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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Feb 20. 2017

이상적 이상함

희망은 불행의 관성


“듣기만 하고 싶어서 라디오를 듣는 게 이니아.

듣기만 하고 싶음 음악을 듣겠지. 

왜 라디오를 듣겠어.

말하고 싶어서 라디오를 듣는거야. 

대화하고 싶어서. 대화 소릴 나누고 싶어서.

그 사람들이 말을 걸게 하는 게 우리 몫이야”


직장에는 세 종류의 놈이 있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영화 속 송강호처럼

이상한 놈이 세상을 구한다.


67년생 우리 피디님, 이상하다.

책들과 각종 서류들이 중구난방으로 섞여있는 

그의 책상 사이 사이에는 담배들이 박혀있다.


뭔가 열정적으로 설명하다 끝내 종이를 뽑아 적는데

그때마다 볼펜이 없어 받아쓸 준비 완료 태세의 나의 연필들을 뺏어간다.

그렇게 해서 빼앗긴 연필만 세자루.


나중엔 적을 펜이 없어서 그가 자릴 비운 사이 

피디님 책상에 가보니 담배와 칫솔밖에 없었다.


“나팔이 좋은거야. 나팔이”

시그널 음악을 뭘 쓸건지 한차레 묻고나서

우리의 막귀에선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단 파악을 빠르게 끝낸 

그는 재즈음악을 튼다.


“너희 나이때는 잘 못들을 수 밖에 없어.

살아 봐야 해”


꼰대스러운 말을 하지만

그의 말이라 역시 정확하단 생각이 든다.


그는 꼰대가 아니다.


아부를 경계하고

그가 했던 말을 반복하는 우리의 노력을 비난하기 때문에.


별 말 아닌데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감탄사가 나오고 고개가 자동으로 끄덕여진다.


매력도랄까

카리스마랄까

말 자체보다는

말 하는 행위자의 성분을

믿을 수 있어서

어떤 헛소리를 해도 

그렇습니다. 

더 말해주세요.듣고 싶어요.

하게 된다.


나는 신입 때는 착한놈으로 숨죽이고 있다가

좀 머리가 크고 프로그램 빵빵 터뜨려서

순도 100의 이상한놈으로 거듭나는게 빅피쳐다.


그때가 되면 이상한 놈인거 숨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나의 이상적 이상함은 틀어박히고 싶을 때 

아무 때고 문을 닫고 갇힐 수 있는 자유다.


시력을 다해 밝고 싹싹한 척 하지만

사실은 우울해지는 습관과 관성으로 뒤덮인 인간이라는 것.


안정될수록 불안정한 상태로 회귀하려는 본능.

생리가 시작될 때처럼 신경을 기어오르는 까칠함.

굳이 이유를 찾자면 분명히 없다.

이런 내면이 글을 쓰게 할 뿐,

비슷한 괴로움을 호소하는 작가들이 쓴 책을 읽게 할 뿐.


이건 아무도 때리지 않는 싸움이니까

평화로운 전쟁이니까

갈라지는 나를 붙드는 방법이니까


그래서 새로 가게 된 곳이 무척 무척 무척 마음에 든다.

편집실에서 헤드셋을 끼고 구석에서 어둠을 뿜어내도 

아무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강력한 이상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 곳이다.

또다시 '조금 멋진 걸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또 생겨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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