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6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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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1년 다니고 그만둔 그는 학교가 ‘지옥’이었다. 스케줄대로 돌아가는 학교가 싫었다. 숨이 막혔다. 같은 이유로 직장생활도 하고 싶지 않았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빚이 1억원 넘게 불었을 때도, 라면 사 먹을 돈도 없어서 지리산에 내려가 1년 넘게 칩거 생활을 했던 때도 취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프리랜서 구인구직 사이트 ‘크몽’의 박현호(39) 대표 이야기다. 크몽은 개인이 자신의 전문분야를 서비스로 만들어 판매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일반 쇼핑몰이 옷이나 신발, 가구 등 유형의 물건을 유통한다면 크몽은 무형의 서비스를 사고판다. 서비스 범위에는 제한이 없다. 프로그래밍, 통·번역, 마케팅, 디자인, 법률상담 등 다양한 서비스를 거래한다.
프리랜서뿐 아니라 부수입을 얻으려는 직장인도 많다. 현재 활동 중인 전문가 수는 약 10만명. 2012년 6월 사이트 개설 후 지난 5년 반 동안 누적 거래 수가 50만건을 넘었다. 누적매출액은 300억원.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살 바에는 “거지로 사는 게 낫다”는 ‘상남자’ 박 대표를 만나 성공 스토리를 들었다.
빌 게이츠 롤모델 삼은 악동 창업가
그의 고향은 경남 진주다. ‘학교는 왜 다녀야 하는가’를 고민하던 학생이었다.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아있기 따분했다. 유일한 관심사는 컴퓨터였다. 여섯 살 때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 게임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초등학생 때는 컴퓨터 잡지에서 본대로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빌 게이츠의 자서전(생각의 속도를 읽다)을 읽고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컴퓨터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보자는 것. 빌 게이츠와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컴퓨터광(狂), 독학으로 코딩을 익힌 것, 학교를 싫어하는 것.
빌 게이츠를 인생의 롤모델로 삼고, 1997년 단국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역시 학교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1년 만에 휴학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바로 창업에 뛰어들었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판매하는 각종 컴퓨터 관련 부품을 떼어 와 주문을 받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일이었다. 당시는 PC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무렵이었다.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했다. 지금의 PC방 배경화면에 떠 있는 관리프로그램과 유사한 시스템이었다. TV 리모컨처럼 버튼을 누르면 바로 인터넷 실행과 게임 연결이 가능했다.
빚 1억원과 함께 신용불량자로 고향 돌아가
그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대부분 행동으로 옮긴다. 2005년 투자를 받아 블리자드에서 출시한 게임 ‘와우’의 아이템 거래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미국, 중국과 아프리카에서도 이용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거래량이 늘다 보니 사기가 많았다. 결국 회원 수가 줄어 2007년 사이트를 폐쇄했다. 이후 물품 직거래 사이트, 맛집 정보 제공 사이트 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반응이 좋지 않았다. 2010년 신용불량자 신세로 빚 1억원을 떠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빚이 1억원 이상 생기자 라면 사 먹을 돈도 없었습니다. 지리산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어요. 끼니는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2010년 집에서 1년 반 동안 컴퓨터만 하면서 외부 연락을 모두 끊었습니다. 신용불량자가 되니까 모든 게 정지 상태였어요. 하지만 창업 도전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어요. 취업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어요. 굶더라도 직장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 생각했었어요.”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했다. 왜 창업을 하고 싶었는지, 왜 직장생활이 싫은지 물었다. 다른 사람이 시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운영하는 ‘파이버(Fiverr)’라는 사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디자인 번역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주고받으며 소액을 거래하는 플랫폼이었다. 그의 고민과 맞닿은 사업 아이템이었다. 2011년 ‘파이버’를 롤모델 삼아 ‘크몽’ 사이트를 개설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어른이고 싶다”
크몽 개설 초기에는 거래 기준금액(5000원)이 있었다. ‘직장 상사 욕 들어주기’, ‘빵 사다 주기’, ‘모닝콜로 휘파람 불어주기’ 등을 거래하는 소소한 재미 위주의 서비스였다. 그러던 중 ‘캐리커처 그려주기’라는 서비스를 만든 디자이너가 있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늘며 프로필을 꾸미는 게 유행하던 때였다.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들이 늘면서 포토샵, 웹디자인, 브랜드 로고 제작 등 전문적인 서비스 영역이 늘었다. 거래 한도를 없애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2012년 가격 제한선을 없애자 외국어 레슨, 프로그래밍, 소셜미디어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들이 몰려들었다.
“서비스 산업은 시장이 아주 큽니다. 일을 구하는 프리랜서들의 영업과 홍보는 저희가 맡되 나머지 가격 책정, 선택과 거래 등은 거래하는 사람들의 몫이죠. 최대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게 저희 일입니다.”
2013년 월 매출 1억원을 시작으로 회사는 조금씩 성장했다. 2016년 11월 누적 거래액 100억원을 돌파한 이후 2017년에는 연 매출 170억을 달성했다. 1월 초 기준 누적 거래 수는 50만건에 달한다. 현재 크몽은 온라인 플랫폼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들을 위한 특강, 이벤트도 기획하고 있다.
“현재 직원은 40명이고 지금도 채용 중입니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입니다. 평균적인 직장인 근무시간보다 한 시간 적죠. 일을 적게 해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올해 말에는 월 매출 100억원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저도 크몽에서 창업 컨설턴트로 제 재능을 판매하는 중이죠. 좋아하는 것만 해도 인생이 짧습니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어른이고 싶어요”
글 김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