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은 분명 전쟁의 기록처럼 인류 역사에 남을 하나의 사건이다. 너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데다 심각한 경제적 타격과 산업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백신 접종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는 하나, 백신의 효능을 완전히 신뢰하기가 미심쩍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제적인 흐름에 맞게 단계적 일상회복을 해나가자는 '위드 코로나' 방안을 발표하고 나섰다. 코리안 스타일의 위드코로나에 대해 갖가지 설왕설래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겠다는 각성이라 생각한다.
코로나 시국에서 가장 좋았던건 위생에 대한 일반적 상식이 모두가 훨씬 향상됐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줄곧 지적받아왔던 '한 찌개를 여러명의 수저로 나눠먹기'는 이제 왠만한 도심 식당에서는 잘 찾아보기 어렵다. 또 영업소 내 곳곳에 비치된 손소독제는 '손을 자주 씻어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일깨워주는 좋은 도구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무조건 화장실에 달려가 손을 박박 닦아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지하철이나 버스 손잡이를 잡고 돌아와서도 손을 잘 안씻는 사람들이 있다. 그 손으로 본인 휴대폰은 물론, 다시 문 손잡이, 물병 등을 만질것이다. 생각만해도 눈이 질끈 감아진다. 위생관념이 아예 없는 사람보단 조금 약한 정도의 결벽증이 인체에 유익하다.
불편해도 깔끔을 떨 필요가 있다. 과장해 말하자면 생사가 달렸으므로 그렇다. 예전에는 뒷자리 승객이 추워할까봐 버스 창문을 여는것도 가끔 눈치를 볼 때가 있었다. 하지만 쿰쿰한 냄새가 남아있는 버스보다 잠깐 추워도 환기 잘 되는 버스가 훨씬 좋다. 버스 뿐만이 아니라 어느 공간이나 마찬가지다.
두번째로 좋았던건 길가에 취객이 잘 안보였다는 거다. 예전에 작업을 하다 경찰을 취재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코로나가 없던 시기다. 대한민국에 밤이 찾아오면, 밤하늘 별보다 많은 사람들이 술이 떡이 되어 길가를 기어다닌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을 주워 집에 안전귀가 시키는건 오롯이 그들의 토사물을 머리카락에 묻힌 경찰들의 몫이다. 적어도 내가 낸 세금의 10%는 길바닥에 누워있는 알콜중독자들을 위해 쓰였다. 그들은 몽둥이찜질로도 말을 안들을정도로 술을 좋아했는데(그렇다고 내가 몽둥이로 쳐본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예시를 든 것뿐.) 아주 상습적이었다. 나중에는 이름을 외울 정도였다. 벌금을 때려도, 망신을 줘도 술이 개가 되도록 마시는걸 막지 못했는데, 그 위대한걸 코로나가 해냈다. 밤늦게까지 술마시고 유흥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줄어드니 이혼율도 감소했단다. 이정도면 나름 평화에 기여한 몫도 있을 것 같다.
세번째 장점은 (여기까지 쓰고보니 코로나19 예찬론자가 되고 말았다. 사실 그런 감이 없잖아 있는데 열가지 좋은점을 늘어놓을 수도 있다. 사람 만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다 공감할거다.) 경제적 효율이 올라갔다. 그 안에서도 재테크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나는 주식 투자를 2020년 3월 즈음 시작했는데, 이후로 수입을 짭짤하게 거뒀다. 이런 말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에 늘어놓는게 사기꾼이라 생각할까봐 조심스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뭐 어쨌거나 사실은 사실이니까. 요샌 주식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나 루트가 워낙 다양해졌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폭발적으로 그 관심이 증폭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프리랜서의 시스템이 월등히 좋아졌다. 나는 코시국이 시작되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했는데, 한동안 준비하던 일이 있어서 당장에 수입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6개월 정도 지난 뒤 내가 일하는 분야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나니 일이 생각보다 신속하고 빠르게 구해졌다. 코로나 시국에선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프리랜서들에겐 보다 좋은 시스템이 갖춰졌다. 그렇다고 이 글을 보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도 프리랜서 생활을 해볼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죄송하지만 말리고 싶다.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20대다.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모델에서 기자로, 기자에서 방송작가로 커리어 전환을 했다. 이 과정에서 허접하게나마 끈질기게 해왔던건 개인 블로그와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통해 나의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 행위들은 내가 파리처럼 이리저리 직장과 직업을 바꿔도 입에 풀칠할 수 있게 해줬던 밑거름이 되주었다.
가끔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렇게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하냐고 묻는데, 사실 그 시간동안 내가 쏘아왔던 과녁은 단 하나였다. 나만 보이는 과녁이기 때문에 남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었을 뿐이지, 이젠 점점 완성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과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코로나19 사태가 완전히 종결된다 해도, 또 다른 변화가 우릴 찾아올 것이다. 그럴때마다 해야하는 것은 '나의 본질을 잊지 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다. '비포 코로나' 시기엔 상상하기조차 힘들었던 이 시간들을 결국 이겨낸 나 자신을 기억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또 적응해나가야 한다. 그래서 '리멤버 코로나' 정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