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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Jan 03. 2017

애매함 선언

 꼭 그런 까페가 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데 어쩐지 가지 않게 되는 까페.

뭔가 팔긴 파는데 커피 맛도 별로일 것 같고, 인테리어, 장식도 열심히 꾸몄다는 티는 나는데 감동이 없는 곳. 

크기도 애매하고 의자도 불편해서 한번 슥 보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곳. 

그래서 언젠가 철거당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카페.



내가 약간 그렇다. 

나는 정말 애매한 인간이다.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특출나게 잘하지도 않았고

운동을 좋아하긴 하지만 아 너무 무리야 라고 판단되는 순간에 멈춰버리고

성격도 싸가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사표도 아닌.

그냥 키만 엄청 컸다. 옛날부터.

나의 키는 내가 뭔가 스스로 엄청 다른 존재라는 착각을 하게 했는데,

이게 사실 내 인생의 맹점이었을 수도 있다.

모든 게 평범한 한 사람이, 유일하게 평범하지 않은 뭔가를 가졌을 때

비정상적인 그 무언가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게 됐으니까.



난 그저 느리게 아무 생각없이 휘적거리며 걷는 걸 좋아하고

원이 커다랗게 뚫린 잘 익은 도넛형 파인애플이 좋다.

귓가에 울리는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 코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기 위해 수영을 하고, 이내 지친다.


안친한 사람들, 혹은 안친해질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열과 성을 다해 가식을 떨고

그런 내 모습이 지겨워 결국 사람을 만나지 않는 걸로 선택한다.

이런 나는 나이가 들수록 뭔가 경제적으로 벌어야 한다는 강박감.

좋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끈질긴 압박,

나를 갈겨대는 유능한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공상, 허상

그러면서 점점 드러나는 나의 무능력함에 어쩔줄을 모르겠다.


자존심만 또 애매하게 세서 애써 잘난척하며 살았는데 사싱은 정말 잘 알고 있다. 

내가 조또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올해는 그냥 애매하게 살아보면 어떨까한다.


아 물론 이전에도 그렇게 살아왔긴 하지만


이전의 나는 나의 애매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 척을 하고 거짓말을 해왔다는 게 다르다.


애매한걸 어쩌겠어.

나도 애매모호한 타인을 극도로 혐오해왔지만 알고보면 그 실체는 동족혐오였을거다.

올해는 불투명하고 이도저도 아닌 나를 그냥 있는대로 인정해보기로 한다.


최고의 이상적인 그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고

허세 떨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그래야 당당함과 씩씩하게 나와 싸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근데 그러다가 철거당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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