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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lancerKorea Nov 20. 2019

‘아이언맨’과 ‘간달프’도 SNS에 퍼갔다고?

[라라 프리랜서] 정중원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인터뷰


 ‘진짜보다 더 진짜’를 그리는 프리랜스 예술인

정중원 하이퍼리얼리즘 화가 인터뷰





정중원, Self-portrait


오늘도 조명이 좋은 카페에서, 유럽풍 커피잔과 표지가 예쁜 책 사진 한 장-
  해시태그를 빼놓을 수 없지! # 여유로운 일상. 카페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업로드 후엔? 수시로 ‘좋아요’ 체크 :)

SNS 속 나의 일상은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허상일까? 이 화두에 대해 그림으로 답하는 작가가 있다.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예술감독을 병행하며 본인을 ‘풀타임 화가, 파트타임 연극인’이라 일컫는 프리랜스 예술인, 정중원 하이퍼리얼리즘 작가를 프리랜서코리아가 만나고 왔다.




‘극사실주의(Hyper-realism)’ 개념이 생소하다.


반 고흐의 '자화상'(좌)과 정중원 작가의 '반 고흐 자화상'. 어떤 것이 원본이고 복제인지 헷갈린다.


간단히 말해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의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무엇인가를 재현하여 복제물, 소위 ‘짝퉁’을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이퍼리얼리즘은 여기서 더 나아가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그림으로, 그림을 보는 사람에게 헷갈리는 경험을 선사해 준다.

이러한 경험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미디어 시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상세계 속에서는 어디서부터가 원본이며 실제고, 어디까지가 복제이며 허상인지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SNS에 복제된 내 삶이 나의 페르소나이자 일상이 된다. 예컨대 예전에는 분위기가 좋은 카페에서 사진을 찍고 인스타에 올렸다면, 이제는 거꾸로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카페를 간다. 인스타의 세례를 받지 못하는 곳은 실제로의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다.

물론 부작용도 있다. ‘좋아요’를 받지 못한 사람은 소외감을 느끼고, 이 때문에 SNS에는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가 범람한다. 그래서 (인터뷰 시점으로) 오늘부터 인스타가 테스트그룹을 정해서 좋아요 숫자를 감추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하더라. 해외에서 시범 시행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곧 몇 개월 뒤부터는 아예 좋아요가 사라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극사실주의 작품 세계를 추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로에 연극을 올리는 매해 5-6월이 되면, '풀타임 연극인, 파트타임 화가'로 본업이 뒤바끼기도 한다고- 내년 공연은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중 하나인 <뜻대로 하세요>


어릴 때부터 나가 놀기보단 마룻바닥에 앉아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게 사실적인 그림이 좋더라. 만화를 볼 때도 너무 카투니쉬한 캐릭터엔 관심 없었다. 어머니가 “어린 애가 귀여운 거 안 좋아하고 징글징글한 것을 좋아하냐” 걱정하실 정도였다.(웃음)

스트레스가 많던 고등학교 때 우연히 연극이 영화화된 ‘헨리5세’를 보게 됐는데, 온갖 역경을 통해 승리하는 영웅담을 보니 너무 재밌는 거다. 연극인과 화가의 기로에서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연극은 좋아하지만 잘한다고 할 수 없었고, 그림은 좋아하기도 했고 주변에서도 잘한다고 해주더라. 그림을 업으로 삼고 연극을 취미로 삼자 결심한 뒤 이 길을 쭉 걷고 있다.



‘아이언맨’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SNS를 통해 그림을 퍼갔다고 하던데.


언뜻 보면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좌) 이안 맥켈런(우)


주변 사람이나 셀럽을 그리는 작업을 주로 하던 몇 해 전 일이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페북에 친구신청이 5천 개가 넘게 와있었다. 알고 보니, 로다주가 “이게 사진이 아니래!”라며 본인 SNS로 내 이름과 함께 그림을 퍼갔더라. <반지의 제왕> ‘간달프’ 역할로 유명한 ‘이안 맥켈런’도 내가 그린 본인 그림을 SNS에 게재해줬다. 너무 감사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셀럽을 그리기보단, 조각상이나 신화(神話), 혹은 과거 인물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로다주와 맥켈런 그림이 너무 ‘빵 떠버려서’ 이후 작품들이 빛을 보지 못할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최근에 해외 여러 매체에서 “고전시대 조각상을 진짜처럼 그리는 화가”라며 요즘 작품을 많이 소개해줬다. 최근 작품으로 알려질 수 있는 물꼬가 트여 요새 기분이 좋다.



그렇다면 최근 작품 경향과 관련된 인상 깊은 에피소드가 있나?


이제는 절친! 호메로스의 모델이 되어준 '마이클 피너란(Michael Finneran)'과 함께 :)


만화 ‘올림푸스가디언의 비너스’보다 ‘밀로의 비너스’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리스신화 속 비너스가 좀 더 현실감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베이스로 작품을 그리면 더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100% 허구로 만들어진 이미지보다, 언젠가 어렴풋이 존재했을 것 같은 인물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에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이런 컨셉을 처음 적용하여 작업한 것이 미대생들이 석고상으로 매일 그리는,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다. 상상만으로 석고상을 진짜 사람처럼 그리는 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비슷하게 생긴 모델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젊은 외국인 모델을 찾는 것에 비해 수염으로 뒤덮인 주름진 노인을 찾는 게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거의 포기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해방촌에 있는 극단으로 향하던 길에 수염이 덮수룩한 영국인 할아버지를 보고 바로 ‘길거리 캐스팅’을 했다. 다행히 호의적으로 응해주셨고, 바로 모셔와 얼굴을 수백 장 찍었다. 당시 호메로스 그림은 부족한 것이 많지만, ‘1호’ 같은 작품이라 의미가 크다. 더불어 그분과 이 일을 계기로 많이 친해졌다. 작품과 함께 사람까지 얻은 케이스라 가장 기억에 남는다.



초상화 주문 제작도 받는다고 들었는데,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 적도 있나?
개인적으로 의미 있었던 초상화 작업은?


"처음으로 연필을 쥐고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쳐 주신 분이 우리 할머니"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 초상화를 그린 적 있다. 몇 년 뒤에 돌아가셔서 그 그림이 영정으로 쓰였는데, 조문객분들이 괜히 어깨 한 번 툭 쳐주고 가시더라. 외람된 표현으로 그 그림이 장례식장에서 ‘히트를 쳤다.’
  
그런데 나중에 듣게 된 사실이지만, 할머니가 생전에 그 그림을 너무 싫어하셨다고 하더라. 주름과 흰머리까지 내가 너무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듯 흔히 젊은이는 일방적으로 노년의 표상을 미화한다. 내가 할머니의 흰머리를 보며 어린 시절 추억을 상기하고 주름을 보며 할머니의 지혜를 떠올렸던 것처럼
  
증명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친구 이야기로는, 가끔 어르신들이 보정 전 사진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늙음을 마주하는 현실이 슬픈 거다. 할머니가 내가 그린 그림을 보시며 내색은 못 하셨어도 얼마나 큰 절망감을 느끼셨을까 상상하니 마음이 아팠다. 이는 초상화 작업에 대해 아주 깊은 성찰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2016년 5월 '264작은문학관 개관' 당시 뉴스1 보도 사진. 이옥비여사의 환히 웃는 얼굴이 인상적.


의미 있었던 작업은 이육사 시인과 이상 시인 초상화 작업이다. 이육사 시인 초상화는 대구에 있는 작은 문학관에 걸려있는데, 개관식 때 이육사 시인 따님이신 이옥비 여사님께서 그림을 한 번 쓰다듬고 가셨다고 하더라. 나도 이를 기사로 접했고, 너무 보람 있었다.



제19대 강창희 국회의장과 제5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공식 초상화도 작업했다고 들었다.
각 기관에 영구보존 되는 만큼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역대 헌재소장 초상화는 모두 양복 차림이었지만, 박한철 헌재소장은 정중원 작가의 요청으로 특별히 크림슨색 법복을 입은 사진으로 초상화 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국회의장님 초상화는 대학원생 때 작업했는데, 처음 맡아보는 크고 중요한 의뢰라 감회가 남달랐다. 이로부터 몇 년 후 헌재소장님 초상화 의뢰가 들어왔다. 초상화를 완성하고 처음 보여드렸을 때 헌재소장님께서 화사하게 웃으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단 한 번의 수정요구도 없이 그 자리에서 잘 마무리된 프로젝트였다.

두 초상화 모두 영구적으로 보존되는 작품들이다 보니 부담감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영광스러운 기회였고 뿌듯한 추억이다.



JTBC <말하는 대로>를 포함하여 여러 방송에도 출연했던데.


JTBC <말하는 대로> 출연 모습(좌),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 모습(우)


2016년에 ‘한국에서 예술가로 살아남기’ 유튜브 콘텐츠의 일환으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작가님이 그 영상을 보시고 섭외해주셨다. 이후로 짤막하게 여기저기 방송 출연도 하고 강연도 조금 더 많이 들어오게 됐다.

아무래도 프리랜서다보니 누가 내 이름을 검색했을 때 나와 관련된 콘텐츠가 많이 나와야 하지 않나. 프리랜서로서 일을 수주해야 되니, 방송 출연 섭외가 오면 마다하지 않는 편이다.



2018년 ‘예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업예술인은 57.4%에 불과하고
그중 76.0%가 프리랜서라고 한다.
월평균 예술 소득도 100만 원이 안 되는 예술인이 72.7%에 이른다고 하는데,
같은 프리랜스 예술인으로서 문화예술계의 현실, 어떻게 보고 있나?


정중원 작가는 본업 외에 다양한 강연을 소화하고 있다.


이 주제로 강의한 적이 있다. 4년마다 하는 조사인데,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이 안 되는 수치도 그나마 건축가, 웹툰 작가, 디자이너들이 많이 끌어올린 것이다. 문학가나 화가 중엔 ‘연수익이 100만 원이 안 되는 사람’이 허다하다. 사실 예술활동 자체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에 맞지 않는다. 예술가는 ‘내가 좋아서 만들었고 사기 싫으면 말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이 ‘결벽증’을 버렸으면 좋겠다. “손가락 빠는 한이 있더라도 내 작품만 해야 돼”라는 고정관념이 오히려 ‘내 작품’을 못하게 만든다. 나도 그림만 그리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관점을 조금 달리하면, 강의나 주문초상화 등 수입 창구를 만들어 놓은 덕분에 ‘내 그림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만약 창구가 없었다면 방탄소년단을 그리고 있지 않을까?

진정한 내 작품을 위해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그 돈으로 장비 마련해서 저녁에는 작곡하고. 이렇듯 예술가들이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어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술가를 바라보는 인식에 대한 문제도 있을 것 같다.
아직 우리나라는 예술을 노동-직업으로 잘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물론 그렇지만, 예술하는 사람도 본인의 작업을 노동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내가 하는 ‘붓질’은 근로가 아닌, 영혼이 깃들여 있다는 그런 생각 안 했으면 좋겠다. 우리 동네 김밥집 아주머니도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김밥 써셨는데, 영혼 같은 얘기 안 하신다.

그런데 워낙 작가들이 사는 것이 힘들다 보니까 방어기제도 작용하는 것 같다. ‘나는 조금 달라, 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나는 특별하고 대단한 것을 하는 거야’라는….



프리랜서로부터 높은 수수료를 떼가는 플랫폼이 많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오히려 프리랜서의 자생력을 해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높은 수수료를 떼가는 비즈니스모델은 곧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신인 작가가 본인을 알리고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창구가 거의 없었다. 갤러리를 통해서만 작품을 판매할 수 있으니, 그들이 높은 수수료를 떼가는 것이 관행적으로 이해됐었다.

하지만 이젠 SNS나 미디어 산업이 발달하면서 굳이 오프라인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판매할 필요가 없어졌다. 작가들도 많이 영특해졌고 많은 길이 생기고 있다. 이에 따라 오프라인 갤러리도 점점 사라지는 추세고, 이런 흐름이 옳다고 생각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클라이언트 연락처 명목으로 ‘왕서방’이 돈을 가져가서야 되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프리랜서코리아처럼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는 ‘선한플랫폼’의 출현을 대단히 환영한다. 나도 앞으로 널리 알리고 이용하도록 하겠다.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가?


정중원 작가의 작업실 모습.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내년 1년 정도는 그림에만 몰두하고 싶다. 올해 한 갤러리에서 개인전 요청도 있었는데, 출판사와 인물화 에세이집 출간을 진행하게 되면서 이마저 고사했었다. 얼마 전 드디어 원고작업을 끝냈는데, 정신 차려보니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아 ‘현타’가 왔다.(웃음)

내년에는 큰 프로젝트 안 벌리고 그림만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사실 무언가 목표를 정하는 것도, 이루면 허망하고 이루지 못하면 절망 아닌가. 나는 내가 그림으로 말미암아 마케팅이나 디자인 쪽에서 일할 거라 생각했지, 전업 화가가 될 줄은 몰랐다. 앞으로도 이렇게 내 앞에 주어진 작업을 열심히 한다면, 인생에서 재밌는 일들도 자연스레 움트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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