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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연인과 싸우지 않고 대화하는 방법

by 스몰빅토크

지난 주말,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아기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뒷자리에 앉은 커플의 대화가 들려왔다. 두 사람 몸에는 각각 개성있는 타투가 있었고, 옷도 상당히 스타일리쉬하게 입어서 눈길이 갔다. 나이대는 30대 중후반 젊은 커플로 보였다.

작은 카페 공간이라 목소리를 낮추지 않으면 소리가 꽤 울리는 공간이었다. 두 사람은 원래 목소리가 큰건지 이야기 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왔고, 공교롭게도 대화를 들었다.


두 사람은 결혼이 임박한 커플이거나, 장기간 연애한 커플처럼 보였다.

여자는 신혼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보통 요즘 결혼하는 부부들 보면 둘 중 하나가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더라고.

내 친구 OO은 이번에 결혼하는데..."


여자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흘끗 남자 쪽을 봤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얼음을 씹고 있었다. 눈에 초점이 풀린 채 먼 산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위험신호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빤 결혼해서 살면 어느 동네에서 살고 싶어?"

여자는 기세 좋게 계속 밀어붙였다. 남자의 앉은 자세가 점점 기운이 빠지는 듯 했다.

나는 점점 긴장감이 강해지는 걸 느꼈다. 사이렌이 울리고 있었다.


"나는 뭐...집이랑 가게랑 멀리 떨어지고 싶진 않지."


남자는 금새 방어적으로 팔짱을 꼈다. 안타깝게도 여자는 남자의 그 비언어적 신호를 읽어내지 못한 것 같았다. 내 무릎에 앉아있던 아기가 아기새처럼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입을 쩍쩍 벌리지만 않았어도, 여자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기, 당신 남자친구는 그렇게 다뤄선 안돼요. 이미 알고 있잖아요? 아니, 그것도 모르면서 저런 남자를 사랑하기로 한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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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두 사람 배경을 나는 전혀 모른다. 얼마나 사귀었고, 어떻게 사귀었으며, 결혼 얘기에 있어 어디까지 진척이 된건지도 전혀 알 수 없다. 그래서 사실 조심스럽다. 하지만 분위기만큼은 읽을 수 있었다.


남자는 머리가 긴 편이었고, 수염은 덮수룩하게 나 있었다. 반팔티 아래로 비춰지는 팔뚝과 손목까지 굵은 블랙 컬러의 타투들이 그려져 있었다. 손에는 수많은 반지 악세서리가 끼어져 있었다. 예술가였다. 혹은 그런 스타일을 추종하는 사람이거나. 뭐든 다 같은 선상이다. 예술가 타입의 사람들은 고집이 매우 쎄다. 건드려선 안되는 자존심의 영역이 무척 확실하다.


여자 쪽에서 계속 대화를 이어나갔고, 남자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예술가 타입의 남자들은 멋있긴 하다.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다. 자기 색깔 확실하고, 음악이나 영화 등 예술 분야의 지식이 깊다. 하지만 연인이 되기엔 여자 쪽에서 고생을 많이 할 수 있다. 일단 그들은 취향이 무척 까다롭다. 자기가 정한 기준과 선에서 엇나가면 마음을 닫아버린다. 의사소통 방식을 직접적으로, 다이렉트로 꽂기보다는 돌아돌아 해야 한다. 감수성이 크리스탈 유리병 같아서 다치지 않게 조심조심 다뤄야 하는 것과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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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주제는 갑자기 건너뛰어 남자는 자기 친구 두명과 함께 동업을 할 계획을 밝혔다. "셋이 똑같이 투자해서, 똑같이 지분 나눠서, 똑같이 나눠 가질 생각이야." 남자의 눈에선 열정의 불씨가 느껴졌다. 그 어떤 이야기를 나누던 때보다 목소리에서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자는 불안해했다. 걱정스러운 표정과 함께 나지막히 "나는 오빠가 OO 같은 사람 뭘 믿고 동업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가..."라고 했다.


나는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아니...절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군요...!' 결국 남자는 크게 화를 냈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고 난 뒤 남아있던 잔의 얼음들을 모두 입에 털어놓고 소리쳤다. "그건 니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지. 왜 내 사업 계획에 간섭을 해?" 라고 쏘아붙였다. 여자는 "간섭한 건 아니고...!!" 불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찬물이 끼얹은 듯 차가워졌다. 아무 말이 없었다. 남자는 짤막하게 "가자" 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자는 트레이를 정리하고 따라나섰다.


여기까지 대화 내용을 들었을 때 당신의 소감은 어떤지 묻고 싶다. 누가누가 잘못했고, 잘했고를 따지려고 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남녀 사이에서 그걸 따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국 기분을 잡쳐서 자리를 떠나게 된 이유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라면 만나지 않았을 타입의 남자다. 이런 남자들은 고집만 세다. 여자친구의 소중한 의견도 귀담아 듣지 못한다. 곁에 오래 있으면, 혼자 상처 입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헤어질 땐 헤어지더라도 의사소통은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과연 두 사람의 의사소통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순차적인 대화 내용과 그에 대한 잘못된 점들을 분석해보려 한다.


1. 일단 여자가 결혼 얘기를 먼저 꺼낸 것.


- 왠만하면 여자 쪽에서 결혼 얘기를 먼저 안하는게 좋다. 여자가 집도 있고 차도 있는게 아닌 이상 말이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어느정도 밑천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이성적인 남자라면 자기가 집도 절도 없으면 결혼은 커녕 연애도 안하려 한다. 남자가 가진게 있는데 결혼에 뜸들인다? 그러면 당신은 결혼상대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 쪽에선 남자가 먼저 결혼 얘기를 구체적으로 할 때 까지 그냥 기다려주는 게 좋다. 기다리지 못해서 감정이 불편하고 헤어지는 게 맞다.


2. '자기 친구들 결혼 사례'들을 이야기하며 남자의 심중을 떠본 것.


- 자존심 강한 예술가 타입은, 그 어떤 타입보다 '독창성'을 추구한다. 친구들 결혼생활이 어떻건 그들은 아무 관심 없다. 자신만이 생각하는 결혼생활이 정립되지도 않았는데, 남들 얘기는 참고할 사항이 아니다. 평생을 남들과 다른 길을 걷고, 선택해왔을 것이다. 다른 대다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 듣는 건 반감만 들 뿐이다. 그는 속으로 '어쩌라고'라고만 외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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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남자가 열정을 갖고 말한 미래 계획에 대해 여자가 반대 의견을 내며 찬물을 끼얹은 것.


- 상황상 아마 남자 쪽에서 금전적으로 그다지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남자 쪽에선 사업을 안정시켜놓고, 돈을 더 마련해놓고 결혼을 진행하고 싶었던 거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미래 사업 계획에 대한 구상을 여자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남자는 이 중요한 소통 과정을 생략했다. "사업이 안정화되고, 수입을 어느정도 (목표금액을 구체적으로 공유하면 더 좋다) 벌면 결혼을 준비하자. 대략 N(개월)년 후가 될 듯해. 신혼집은 직장 근처로 잡고 싶어. 기다려줄 수 있을까?" 라고 솔직한 소통을 했어야 했다.


왜 여자가 결혼 얘기를 꺼냈을 때, 사업 얘기로 넘어가야 했는지 그 연결고리를 분명히 말해줘야 했다. 하지만 남자는 화제를 바로 사업 계획으로 바꿨다. 나는 왜 사업 얘기로 넘어갔는지 알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여자 쪽에선 잘 이해하지 못했다.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회피한다고도 느껴져서 서운했을 수 있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의 사업계획에 다른 의견을 냈다. 남자는 불같이 화를 냈다.


이미 앞서 여친 친구들의 결혼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면의 자아가 살짝 건드려진 상태였다. 거기다 미래구상 중 일부인 사업계획을 이야기 했는데, 여자 쪽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낸다. 이러면 폭발이다.


여자 쪽에선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나는 오빠를 믿어. 뭘 하든 성공하고, 잘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 사실 이 상황에서 결혼을 하고 하지 않고는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나도 내 일 하고 오빠도 오빠 일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우리가 꿈꾸는 가정을 만들 날이 오지 않을까?" 라고.


그리고 남친 동업자에 대한 우려감을 꼭 표현해야 했다면, 아까 말했듯 돌려돌려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동업자 OO 오빠는 지난번에 사고 친게 뭐라고 했었지? 혹시 내가 잘못 기억하는건가?" 질문 형식으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한다. 예술가 타입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답을 내리는 그 과정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이렉트로 "난 그 사람 못 미더운데! 뭘 믿고 동업을 한다는거야?"라고 쏘아붙이면 역효과만 난다. 이미 말했듯, 그들은 크리스탈이다.


아무튼 근래 보기 힘든 까다로운 성미의 남자였다. 여자친구 무안 주는 것도 그렇고, 매너는 좋지 않았다. 내 친구나 동생이었다면 다른 남자 찾아보라고 조언했을 것 같다.


하지만 단편적인 대화 내용만 듣고 뭘 알겠는가. 그저 잘 편집된 프레임일 수 있다. 내 나름대로의 시나리오와 캐릭터 분석을 해본 것일 뿐이다. 편협할 수 밖에 없다. 그냥 픽션이라 생각하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남자친구/여자친구가 도대체 왜 화를 내는지 영문을 모르겠는 커플들에게 추천하는 사례다. 언제나 상대의 캐릭터를 분석하고, 그 캐릭터 입장과 관점에서 생각해 볼 것을 권해드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4L-H_cXSNhQ&pp=ygUN64SI7J2YIOydmOuvuA%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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