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아티스트에서 '링 위의 판사'로
'Happiness Project'는
김지아가 잡스엔에 기자로 근무하던 시간동안
인터뷰한 기사들을 실었습니다.
기획단계부터 직접 아이템을 선정하고 섭외한 결과물입니다.
저는 이들을 '개척자'라고 정의합니다.
불자신만의 길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 이들을 소개합니다.
마흔아홉 종합격투기 심판 이미옥씨의 도전
승패 판정하는 '링 위 판사'
수입은 연 300만원 미만
원래 직업은 웨딩샵에서 신부를 꾸며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다. 그녀의 손이 닿으면 신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했다. 요즘 그녀의 직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하고 거친 사람들이 싸우는 곳이다.
이미옥(49 대한종합무술격투기협회) 심판이 치열한 전투장 한가운데에서 '링 위 판사'로 일한지는 7년째다. 십자수가 취미던 그녀는 격투기가 난폭하다 생각했다. 34살 때 격투기챔피언 출신 오재광(48)씨를 소개로 만나 결혼한 뒤 함께 체육관을 운영하면서 종합격투기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세심한 신경을 쏟아야하는 미용쪽과는 전혀 다른 일이죠. 대회장만 가면 스트레스가 풀렸습니다. 명쾌하게 승패가 결정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죠."
원래 취미로 운동을 해오던 이미옥씨는 2003년 종합격투기 선수 1단(바둑, 태권도, 유도 등에서 실력에 따라 등급을 매긴 증서)을 땄다. 선수로 대회에 나갈 자격을 얻은 것이다. 2007년에는 3단까지 오른다. 그러나 대회 출전은 못했다. 선수 자격을 얻었을 때 그녀의 나이는 서른다섯. 다른 선수들은 은퇴할 나이였다. 나이가 많아 경기 출전은 힘들었다. 그러나 종합격투기에 대한 열정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 링 위에 선 또다른 이가 들어왔다. 심판이었다.
"어느날 남편과 대회를 보러가는데 심판이 남자뿐이었어요. '여성심판은 왜 없나'고 물어봤죠. 원래 없는거래요. 심판은 반칙을 막아내고 두 선수를 떼어놓는 등 신체접촉이 많아요. 여성선수들을 위해서라도 여성주심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이씨는 주위 만류에도 심판에 도전한다. 심판이 되는 방법은 협회마다 다르다. 대한종합무술격투기 협회의 경우 심판 자격증을 받으려면 우선 격투기 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한다. 지도자 자격증은 격투기 선수 단증이 있는 숙련자들만 받는다. 격투기 지도자 중 심판을 희망하는 이는 1년에 두번 교육을 받은 후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치른다. 시험에서 각각 90점 이상 받으면 격투기 심판 자격증이 나온다.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남편이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한번에 시험에 통과했어요. 그 다음부터 대회장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죠."
자격증을 받았다해서 바로 심판기회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종합격투기 심판에도 '인턴'이 있다. 말이 인턴이지 가르쳐주는 사람없이 부심 옆에서 어깨너머로 배운다. 왜 실격타가 나왔는지, 데미지가 적은데 왜 패했는지 부심선배의 채점표를 받아 이유를 분석한다.
"인턴에서 부심까지 2년 걸렸어요. 매일 다섯시간 이상 종합격투기 대회 영상을 보면서 연습했죠. 대회가 있는 날이면 먼 지방도 쫓아가 관전했습니다. 누가 돈주는 것도 아니고 심판 자리가 난 것도 아닌데 간절한 마음에서였어요."
종합격투기 심판은 부심과 주심으로 구분한다. 부심은 대회장 밖에서 책상을 놓고 점수를 매긴다. 2년 이상 경력을 인정받으면 주심으로 링 위에 오른다. 주심은 링 위에서 선수들과 함께 대회를 치른다. 부심처럼 점수를 매기지는 않지만 선수가 반칙을 저지를 때 재빨리 몸을 던져 막아야한다. 잘못하면 치아나 머리, 관절 등에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 종합격투기 심판에 여성이 적은 이유다.
"대회 중 잠시 화장실 간 부심선배를 대신해 처음 자리에 앉아봤죠. 점수를 매기는데 눈앞이 캄캄했어요. 관전하던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글러브 색깔(홍/청)로 선수를 구별해요. 너무 빨라 눈앞이 아찔했던 기억이 납니다."
점수는 라운드당 10점 만점으로 매긴다. 대회 중 유효타나 테이크다운, 어그레시브 등이 발생했을때 1점씩 감점한다. 대전이 끝나면 부심 셋의 점수표를 모아 만장일치 (3명의 부심이 모두 한 선수의 우세로 본 경우), 스플릿(2명과 1명의 부심이 다른 선수를 승으로 본 경우) 등으로 판정한다.
1년에 열리는 대회 수는 협회마다 다르다. 대한종합무술격투기 협회에는 1년에 14일밖에경기를 열지 않는다. 대회 기간 중 일정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세네시간씩 앉아 점수를 매긴다. 길어질 땐 다섯시간도 넘어간다. 부심은 일당 8만원을 받는다. 주심은 15~20만원 정도다. 주심을 맡아도 연수익은 300만원 미만이다. 전업 심판은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씨도 남편과 함께 체육관을 운영한다.
해외는 어떨까. 2017년 8월, 메이웨더(40 미국)와 맥그리거(29 아일랜드)가 펼친 '세기의 대결'을 심판한 로버트 버드(74 Robert Byrd) 주심은 이날 2만5000달러(약 2800만원)를 받았다. 부심의 일당은 2만달러(약 2231만원)였다. 종합무술격투기 협회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소수를 제외하고는 종합격투기 심판을 본업으로 삼는 이는 많지 않다. 대회가 단발성으로 열리고 역사가 길지 않아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라 말했다.
이미옥 심판은 지금 국제심판자격증 획득을 목표로 수련중이다. 1년에 한번 있는 시험에 통과해 종합격투기 국제심판자격증을 따면 비행기표값과 체류비가 나온다. 더 많은 대회에 참가할 기회도 생긴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국제심판으로 종합격투기를 알리겠다는 그다.
"메이크업을 해왔던 제가 마흔에 종합격투기 대회 링 위에 올라 심판으로 활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많은 돈을 버는건 아니지만 자부심만은 챔피언급이죠. 앞으로도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갈 예정입니다. 내년에는 국제심판 자격증에 도전해 해외에서도 활동하고 싶습니다."
글 김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