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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Jan 30. 2020

거절일기

오늘, 당신의 거절

무언가 결정할 때, 판단이 빠르게 서질 않아.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어.

강하게 주장하겠지.

결국 순순히 끌려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해.

그것도 아주 늦게 말이지.


*


최근 어떤 분이 전 남자친구에게 데이트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그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갈기갈기 할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황폐한, 너무나 황폐한.

얼굴 뜨겁도록 험한.

아아 이건 아니지. 그러니까 정말, 이건 아니지.


전 남자친구라는 분은 뜻밖에도 알고 지냈던 지인이었다.

그 관계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나는 아직도 모른다.

사실이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

무슨 수를 써서 알겠나.

두 사람이 나눈 대회인데. 행위인데.

타인이 연인과 나눈 은밀한 모든 것들을 알고 싶지 않다.

두 사람이 두 사람만의 추억을 쌓길 바란다.


다만 감히 오지랖을 부려 바라는게 있다면,

가능한 한 예쁜 추억을 쌓기를.


닳아빠진 운동화를 신고, 

목늘어난 티셔츠를 걸쳐도 빛나는 청춘인데.


몇밤 자고 일어나면 거품처럼 사라질 이 나날들을

함께 증명해준 존재다. 

부디, 소중히 대해주길 바란다.  


사랑엔 우열이 없다.

그 누구도 관계에 있어 우위에 서거나, 스스로 열등하다 느낄 수 없다.

그래선 안된다. 건강하지 않다.


한 사람이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고,

누군가 자신의 목소리를, 주장을 잃어버린다면

그땐 관계를 끝내야 한다.

과감하게 이별해야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부탁을 거절하면

이별할까 두려워서.

버림받을까 걱정이라 안된다 말을 못할 수 있다.

하기 싫다는 의사표현을 머뭇거린다.


한참 그렇게 내 목소리를 잃은채

악몽같은 시간을 보낸다. 


정신을 차리면 거울 속에는 왠 이상한게 있다.

가볍게 웃고 쉽게 즐거워했던 예전의 내가 아니다.

멋대로 기다리고 울면서 가슴을 두들기는 이상한 괴물이 서 있다.


너무 많은 여자들이

드라마 속 재벌2세에게 손목 잡혀 질질 끌려다니는

여주인공을 보면서 뭔가를 학습한다. 

예를 들면 교활한 여성상 같은거.

맥없는 순응과 무기력한 의사표현.


여성이건 남성이건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폭력 앞에서

단호하게 거절하고 그만두라고 의사표현할 수 있다.

그럴 권리가 있다.


상대가 내게 상처주고 있음을,

원하지 않는 행위를 강요하고 있음을,

스스로 예민하게 자각하고 상대방에게 알려야한다.

마땅히 참아야 하는건 아무것도 없다.

아무도 그럴 권리가 없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건 나 자신 뿐.

마음이 헷갈릴 땐? 그런데 누군가 결정을 재촉할땐?

그냥 노라고 한다.


(지금 당장 제 마음을 정확히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결정하라 채근하네요.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고 신중히 생각할 수 있도록 여유를 주지도 않네요.

그렇다면 나름의 매뉴얼을 정한대로 말씀드릴게요.)


"아니요"


오늘, 당신은 어떤 거절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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