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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Apr 11. 2017

부끄럼 일지

자주 창피하다

부끄러움 일지를 써보려 한다.

학창시절부터 난 잘도 부끄러운 일들을 벌여왔다.


코딱지를 묻힌 채 좋아하는 애에게 말을 계속 걸었다던가,

남몰래 흠모하던 선배 언니의 신발을 따라하고선 우연히 같은걸 산 척 연기하다

딱 걸린 순간이라던가.  


이렇듯 하루에 하나 이상 쪽팔린 행동을 해오던 내겐 이상한 인생관이 자리잡는다.

사는 건 어쩌면 부끄러운 일-  

20대에 애를 낳고 결혼한 언니에게 


“하루에 꼭 하나씩 쪽팔린 짓 하는거지?”라고 묻자

“그렇게나 많이?” 하고 정색하며 묻길래

아 뭔가 잘못됐구나 하고 느꼈다.


그게 이 일지를 시작하게 된 계기.  

이렇게 창피하게 사는건


사소한 것에도 혼자 의식하고 부끄러워하는 정도가 지나치기 때문인건지 

남들이 봐도 왜저래 싶을만한 부끄러운 행동들을 하는 인간인건지 

25년을 살며 객관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4월11일의 부끄럼 두 개.  

지난밤 친언니가 독가스에 켁켁거려 그녀에게 인공호흡을 시도하다

구남친과 후룸라이드를 타러가는 등의 뒤숭숭한 꿈자리는 

아침에 ‘아 오늘 조심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하루동안 벌일 강도 높은 쪽팔림의 예고였다.  


같이 일하는 조연출이 저녁을 안먹고 다이어트 한다며 운동한다길래

자꾸만 두꺼워지는 턱살과 뱃살이 무겁게 느껴져 회사 신관 옥상에 올라갔다.  

신관 옥상은 돌벽으로 다 가려져서 아무것도 안보일 줄 알고 (진짜 세 번 확인했다)


스쿼트 자세 (이 운동 자세는 초민망한데 힙업에는 짱이다)로

헛둘 헛둘 구호까지 붙여가며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다.  


순간 어딘가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엉덩이를 뒤로 쭉 내밀고 고개를 돌렸는데

맙소사 다른 팀 PD님이 지켜보고 계셨다.


알고보니 반대편 건물인 구관 옥상에선 신관 옥상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거기 어떻게 올라갔어요?”

나는 옥상에서 가열차게 돌아가는 환풍기 소리 때문에 

잘 안들리는 척 했지만, 끝까지 외면할 순 없었다.


한쪽으로 올라간 입꼬리와 (뭐하냐?ㅋ) 라는 내적물음을.  

난 끝까지 뻔뻔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운동하고 있어요 ^ ^”라고 대답했다.


동네공원 아저씨들이 하는 허리돌리기, 발차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방금까지 했던 엉덩이를 미친 듯 뻗었던 스쿼트 자세를 무마하려 한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스트레칭하는 척을 멈출 수 있었다.


2.

페이스북에 친구의 친구로 페친이 된 한 지인이

확인완료! 

라며 자신의 페이스북 방문자들을 염탐한 링크를 게시한 걸 봤다.  

아침에 그걸 보자마자 별생각없이 접속해서 끈질기게 캐냈다.


고등학교 선생님들께서 내 페북을 참 많이도 들어오시더라.

(고등학교 때만 해도 내가 유망주였으니까. 슬프게도)  


그리고 분명 똑같이 

확인완료!

라고 내 피드에 허락도 없이 게시된 걸 삭제하고 다시 잤는데 

그게 무려 12시간동안 게시돼 있었다.


아 이건 아닌데  

일부러 그런거 아니다. 진짜  

나라고 인생을 잘 살아보고 싶지 않겠어?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걸까.   


지금도 사무실에 들어와 이 일지를 쓰고 있는데

PD님 들어오셔서  

“크..ㅋ...oo씨 운동 열심히 하던데?ㅋ”  

하잖아. 하.   


+ 내일은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회사에 올 것이다. 

그게 요즘 내인생의 유일한 낙인셈.

밤에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양재천으로 퇴근하면서 

미드나잇인파리OST를 듣는다.

그 어떤 훌륭한 인생과도 바꾸지 못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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