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엔 부모 없이 자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굳이 가정환경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아서 잘 모를 뿐이다.
어렸을 적 엄마가 도망갔거나, 아빠가 딴집 살림을 차렸거나, 원래 다른 곳에 살림이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크리에이티브한 가정의 형태들이 꽤 있다.
"마빡이", "내 아를 낳아도"의 유행어로 유명한 KBS 개그콘서트 출신 개그맨 김시덕은 9살 때 엄마와 아빠 없이 혼자 자랐다고 한다. 부모가 각각 자기 살 길 찾아 가면서, 집을 나갔고 그렇게 버려졌다고 한다.
그는 한 방송에 출연해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매일 너무 배가 고팠고, 추웠다. 씻지도 못한 채 학교에 갔다", "차라리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부러웠을 정도"라고 했다.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가 아들의 아침과 저녁밥을 정성스럽게 챙겨주며 보살피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어릴적 부모에게 상처 받은 사람들은 평생 그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물론 모든 일이 그렇듯 상처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이에겐 반드시 성공해야 할 동력이다. 또 누군가에겐 튼튼하고 평화로운 가정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할 사명감으로 자리잡는다. 그들이 부모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기 인생에서 보다 책임감 있는 선택들을 해 나가는 걸 많이 봤다.
그렇다. 모든 것은 책임감의 문제다.
사랑에 마침표를 찍던 이음새를 이어나가던 포지션을 명확히 취하는 것 자체가 책임감이다. 아기를 낳았으면 성인이 될때까지 생명을 지켜내고, 양육해내는게 인간의 책임감이다. 자기가 벌린 일은 어떻게 해서든 관짝 들어가기 전까진 끝까지 완수 해내는 게 책임감이다.
얼마 전, 친정엄마가 해준 말이다. 친정엄마의 먼 지인이 요새 갓난아기 키우느라 60대 후반의 나이에 더 폭싹 늙어버렸다고 한다. 집안에 며느리를 들였는데,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출했다는 것이었다. 시어머니 말에 따르면, 며느리가 다른 남자 만난다면서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손주의 육아는 고스란히 백발 노인의 몫이 돼 버렸다.
우리나라 집구석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얼마 전에는 어떤 정신나간 미친 인간이 38주 낙태 유튜브 영상을 올려서 대한민국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문구 하나 하나가 너무 끔찍하고 역겨워서 뉴스도 클릭하지 않았고, 기사가 어쩌다 뜨면 황급히 스크린을 넘겨버렸을 정도로 멀리 한 소식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인걸.
책임감이 한푼어치도 없으니 사기만 늘어놔서 눈먼 돈 벌어들인 다음에, 그 돈 들고 튀려고 하는 사기꾼 개X끼들이 세상 천지인거다. 책임감이 없으니 온갖 포퓰리즘 공약들 늘어놔서 서민들 달콤하게 속인 다음에 막상 당선되고 나면 자기 뽑아준 유권자들 무시나 하고 뒤통수 치는거다.
인생에서 평생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짊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벌레만도 못하게 살다 가는 거다. 개나 고양이도 자기가 낳은 새끼 젖을 물려주며, 어느정도 자랄 때까지 보호해준다. 사실 포유류 본능의 영역인건데 이게 없으니 그냥 벌레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다.
사람 사이 관계를 맺을 때 상대방의 책임감이라는 것에 의외로 둔감한 것을 자주 목격한다. 친구건 연인이건 직장동료건 간에 책임감 없는 인간이 나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순간, 인생에 자기 손으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런 인간들은 인생에는 책임감이라는 중력이 없다. 그래서 그 근처에 가면 내 손에 딱 붙어 있던 일도 갑자기 공중으로 붕 떠버리고,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것도 땅으로 꺼져 산산조각이 되버린다.
책임감 없는 인간의 속성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모델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다. 수학자 존 내시가 고안한 게임 이론이다. 수사관은 공범으로 의심되는 두 사람을 부르고, 자백하라고 말한다. 두 사람에게는 각각 두가지 선택권(자백 or 침묵)이 주어지므로 경우의 수는 4가지다. 이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치기로 결심하면(본인은 자백하고, 상대는 침묵) 침묵을 선택한 사람에게만 징역 10년 형이 부과된다. 반면, 자백한 본인은 석방 당한다.
나는 '죄수의 딜레마'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책임감 없는 인간들이 싸질러놓는 대표적인 행패라고 생각한다. 물로 나 같이 가까이 가면 물어뜯는 사냥개는 그들의 표적이 아니다.
그들이 노리는 건 자기가 피해 보는 상황에서도 '침묵'을 선택하는 순진한 유형의 사람들이다. 그런 상대방과 매칭만 된다면, 본인은 무슨 죄를 짓건 자유가 100% 보장된다. 침묵의 댓가는 뒤집어쓰기다. 책임감 없는 인간과 짝 지어진 사람은 반드시 (상대적인) 피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책임감 없는 인간의 죄까지 덤터기를 쓴 셈이니 말이다. (전세 사기, 코인 사기, 주식 사기, 보이스 피싱 등 온갖 금융사기 피해자들을 떠올려 보면 된다.)
그러니 인연 맺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감이라는 것에 날선 센서를 작동해야 한다. 당신이 구독하는 가상 공간의 유튜버도 정기적인 영상 업로드 안하면 구독취소 하면서, 왜 시간약속 안지키는 상대방을 끊어내질 못하나?
연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애는 결혼으로 이어지고, 결혼은 출산과 육아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저 물이 아래로 흐르듯 남자와 여자가 만나면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이치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연애하는 걸 보면, 이 과정을 너무 파편화해서 생각한다. 얘는 연애만 할 애, 결혼까진 절대 안갈 애. 결혼해도 아기는 갖지 않을 사람 등등. 그게 어떻게 칸막이 나누듯 딱딱 분절될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보면, 절대 인생이 예상한대로 가지 않는다. 그래서 애초에 시작부터 고민을 해보는게 좋다.
좋은 남자친구보다는 좋은 아빠가 될 남자를 만나는 게, 좋은 여자친구보다는 좋은 엄마가 될 여자를 만나는 게, 단기적이자 장기적인 관점에서 현명한 선택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본인 스스로 생각하기에 책임감이 좀 없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들고 그 태도를 딱히 바꾸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산부인과 혹은 비뇨기과를 찾아 영구적인 피임시술을 받기를 추천한다. 더 심한 말을 하고 싶지만 품위를 지키기 위해 애써 참는다.
요약 :
- 인간이 태어나 가장 먼저 맺는 최초의 관계가 바로 부모다.
그런데 이 부모조차 책임감 없는 부류의 사람을 만나면, 인생 시작점부터 큰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 그러니 친구, 연인, 부부 관계는 어떻겠는가.
가진게 하나도 없을수록 주변 관계를 책임감 있는 인물들로 선별해 꾸려라. 어느정도 인원이 꾸려지면 스스로 막 죽어라 살지 않아도 이 사람들이 알아서 만들어내는 힘이 있다. 그러니 연인을 만날 때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할 것은 첫째도 책임감 둘째도 책임감이다. 당장 아이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다 해도, 내 자식의 부모 될 상황들을 떠올리면서 연애를 해라. 사람 일 모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mLzNk_FfHjg&pp=ygUG6rGw6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