박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바나나 도매상으로 시작해 국내 수입과일 유통업체 1위로


진원무역은 국내 수일과일 유통업체 중 연매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이다. 작년 매출 1676억원(영업이익 5억9906만원), 2017년 1836억원(영업손실 10억7000만원), 2016년 1839억1000만원(영업이익10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회사는 급변하는 근·현대 한국 무역의 굴곡을 거친 53년 전통 기업이다. 오창화 대표의 부친 고(故)오영훈 회장은 1964년 남대문에 과일 도매상 대원상사를 냈다. 그가 팔던 과일 중 당시 가장 귀하다는 바나나가 있었다.


바나나는 후숙·보관 방법이 따로 있어 당시 기술력으로는 손이 많이 가는 작물이었다. 오영훈 회장의 기상 시간은 언제나 새벽 네시. 아침부터 저녁까지 냉동 창고에 넣어둔 바나나를 들여다보며 장사를 이어갔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오영훈 회장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근면 성실이었다고 한다.


“사과·귤·포도는 물건이 들어오는 즉시 좌판에 올려 팔 수 있어요. 그런데 바나나는 온도에 민감한 과일이다 보니 보관·판매하는 게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죠. 60년대 바나나를 취급하는 과일상도 많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바나나를 먹기 위해서는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귀하고 값비싼 과일이었습니다. 바나나 후숙 노하우는 대한민국에서 아버지가 제일 잘 알고 계셨죠.”

1980년대 남대문 시장 일대의 모습. /유튜브(@Time traveler 시간여행자) 채널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

1982년 신문기사를 보면 바나나 가격은 kg당 7000원. 바나나는 보통 한송이당 2kg정도다. 반송이에 7000원의 가격이 매겨진 것이다. 80년대엔 라면이 100원이었다. 대다수 서민에게 바나나는 고급 과일이었다. 오 대표의 말대로 그 시절 바나나는 병원에 입원해야지 먹을 수 있던 별미였다.


수입 금지하자 경남 진주에 국내 최대 바나나 농장 세워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이 있었다. 1978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란 정부가 석유수출 중단에 나서자 배럴당 13달러대였던 유가는 20달러로 올랐다. 1980년 9월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30달러까지 치솟았다. 세계 각국에선 경기침체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내세웠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내산업의 대외경쟁력을 키운다는 이유로 수입 규제를 강화했다. 바나나는 1980년부터 90년대까지 나라에서 수입을 금지하던 농산품이었다.

tvN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바나나. /tvN캡처

“아버지는 과일도매상을 운영하다 1979년 수입과일을 전문 유통하는 진원무역을 차렸습니다. 바로 다음 해 1980년 정부에서 해외 농산물 수입을 금지해 타격을 입었죠. 그래도 바나나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절을 타지 않고 직원을 일년 내내 고용할 수 있는 유일한 과일이었기 때문이죠. 아버지가 기업을 일구신 이유는 많은 직원들을 고용해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였으니 바나나 사업은 포기할 수 없었던 거죠. 이스라엘에 직접 가서 온실로 바나나를 재배하는 기술을 익힐 정도로 열정적이었어요. 82년 경남 진주에 바나나 농장을 지었어요. 국내에서 가장 큰 4.5m 높이의 바나나 비닐하우스였죠. 기후·습도 등 여러 악조건을 딛고 농장을 운영했어요.”


1991년 정부는 바나나를 수입 금지품목에서 해제했다. 이후 바나나를 수입하는 유통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100개 이상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보관·후숙·판매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다. 얼마 가지 못해 폐업 수순을 밟았다. 진원무역은 이 시기를 지나 살아남았다.

진원무역 부산 신항 센터. /진원무역 제공

경쟁업체 많아지자 설비투자로 눈 돌려 어려움 돌파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경쟁업체가 많아지자 진원무역이 한 일은 설비 투자였다. 1993년 진해에 벌크선 전용 물류센터를 만들었다. 해외에서 전용선으로 들여온 바나나 컨테이너를 원스톱 서비스로 국내 도매업체들에게 유통할 수 있는 공장이었다. 이 덕에 세계 최대 청과회사 돌(DOLE)과 장기 판매 계약을 맺고 1993년부터 10여년간 거래했다. 그러나 2002년 돌 본사 측은 진원무역과의 계약 만료를 통보했다. 돌코리아로 직접 한국 시장에서 거래하기 위해서였다. 오창화 대표가 진원무역 경영에 뛰어든 것은 이때부터다.

진원무역 오창화 대표. /jobsN

“2003년 진원무역에 입사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돌 계열사에서 근무하며 무역업을 익혔죠. 회사에 들어와 보니 직원은 4~5명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한 공급업체에만 의존해왔던 게 문제였어요. 다른 과일 품목을 유통해 사업을 다변화해보자는 생각에 오렌지·자몽·레몬·체리 등 수입과일 업체와의 계약을 늘려갔습니다. 유니푸르티·썬키스트 등 다국적 기업과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죠. 진원무역의 장점은 깨끗하고 체계화한 작업설비를 갖춘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과일 바구니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에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국제 규격)에 맞는 위생시설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오창화 대표는 거래하는 수입과일 품목과 판매업체를 다양화해 매출을 늘려갔다. 2012년 온라인 쇼핑몰 만나몰을 런칭했다. B2B 사업뿐 아니라 B2C사업까지 판매 채널을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만나몰은 저렴하고 품질 좋은 국내·수입과일을 취급한다. 일반 소비자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생과일주스를 만드는 카페 사장들이 주 고객층이다. 

진원무역의 필리핀 바나나 농장. /진원무역 제공

2017년 필리핀에 대규모 바나나 농장을 건설한 것 또한 과일 공급처 다변화 정책 중 하나다. 오 대표는 필리핀 민다니오 농장에 자체 직영합작투자농장을 건설했다. 우리나라 기업이 필리핀에서 바나나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셈이다. 여의도 절반 크기인 40만평(약 150ha) 규모다. 25년간 땅을 임차했다. 150명 정도의 지역 주민을 고용했다. 오 대표는 “25년 후 빌린 땅을 더 비옥한 땅으로 만들어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유기농 비료 기술을 현지에 적용해 기존 필리핀 농가보다 농약 사용량을 절반 이하로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련한 자리에서 “미국에 입양간 한국인들의 시민권 획득 위해 힘써달라 당부”


오창화 대표는 기업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경영인이다.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오 대표는 “미국에 입양 간 한국인들의 시민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2000년 이전에 입양을 떠난 한인 입양인 1만명 이상은 미국 시민권을 자동으로 발급받지 못했다. 대다수 IR-4 비자를 발급받았다. 이 비자는 양부모가 미국에서 별도의 재판과정을 거쳐야만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들의 어려움을 토로할 만큼 오 대표는 오랜 시간 입양인의 권익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진원무역 오창화 대표(왼)와 필리핀 농장 일대 직원들. /진원무역 제공

현재 전국 입양가족연대 회장이기도 한 그는 다섯명의 자녀 중 2명의 아이를 입양했다. 넷째 아이가 태어난 지 하루 만에 하늘을 떠난 것이 계기였다. 보육원 아이들·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가 머무는 12개 쉼터에 매주 과일을 보내는 등 경제적 지원을 돕고 있다.


“태어난지 하루만에 아이를 잃고 나서 제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되짚어봤습니다. 기업을 이끄는 경영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보였습니다. 소비자에게 몸에 좋은 과일을 안겨드리고 직원들을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해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겠다 다짐했죠. 제 사업은 정치·기후변화·소비 트렌드 등의 영향을 받는데 모두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죠.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진원무역은 급변했던 지난 50년간 한국사회에서 살아남은 무역회사입니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소비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소신과 정직을 원칙으로 경영을 이어나가겠습니다.”


글 jobsN 김지아

freejia9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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