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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14. 2024

어느 절망한 영혼에게 보내는 편지

우리나라는 전쟁에 있어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가깝고도 먼 나라, 북한과는 아직 정전 상태입니다.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휴전 중이지요.


위협은 꾸준하게 다가옵니다. 어떤 때는 수위가 높았다가, 어떤 때는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또 갑자기 불쑥 튀어나오는 식입니다.


한국은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은 나라입니다. 우리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피 속에는 외세의 수많은 침략과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총구를 겨누고 피를 튀겼던 슬픈 기억이 선명하게 박혀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심리적인 불안감이 크고, 우울 증세가 강한 것도 역사적 영향이 없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는 우울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건 아닙니다. 다만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게 좋을까 고민해봅니다. 전략을 고민할 때는 앞선 기록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앞서 전쟁을 겪으며 고통받았던 인류는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수많은 아이디어와 기록들을 남겨두었습니다.


세상에 몇 없는 자취를 남긴 작가의 소중한 아이디어를 공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1913년에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겪으며 전쟁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그는 선의의 연대로 재앙에 반대하기를 소리 높여 주장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작가수첩1/민음사> 속 '어느 절망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를 띄워드립니다. 절망스러운 현실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하며, 행동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절망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 알베르 카뮈


당신은 이번 전쟁 때문에 너무나 괴롭다고,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들을 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이 피비린내 나는 비겁함과 범죄적인 순진함이 견딜 수 없다고 편지에 썼습니다.


나는 당신의 심정을 잘 이해합니다. (중략)


나는 당신의 심정을 이해하지만 당신이 그 절망을 삶의 규칙으로 삼으려 할 때, 모든 것이 다 무용하다는 판단 아래 당신의 혐오감 뒤에 숨고자 할 때, 나는 당신에게 동조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절망은 하나의 감정이지 상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절망을 바탕으로 버틸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감정은 사물에 대한 밝은 관점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당신은 "도대체 무얼 한단 말입니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선 질문을 그렇게 제기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아직도 개인을 믿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주변의 사람들과 당신 자신 속에 존재하는 선한 면을 분명 느끼고 있으니까요. 당신은 그 개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회에 대해서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대재난 이전에 이미 이 사회를 거부했었고, 당신이나 나나 이 사회의 끝이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과 전쟁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것을 뚜렷이 느끼고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 사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똑같은 그 사회입니다. 그 사회가 정상적인 종말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좀더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1928년보다 절망해야 할 이유가 더 많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때와 똑같은 이유들이 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이 이 전쟁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일을 제대로 했는가를 자문해보아야 합니다. 만약 제대로 했다면 이 전쟁은 당신에게 피치 못할 숙명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고  이제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하거니와 당신도 우리들 모두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필요한 일을 다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구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번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을 제때에 수정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건의 전말입니다. 보시다시피 이 전말은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조약, 혹은 다른 조항들이 여전히 수정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히틀러의 그 말, 그의 신의를 무용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다른 불의를 부른 이 불의를 우리는 또 거부하고 그들의 대응이 거부되기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해야 할 유효한 일들이 더 있습니다.


당신은 개인으로서 당신의 역할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뭔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저마다의 인간에게는 많게든 적게든 나름대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법입니다. 그것은 그의 장점 덕일 수도 있고 단점 덕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 영역은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모습으로 바로 눈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반항을 선동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피와 자유를 아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열 사람, 스무 사람, 서른 사람에게 전쟁을 중지시킬 수 있는 수단들을, 아직까지 동원해보지 않은 수단들을 한 번 시도해보아야 한다는 것을, 할 수 있는 한 그 점을 말로 하고 글로 써야 한다는 것을, 필요하다면 그 점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는 것을 설득시킬 수 있습니다.


그 열 사람, 서른 사람이 이번에는 자기들도 다른 열 사람에게 말할 것이고 이렇게 반복될 것입니다. 게으름 때문에 그들이 그것을 중단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러면 또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당신이 당신의 영역, 세계 속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난 뒤에 하던 일을 멈추고 마음껏 절망하십시오. 일반적인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절망할 수 있지만 인생의 특수한 형태들, 생활에 대해서는 절망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왜나하면 우리는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런 힘도 행사할 수 없지만 개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역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를 죽게 하는 것은 개인들입니다. 그럴진대 왜 개인들이 세계에 평화를 주는 데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너무 엄청난 목표들을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시작해야 합니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의 열정 못지않게 온 영혼의 힘을 다하여 그 전쟁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절망을 가지고도 전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어떤 절망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너무 세서, 사람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주술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옳다고 믿는 일들을 해내는 것 뿐입니다. 그것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연애 이야기 못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위의 글은 삶의 일반론에도 대입할 수가 있습니다. 인생은 운명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지만, 그 심술궂은 운명에 맞서는 것 또한 개인밖에 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당신이 당신의 영역, 세계 속에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난 뒤에 하던 일을 멈추고 마음껏 절망하십시오.' 라는 문장이 특히 좋아서 계속 생각해보려 합니다.


https://youtu.be/bLa2nTMj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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