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아 Apr 18. 2017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픈것처럼

인생은 정말 부질없고 덧없는걸까.

ㅁㅈ pd님이 그랬다.


살아보니까 별게 없어. 진짜 그래.

그녀가 이곳에 근무한지는 8년째라고 한다.    


신입때는 새벽 생방 조연출을 맡으며 경기도 동두천에서 이곳 우면동까지.

두시간 이상 걸려가며 출근했다고 한다.    


그녀의 치열한 출퇴근은

업무 능력에 내공을 더한다.


꼼꼼하고 믿을 수 있는 기획력과

논리적인 예측으로 모든 사람들을 설득시킨다.    


나는 첫날부터 그녀가 이 곳의 실세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런 사람이 인생은 별게 없다고 말하는 건

왠지 신뢰가 가는 말이다.    


인생은 정말 별게 없을지도 몰라.    

“5월 워크샵 갈거예요?”

“...”

“간다고 말해놓을게요”

조연출이 말한다.    


“잠깐만요”

“어쩔 수 없잖아요”    


“그거 언제까지 말해야해요?

그니까... 사람 일은 모르는거잖아요.

내가 그 전에 결혼을 할 수도 있고”    


“(O.L) 3주 후에 결혼을 한다구요?

남자친구도 없잖아요”    


...그래도 결혼은 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그러니까 금요일에 있는 회사 워크숍에 가기 싫어

결혼에 한발짝 더 가까워지는 사람도 지구상 어딘가에 한명쯤은 있기 마련아닌가?    


나는 늘 뭔가 일이 일어나길 바란다.

노트북과 공책을 챙겨 빠져나온 회사 멀찍이 위치한 커피숍에서 다리를 떨면서.


밤 아홉시 생방송의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은 채

퇴근 후 잠들다 깨버린 새벽 4시의 어둠 속에서,

그 때는 어쩐지 이 세계와 사람들을

맹신했던 믿음 가득한 2-3년 전의 사진첩 속

나를 보면서까지도.    


늘 그래도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를,

고요하지만 꾸준히 만들어지는 그 일들은

조금씩 내게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믿고있다.    


존재하거나- 혹은 실체조차 없을

그 희망의 부스럼들을

만드려고 애쓰는 순간이면 잊을수가 있다.

   

옛연인이 이에 커피콩이 낀 걸 보고 미소지었던

그 웃음이나

앞으로 쏟아져내리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을 때 전해져오던 따뜻함같은 것,

또는 – 스물 다섯 살의 가난한 나에게

갑질하는 세상의 모든 권력들도-    


서류를 제출하라고 닦달해서

메일로 한시간 전에 약속을 잡고,

왜 시간내에 오질 않느냐고 소리를 지르는

어떤 늙은교수의 고함따위는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6분이나 지각했기 때문에

3시간동안 같은 자리에서 기다린 뒤

아무래도 너에게 에프를 줘야겠다고 말하는

교수의 악다구니 따위는

어떻게는 참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도 모른다.    


스무살부터 유명하지 않은 모델로 활동하면서

무엇보다 강력해진 건 어떤 방식의 후려침에도

무덤덤하게 느껴질 정도의 맺집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만두고 싶은 마음과 싸우지 않는 것.    

알고보면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하고있는 일을

그만 두고 싶어한다.


군대에 있거나 감옥에 있거나

강제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이상,

(위에 열거한 상황 속에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지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된다)


업계의 일인자라고 존경받는 사람들도

언제나 자신이 가는 길에 회의를 느끼고,

갈팡질팡한다.

그들의 하루하루에도 부담감과 걱정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그래도 인생은 시시포스의 똥덩어리같은거니까.

이 덩어리를 넘긴다고 해서

-혹은 벗어던진다고 해서-자유가 찾아오진 않는다.    

인생의 고비마다 가장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내야하는데

이건 정말 격렬하게 싸우다보면 나오지 않나 싶다.    


‘세상에 쉬운일이 어딨어’

‘사람들 다 힘든거야’

‘원래 인생이 그런거야’    


따위의 말들에 속아넘어가지 않기.


인생에는 쉬운일들이 있다.     

나는 갖고 태어난것만으로도

미스코리아대회나 슈퍼모델선발대회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수상했지만

막상 모델 일이나 방송일은 죽도록 어려웠다.    


낯가리고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을 찾아가 문을 두드리고

나 자신을 어필하는 일.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행동하기

같은 건

어쨌건 나라는 인간하고는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모두 그렇다느니,

원래 그런거라느니 하면서

천편일률적인 인내와 복종을

강요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세상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체중인거다.    


자꾸 변화를 모색하고

자기 살길을 찾아나서지 않는 한,

다치는 사람들은 계속 많아질걸.     


다리를 떨며 한숨을 크게 쉬면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는 공상의 바퀴에

바람을 넣어보기를-    


세계의 탑에서 가장 아랫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에게 건네보는 작은 치료법이다.

물론 쌀국수도 포함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부끄럼 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