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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아 Mar 17. 2018

"제발 와주세요" 디저트로 세계여행하는 회계사

말레이시아 출신의 'RAYMOND' 이야기

'Happiness Project'는

김지아가 잡스엔에 기자로 근무하던 시간동안

인터뷰한 기사들을 실었습니다.

기획단계부터 직접 아이템을 선정하고 섭외한 결과물입니다.

저는 이들을 '개척자'라고 정의합니다.

불자신만의 길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 이들을 소개합니다.





"베이킹은 휴식이죠"

2017년 11월 웨딩케이크샵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레이먼드 탄(Raymond Tan 30). 그는 종로의 방산시장에 있었다. 허름한 키플링 가방을 멘 모습이 영락없는 천진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달콤한 디저트를 만들면서 전 세계를 여행한다. 팔로워가 20만명에 달하는 그의 인스타그램(@rymontn)을 본 각국의 베이커리에서는 초청장을 보낸다. 런던, 파리, 프라하, 덴마크, 싱가폴...항공 티켓과 숙소, 수업료 등을 모두 줄테니 "제발 와달라" 부탁한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디저트가 펼쳐진다 /레이먼드 제공

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는 꽃, 루돌프, 보석 등을 새긴 한입 크기의 예쁜 디저트로 가득하다. 3년 전 직장을 다니면서 회계학 석사과정을 밟던 그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제과제빵을 배웠다. 요리책과 인터넷 레시피를 연구해 독학으로 기술을 배운 것. 정식 교육기관에서 배운 것은 아니다. 관련 자격증도 없다. 그런 그에게 디저트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전 세계 내로라하는 제과제빵사들이 모여든다.

 

◇세계여행 꿈꾸던 대식가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났다. 그가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것은 세가지. '여행', '음식', '만들기'. 첫 전공은 건축학이었다. 정확한 계획을 세워야하는 건축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그와 맞지 않았다. 유학을 결심했다.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멜버른 왕립 기술공과대학교(RMIT) 경영학과에 입학한다.


"어릴때부터 텔레비전에 나오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보는게 좋았어요.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었죠. 수많은 음식을 먹어보는게 꿈이었습니다. 첫 전공인 건축학을 그만두고 유학을 선택합니다. 멜버른 왕립 기술공과 대학교는 말레이시아 학생이 입학할 수 있는 전형이 있었어요.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인 호주에 가면 많은 문화를 접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건축학을 자퇴하고 아버지 의견을 따라 경영학을 공부했어요."


첫 직장은 용돈을 벌기 위해 하르바이트생으로 들어간 버버리였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2010년 졸업 후 버버리 멜버른 경영 팀 직원으로 입사했다. 5년동안 일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해 회계사 석사과정을 밟았다. 부모님 기대에 맞는 진로였지만 답답함을 느꼈다. 셰프들이 출연하는 요리 쇼 프로그램을 시청하는게 유일한 낙이었다.


"시스템 속에 있는 일이잖아요. 성과를 내고 안정적인 월급을 받았습니다. 뭔가 창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회사를 다니면서 회계사 과정을 공부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회계사가 되면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정해진 업무량만 마치면 오전 열한시건, 한시건 퇴근해도 괜찮았어요. 일을 마치고 남는 하루 일과는 베이킹에 몰두했죠.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어요."


취미로 시작해 독학으로 배운 베이킹

◇틀을 벗어날 수 있었던 독학 베이킹 

그는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해주는 걸 좋아했다. 시간여유가 생기자 베이킹에 도전했다. 퇴근 후 요리책을 뒤져 하루종일 시트를 굽고 생크림을 발랐다. 친구들에게 디저트로 만든 케이크를 보여주자 '어디서 산거냐'는 반응이었다. 건축을 배우고 패션회사에서 일하면서 남다른 미적감각을 키워온 그였다. 팝콘, 진주, 말린꽃잎 등으로 장신한 케이크 모양은 독특하고 새로웠다.


"대학원까지 나온 범생이지만 베이킹만큼은 혼자 터득하고 싶었어요. 한달에 요리책을 100권 이상 읽은 적도 있었죠. 책마다 미세하게 계량법, 재료, 순서가 달랐어요. '이건 왜 이럴까'라는 물음을 갖고 시도해보면서 저만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게 좋았습니다. 공식을 따르는 회계사와는 달리 베이킹은 세상에 없는 걸 창조하는 기분이었죠."

                                                   

◇남은 케잌 반죽 아까워 만든 ‘팝시클’

취미로 베이킹을 시작한지 1년 후 수입이 생겼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케이크 사진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결혼식, 생일 등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주문이 밀려들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한주에 열여섯개 넘는 케이크를 굽는 날도 있었다. 전문가용 오븐도 없이 작은 아파트 원룸에서 한 작업이었다. 남는 반죽이 골치였다.


"케이크를 만들면서 남는 반죽이 아까웠어요. 저는 회계사라 낭비를 싫어하죠. 자투리 밀가루로 마카롱, 타르트 등 케이크 외 디저트를 만들었죠. 그렇게 해서 막대 아이스크림 모양의 빵, 팝시클(popsicle)도 탄생했어요. 원래 디저트 종류 중 하나입니다. 다만 모양과 색깔, 디자인만큼은 상상력을 동원해 만듭니다. 팝시클을 만든 뒤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급격하게 늘었어요. 해외 각국에서 '방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죠."


우리말로 하면 '하드'모양의 빵 디저트가 탄생한 것. 모양은 초콜릿으로 낸다. 색깔은 설탕량, 색소를 얼마나 조절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맛은 어떻냐고 묻자 "속재료는 그때그때기분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 땅콩버터를 섞기도 하고, 과일을 넣을 때도 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초반에 20달러(약 2만1600원)에 받던 커다란 케이크 가격이 500달러(약 54만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크게 늘어났다. 그의 작업을 눈여겨보던 런던, 코펜하겐, 스위스 등 각국에서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문의가 쏟아졌다.


"2016년부터 초대가 있었어요. 세계 각국의 다양한 베이킹 행사를 여는 단체가 불렀습니다. 사진을 보고 '항공 티켓과 숙박료, 수업료를 줄테니 베이킹 수업을 해달라'는 거였어요. 원하던 일이었죠. 직장을 그만뒀어요. 전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음식을 맛보는 꿈이 이뤄진거죠"


출판, 동업 등 많은 제안이 있었지만 가장 먼저 여행을 선택했다. 자유가 좋았다. 각 나라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하루 1000달러(약 108만500원)의 수업료를 받았다. 초대장을 보내는 거의 모든 도시에 방문했다. 런던, 파리, 코펜하겐, 헝가리 등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다양한 경험은 새로운 창작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왠만하면 아무것도 들고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나라마다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다.

"나라마다 밀가루, 설탕 등 원재료의 맛이 달라요. 디저트의 향을 내는 바닐라에센스도 그랬죠. 파리에서 수업을 하는데 빵맛이 씁쓸했어요. 프랑스 바닐라 에센스에는 제가 써오던 것과는 달리 알코올 성분이 들어있었던거죠. 이런 차이를 발견해나갈때 짜릿해요. 한국에 방문해서 맛본 떡도 인상적이었어요. 호주로 돌아가면 쫄깃한 떡의 식감을 이용해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 어떤 것을 할것인가라는 질문에 "뚜렷한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가게를 내면 좋겠지만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수업에서 그가 강조하는 것은 딱 한가지다. '틀(Mold)'이 되지 말라는 것. 제빵사가 되기 위해, 셰프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전 회계사였어요. 하지만 이렇게 베이킹을 가르치죠. 틀을 벗어나야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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