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화라는 주제로 영업을 가장 잘 하고 있는 사람은 이동진이다.
평론가와 작가, 방송인 그 경계를 넘나들며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있는 사람.
내가 가고싶은 길을 좀 비슷하게 먼저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북카페에 이동진의 책이 왔다.
그가 진행하는 라디오처럼 훌훌 쉽게 읽히는 책이었다.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며 느낀건데,
생각보다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책좀 읽는다’는 사람의 기준은
자발적으로 서점에 한달에 두세번 이상 방문하고,
한달에 적어도 책을 다섯권 이상 읽는 습관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독서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한두권 책을 읽는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교류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며,
접근이 상대적으로 편한 영상컨텐츠들, 음악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독서에 대한 필요성이 낮고 접근하기 상대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삶의 우선순위에서 점점 나중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서 살펴보자면
내가 책에 집착하게 된 것은 ‘무식에 대한 콤플렉스’였던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언니라는 존재에게 커다란 열등감를 갖고 살았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영재반에 들어갔고 중학교 내내 전교1등이었으며
고등학교 때는 신문에 날정도로
뭐 하여튼 어린 내가 보기에도 공부 머리가 엄청 뛰어났던 것 같다.
반면 나는 옛날부터 공부가 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지부터 따져묻는 삐딱한 애였고,
초등학교 때 언니를 담임하셨던 선생님은
개학 첫날, “니가 초은이 동생이구나. 정말 기대가 크다.”며
반 아이들 앞에서 나를 껴안으며 특별대우 해주셨지만
난 그냥 머릿속에 4차원 공상만 가득한 꼴통이었을 뿐이었다.
엄마 아빠도 뭐, 워낙 언니에게 실린 막중한 기대덕분에
나한테는 무관심과 방임이라는 꼴통에게는 특효약인 교육방침을 시행했다.
문제는 언니와의 다툼 때 발생했다.
성향이 전혀 다른 언니와 나는
종종 아주 심한 욕설과 피터지는 육탄전까지 벌일만큼 격렬하게 싸워댔다.
그럴 때마다 언니는 내게 “무식함”이라는 단어로 나를 울렸고
나도 언니에게 외모적인 것으로 그녀 나름의 콤플렉스를 가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끄러운 가정사를 털어놓은 것은
어린 시절의 갈증, 열등감, 낮은 성적에 대한 불안감 등등이
책에 대한 집착을 키웠다는 점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이동진도 ‘책을 왜 읽어야 합니까’ 라고 묻는 이에게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있어보이니까”
엉뚱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 이유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신의 깊이와 부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래서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즐기면서 그것으로 자신의 빈 부분을 메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지적 허영심일 거예요.
-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 이동진 독서법
정신적, 지적 빈 공간을 메우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모두가 물질적 허영에 허덕이는 시대에는 특히 그렇다.
더 많은 것, 새로운 것, 값비싼 것을 물질적으로 소유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과
500년전 이야기도 새로워질 수 있는 독서는 삶의 품격을 올리는 일에서 비교불가다.
지적허영심을 채우는 일은 곧 현대인의 공허함과 우울감을 치유하는 치료법이다.
난 독서가 인간의 많은 정신적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을 읽게 되면 그나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하는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일단 안도감이 들 것이다.
내가 선택한 일이 시간낭비가 아니었다는 확신은
그 무엇보다도 만족감을 안겨주는 일이며 자신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다.
그렇기 떄문에 독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약이다.
책을 읽기에 눈이 시렵거나 시간이 도무지 나지 않는다면
밤 아홉시,
EBS 라디오 북카페
104.5 MHZ
문자 #1045, 반디,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로 사연 보내주시면 됩니다.
선물도 드리니까요. 사연 보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