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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Oct 17. 2024

도끼를 껴안고 죽고 싶은 사람

알다시피 세상에는 수많은 불상사가 있다.


예를 들면 모임에서 골프를 치러 갔다가 골프공이 눈에 맞아 실명을 하는 경우라던가,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닌데 어휘 해석력이 약한 누군가의 필터링에 의해 잘못 곡해되고 와전되어 이상하게 말이 퍼져 어느날 갑자기 천하의 개XX가 되어 평판이 추락해 버린다던가,

예상치 못한 누군가가 뜬금없이 고백 공격을 받아버린다던가 하는 상황 등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사람에 의해서 일어나는 사고라는 점이다.

위의 나열한 것들에 휘말리면 감정과 시간 소모가 많다.


그래서 왠만하면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다.

한달에 한번 정도 가족이나 업무 외의 사람과 교류하면 정말 많이 한 편이다.

만나도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주로 듣는 편이다. 


오랜 친구나 예전 직장 동료, 기타 등등으로 아는 사이는 가끔 먼저 오는 연락만 간신히 답장할 뿐 

딱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특히 술 마시면서 잡담 나누는 시간은 고문이나 다름이 없다.

한마디로 구제부릉의 대인기피증인 셈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주 가끔이지만 사람을 만나러 나가면 그들은 나에게 많은 영감과 아이디어를 준다.


단조롭게만 이어지던 일상이 전혀 다르게 다가오고, 수많은 관점과 질문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상사가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어느순간부터 그런 것들이 질리기 시작했다.


20대 까지는 그런 불상사를 해결하는 데에 에너지를 썼고, 

쓰면서 나름의 크고 작은 즐거움이 있었더 것도 같은데. 

이젠 그러기에 할일이 너무 많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집안도 정리해야 하고 글을 써야 한다.

거기에 운동도 한다. 시간이 정말 남지 않는다.


사람이 그리울 때는 사람을 찾지 않아야 한다.

이럴 때 필연적으로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대신 책을 읽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책을 읽으면 500년 전 사람들도 어떻게 살았고 어떤 것 때문에 불평했는지 알 수 있다.


지면 위 캐릭터들은 살인마, 강간범, 재벌, 귀족, 거지, 술집 작부, 고아, 아동 유괴범 등이 있다. 책과 현실의 다른 점은 책에서 그들과 만나면, 내 인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의 경험만큼이나 풍부하고 깊은 인생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랑과 사람에 대한 풀리지 않는 질문에 어느정도의 실마리를 얻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소설과 시가 있다.



1. 인간의 굴레에서 (Of Human Bondage) - 서머싯 몸


소설 <인간의 굴레에서> 주인공 필립 케어리는 고아에 발에 장애를 안고 있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캐릭터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내성적인 그는 엄격한 목사인 삼촌 밑에서 자라면서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는데, 예술에 꿈을 품고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려 하지만 재능의 한계를 느끼고 좌절을 맛본다.


그러다 결국 런던으로 돌아와 의학 공부를 시작하다, 매력적이고 변덕스러운 여성 미일드레드를 만난다. 미일드레드와의 관계는 주인공에게 사랑이 아닌 고통과 집착을 안겨준다. 그녀를 사랑해서 믿었다가, 결국 배신당하고, 상처받는 주인공의 심리가 아주 끔찍하게도 자세히 그려져 있다. 그래서 사랑이 어떻게 집착의 모습을 띄는가를 알고 싶을 때 읽기 좋은 책이다. 인간의 결핍이 사랑에 있어서 어떤 왜곡된 인지를 갖게 하는지도 보여준다. 


이 소설의 결론은 주인공이 그토록 찾던 자유가 결국 자기 자신의 선택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진정한 해방과 자유는 외부조건이 아닌 내면의 성숙과 통찰에서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2. 마담 보바리 - 귀스타브 플로베르 

사랑과 결혼, 욕망과 현실의 괴리를 탐구한 작품이다. 주인공 엠마 보바리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평범한 농천 여성이다. 그녀는 사랑과 낭만을 동경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불륜과 사치에 빠져든다. 그녀는 처음에 평범한 시골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하며 부유한 신분상승을 기대하지만, 결혼 생활은 그녀의 기대와 달리 단조롭고 심심하게 흘러간다.


엠마는 결혼 이후 현실에 실망하게 되고, 다른 남자들에게 끌리며 여러 차례 불륜을 저지른다. 그녀는 상류층 삶과 낭만적인 사랑을 경험하려 애쓰지만, 결국 그 모든 시도가 절망으로 끝난다. 엠마는 이 과정에서 빚을 지고 재정적으로 파산에 이르게 되고, 자신의 꿈과 욕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절망하여 독극물을 먹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3. 위험한 가계 - 기형도

이 시는 그냥 읽어주셨으면 좋겠는 마음에 전문을 싣는다.

나에겐 따로 키우고 있는 필사노트가 있는데, 이 시를 읽고 전체를 필사했었다.


위험한 가계(家系) 1969 

기형도 


그 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을 등을 기댄 채 큰누이가 소리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잠바 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 겨울은 넘길 수 있을 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 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 매셨다. 



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요. 나는 사료를 한 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휘 휘파람을 날렸다. 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무슨 꽃을 보고 싶으냐. 꽃들은 금방 죽어요 아버지. 너도 올 봄엔 벌써 열 살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으시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예요. 어머니. 그런데 웬 칼국수에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방죽에서 나는 한참 기다렸다. 가을 밤의 어둠 속에서 큰누이는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왔다. 이번 달은 공장에서 야근 수당까지 받았어. 초록색 추리닝 윗도리를 하나 사고 싶은데. 요새 친구들이 많이 입고 출근해. 나는 오징어가 먹고 싶어. 그건 오래 씹을 수 있고 맛도 좋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누이의 도시락 가방 속에서 스푼이 자꾸만 음악 소리를 냈다. 추리닝이 문제겠니. 내년 봄엔 너도 야간 고등학교라도 가야 한다. 어머니.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뎅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깎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작은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 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예요.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아버지는 삽질을 멈추고 채마밭 속에 발목을 묻은 채 짧은 담배를 태우셨다. 올해는 무얼 심으시겠어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하늘에는 벌써 튀밥 같은 별들이 떴다. 어머니가 그만 씻으시래요. 다음날 무엇을 보여주려고 나팔꽃들은 저렇게 오므라들어 잠을 잘까. 아버지는 흙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셨다. 봐라. 나는 이렇게 쉽게 뽑혀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리시려고. 



선생님. 가정 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방과 후 긴 방죽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둑방에는 패랭이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그날 밤 늦게 작은누이가 돌아왔다. 아버진 좀 어떠시니. 누이의 몸에선 석유냄새가 났다. 글쎄, 자전거도 타지 않구 책가방을 든 채 백 장을 돌리겠다는 말이냐? 창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한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하시고 굳은 혀. 어느 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털실 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그러나 썰매를 타다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얼음장 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반듯한 불들은 꺼지지 않았다.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 속에서 해바라기 씨앗 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서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家系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저 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인간이 왜 문학을 읽어야 하냐 물을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퍼 리는 '문학은 우리가 단순히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다른 이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라고 대답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문학은 과거 어느 순간에도 결코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인간 경험의 연대기이다' 라는 의견이 있었다.


인류의 모든 성장기와 기록이 담겨 있는 것이 문학이다. 그래서 성장하려는 인간은 모두 책을 읽는다. 나는 죽는 날 직전까지 멀쩡한 정신과 지성으로 좋은 책을 읽다 죽고 싶은게 소원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B2tXYeEm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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