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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Mar 20. 2017

아부말 대잔치

아'무'말 이라도 괜찮아

바나나 우유, 편의점, 목욕탕, 항아리 단지, 사람냄새


“오프닝, 이거 어때?

이거 좋은거야. 내가 오프닝만 20년을 봐온적도 있어.

단어로 기억하거든. 듣는 사람들은. 부정이건, 긍정이건, 논리건, 문장이건 간에”


생방에서 가장 큰 사고는 무음 Blank 자체다.


어떤 상황에서든 말은 끊겨선 안된다.

삶은 아무말 한바탕.


아무말이나 한바탕 끝없이 늘어놓으면 그뿐.

헛소리를 얼마나 정성들여 가공하는가에 대한 스킬이 필요하다.

그런점에서 난 늘 배우고 있다.


아부 멘트 5가지 

: “알곡과 같은 말씀, 뼈에 새기겠습니다.”

“그럼요, 암요 그렇구말구요”

“역시...(박수를 짝 친다)”

“(눈을 질끈 감으며) 대단하십니다”

“아유...맞습니다”


30년 경력의 부장님 시범을 그대로 듣고 따라했어도 

여전히 아부에 무척 서툰 인간이라는 것 또한 깨닫고 있다.

아부도 대화 속 침묵을 메우기 위한 아무말 잔치 중 하나라는 것 

잠에 들기 전 생각들을 대신 적어주는 노트가 있었다면

좋은 가사들을 몇 줄 적었을지도 모른다.


이젠 정말 커피를 먹지 않을거야.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용기 안에서 달각거리는 얼음과 아메리카노가

아무리 나를 유혹한대도.


밤을 꾸벅꾸벅 새면서 생각만 하게 되잖아.

자야겠다는 생각에 몸이 묶여 마음껏 움직이지도 못하고 

뭘 신나게 먹을수도 없어.


잠이 깨버릴까봐 노랠 듣지도 못하고 감긴 눈만 보고있어.


문득, 화려한 사람이 된다면 어떨까.

손톱과 발톱에 매주 네일아트를 바르고,

복실하게 털이 풍성한 강아지를 끈으로 묶어서 동네를 천천히 산책하는거지.

값비싼 브랜드의 선글라스를 끼고

하이힐을 신고 외제차를 탈거야.

라고 맥없는 생각만 해본다.


이런 류의 상념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잔다.


성우 지망생들의 데모테이프를 달칵거리던 옆옆자리의 

다음달 퇴직하시는 위원님은 이러셨다.


“oo대학교 신문방송학과..

oo방송 기자..

아니 근데 왜 성우가 되려그래?

왜 성우가 되려그러냐구..

사람들이 만족을 못해 만족을...

옛날에 태어나서 다행이지

요즘에 태어났으면 진짜 힘들었을거야. 에휴”


이렇게 자신의 노년에 대한 허세는 또 처음이었다.


한번도 윗 세대들이 부럽다고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한번 태어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살아서, 늙고, 죽어야하는게 운명이라면

시기적으로 뭔가 걱정거리 없던 때도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말뿐이라는 것 또한 안다. 

그 누구의 삶에도 어둠은 있는 법이다.


그냥, 나이 든 누군가도 우리 세대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구나 하는

말이었기에. 


선배님께서

“애들 월급 좀 올려줘야지. 말 안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좋아서 다니는 줄 알고”

하는 분노에 찬 말씀도 박수를 치며 응원하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방송 사고다. 

삶이란 아무말 대잔치니까 

무슨 말이건 해야 하는데,

최대한 진심에 가깝게, 마음을 파헤치듯 고민해서 말해야 한다.


(아니, 정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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