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프리랜서] 김민경 동양화가 인터뷰
‘기억을 소환’하는 프리랜스 예술인
김민경 동양화가 인터뷰
우리는 기억과 망각을 반복한다. (오늘 먹은 점심 메뉴도 가끔 헷갈린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꼭 남기고 싶은 순간이 있다. 부모님께 칭찬받았던 날, 첫 키스의 강렬했던 그 떨림.
우리는 각자의 특별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텍스트와 더불어 사진, 영상 같은 디지털 수단도 사용한다. 그렇다면 작품을 그려 어떤 기억을 추억하는 방법은 어떨까? 그 아름다움의 깊이는 더 깊어질 것이다.
지난 9월 <기억의 조각들>이라는 개인전을 연 동양화 작가가 있다. 프리랜서코리아는 ‘민스페이스(MINSPACE)’라는 개인 화실을 운영 중인 김민경 작가를 만나, ‘기억’에 대한 담론과 프리랜스 예술인에 대한 그녀의 인사이트를 들어보았다.
동양화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언제 동양화에 대한 흥미를 느꼈나?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했고, 예중, 예고에 진학했다. 예고 1학년 때 동양화, 서양화, 디자인, 조소 등 네 개의 파트를 모두 경험해 본 뒤 2학년 때 과를 선택하는데, 익숙했던 서양화를 선택한 것이 화근이었다. 한 학기 내내 적응을 못 하고 매일 화장실에서 울었다.
그러다 문득 예전부터 선생님들이 “너는 동양화가 정말 잘 맞을 거야”라고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연필소묘나 스케치하는 것만 보고도 전부 내게 동양화 얘기를 했었던 것이다. 그렇게 2학년 여름방학 때 뒤늦게 동양화에 뛰어들었다. 그 때 나는 동양화를 그리며 처음으로 미술 자체에 대한 재미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입시 생활도 정말 즐겁게 했다. 학창시절 통틀어 처음으로 1등이란 것도 해봤다.
동양화는 마치 운명처럼 내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그 운명에 대한 보답처럼 동양화를 계속하고 있다. 내가 미술에 대한 재미, 삶에 대한 진정을 느끼게 해준 동양화를 앞으로도 계속 갈고 닦아야겠다고 항상 다짐한다.
입시 미술 강사를 오래 했다고 들었다.
왜 강사의 길이 아닌, 프리랜서로 살게 됐는가?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거의 8년간 입시 미술 강사를 했다. 나는 예중, 예고, 대학 입시까지 치르면서 입시에 통달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학원에서 나를 너무 ‘굴렸다.’ 무엇보다 결정적 계기는, 우연히 강사 급여표를 보게 된 일이었다. 나보다 나태하고 업무능력도 떨어졌던 옆 반 강사가 급여를 20%나 더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항상 원장의 위로 하에 그저 책임감으로 성실히 일하던 나였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허탈함과 배신감(?)에 프리랜서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하루 종일 학생들과 붙어있으면서 감정소모도 많았다. 학생들이 부모님께 하지 못하는 고민을 내게 종종 털어놓았는데, 나는 감정이입을 많이 하는 타입이다. 아이들 집안의 우환부터 고민을 하나하나 듣다 보면 기가 척척 빨렸다. 강사를 전업으로 했다가는 일찍 늙을 것만 같았다.(웃음)
하지만 강사 경험은 정말 의미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내 개인전을 찾아주었을 땐 너무 행복하더라. 교복 입은 아이들이 돈이 어디 있다고 한두 푼 모아서 꽃을 사 와서는 선생님- 하고 불러주는데.. 강사 일을 해보길 정말 잘했다 느꼈다.
동양화 작가로 여러 가지의 프로젝트를 했더라.
개인적으로 명예로웠던 작업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내 삽화를 실은 것이다. 출판사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 삽화로 내 그림을 싣고 싶다며 연락을 주셨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우리나라에서 ‘꽃’을 논하는 대표적인 시가 아닌가. 새로운 그림이 아닌 그동안 수백 번 그려왔던 꽃을 그리는 작업이라 작업 자체는 쉬웠지만, 굉장히 영광스러운 작업이었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KAIA) 사내벽화 작업도 재미있었다. 8미터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였다. 기존의 벽화는 단순히 도안에 따라서 스케치를 뜬 뒤 색을 메꾸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나는 회화전공자만이 할 수 있는 회화기법을 사용했다. 기본적으로 동양화는 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세필로 선의 굵기와 빠르기 등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특히 기존의 도안에 있던 나무의 형태는 너무 단순하여 미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를 소나무 형태로 바꾸는 것으로 제안했고, 필력을 살려 기운생동이 나타나도록 소나무를 표현했다. 일반 벽화 작업이 아닌, 이중 스케치 작업으로 진행하여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유려한 붓 터치의 동양화 드로잉을 활용하여 보람 있었던 작업이었다.
주문제작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인물 초상화나 반려동물 그림에 대한 주문제작을 받는다. 작화 방식은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동양화의 느낌이 물씬 나는 가볍고 선명한 ‘수묵드로잉’ 방식이고, 두 번째는 밀도있고 세밀하여 섬세한 털 표현이 가능한 ‘바림채색화’ 방식이다.
2년 전쯤 워너원 강다니엘씨의 지인으로부터 강다니엘 초상화 의뢰가 들어왔었다. 초상화는 강다니엘에게 전달됐고, 나중에 싸인이 돌아왔다.(웃음) 영화제작사 ‘블룸하우스’로부터 의뢰받아 <겟아웃> 초상화를 그린 것도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주기적으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최근 9월에는 ‘기억의 조각들’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열었던데.
내 그림이 보통 풍경이나 장면(SCENE)을 차용한 것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퇴근길인데 갑자기 네 그림이 생각나”, “네가 그린 노을 그림을 보는데 문득 어떤 기억이 떠올랐어.” 이런 말을 굉장히 많이 듣는다. 내 그림을 보면서 저마다 각자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의 조각들’이라는 주제로 정하게 됐다.
물론 기본적으로 내 작품들은 내 머릿속 기억을 담론하고 있다. 감정으로 소환된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이 담고 있는 존재에 대한 무게감을 갖고 그리려고 한다.
작년 10월 전시에서는 시간에 쫓겨 작품에 내 생각을 진정성 있게 담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생각을 전하는 직업’이 ‘작가’ 아닌가. 스스로 작가라 하기에 부끄러운 작품들. 공간을 채우기 위한 작품들로 마음이 공허했다.
이번 전시는 내 직업을 ‘작가’라고 하는 것이 떳떳할 수 있도록 준비했던 전시였다. 아버지의 기억을 가장 많이 담은 전시였기에 의미도 더욱 컸다. 너무 감성적으로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기에 가족 아니면 이런 스토리를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작품들이 있겠다.
이번 전시에 메인으로 사용했던 두 그림에 특히 애착이 간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그리고 걷다가 친구들끼리 발 모아서 찍는 것 많이 하지 않나. ‘발 인증샷’을 엄마랑도 찍었고, 그 이미지가 예뻐 드로잉했다. 재료적 특성이 재미있는데, 엄마와 나의 발은 세밀한 수채화로 표현하고 배경은 크레파스로 표현했다.
시간이 흐르며 엄마와 딸은 서로 친구가 된다. 함께 성장하는 우리의 발은 수채화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반면 엄마와 함께일 때 딸은 언제든 어린 아이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함께 있던 그 곳의 배경은 순수함을 좀 더 담고 싶었다. 크레파스는 어린 아이를 상징하는 '첫 미술도구'이지 않나. 그래서 낙엽이 있는 배경을 크레파스로 표현했다. 엄마와 나의 추억이 담겨있는 작품이라 그 드로잉도 굉장히 좋아한다.
개인 작업공간 ‘민스페이스(MINSPACE)’ 이야기를 해보자.
오래전부터 차근차근히 준비하여 2017년 8월 말에 오픈했다. 사실 처음에 화실 타겟을 ‘성인 취미’에 맞췄을 때 “돈 안 되는 거 하지 말라”며 주변에서 많이 만류했다. 아크릴이나 수채화처럼 레슨 수요도 많고, 아동 미술 같이 ‘돈 되는’ 화실을 운영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양화만 고집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동양화 클래스가 드물다 보니 마케팅 표본이 없었다. 일단 블로그를 열고 상위 노출하는 방법과 키워드 뽑는 법을 공부하며 셀프 마케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블로그에 글 하나 쓰는 것만 해도 네다섯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맘카페나 취미카페, 심지어 돌싱카페까지 가입하여 화실을 알리는 글을 남겼다.
다만 장사하는 학원이라는 느낌을 주긴 싫었기에 항상 ‘작가의 작업실’이라는 표어를 앞에 내걸었다. 그리고 때마침 네이버에서 ‘우리 동네’라는 콘텐츠 공간이 열리면서 입소문이 금방 나며, 운 좋게 오픈 한 달 만에 수입이 생겼다. 수업을 통해 갱년기 우울증이 치유된 주부님들, 예쁜 꽃을 봤다며 사진 찍어 오시는 수강생분들 등 나로 인해서 그 사람의 인생에 무언가 ‘스며들었음’을 느낄 때 참 행복하다.
지난 여름엔 민스페이스 회원전도 열었던데.
기획부터 모든 것을 혼자 담당하느라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오고 정말 죽는 줄 알았다.(웃음) 아이를 졸업시키는 기분이란 이런 느낌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회원분들이 친구와 가족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각자의 작품 앞에서 사진 찍는 모습들을 보면서, 회원전을 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때만큼은 모두가 ‘작가’였던 것이다. 성인화실이라 각자의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 회원전을 자주 열진 못하겠지만, 주기적으로 해보자고 이야기 중이다.
2018년 ‘예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업예술인은 57.4%에 불과하고
그중 76.0%가 프리랜서라고 한다.
월 평균 예술 소득도 100만 원이 안 되는 예술인이 72.7%에 이른다고 하는데,
같은 프리랜스 예술인으로서 문화예술계의 현실, 어떻게 보고 있나?
앞서 주문제작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작품 단가가 많이 낮다. 우리는 작품 의뢰를 받으면 그 작품에만 매달리는데, 통념적인 작품가를 계산해보면 최저시급에도 못 미칠 때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예술가들이 자존감을 잃어간다. 내 주변에도 ‘이 작품 값으로 10만원은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동기들이 많다. 시급 1만원 받는 미술학원으로 예술가들이 빠져나가고, 누구도 발로 뛰어 상황을 극복하려 하지 않으니 미술계가 점점 움츠러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악기는 타고난 사람이 드물어서 음악계 시장은 페이가 크게 안 떨어진다. 하지만 미술학원은 가격이 조금만 높아도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업계의 공생을 위해 수강료를 터무니없이 낮추지 않으려 한다. 후배들에게도 “꼭 제값 받으며 일하라”고 잔소리한다. 일에 대해 자긍심을 높이는 것, 스스로 움츠러들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더불어 예술가의 작품 가치를 무조건 낮은 가격으로 책정하려 하는 플랫폼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발현할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줄 플랫폼의 출현을 기대한다.
예술가를 바라보는 인식에 대한 문제도 있을 것 같다.
아직 우리나라는 예술을 노동-직업으로 잘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어떻게 보면 예술을 이론적으로 배운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학교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법을 제대로 배운 경험이 없는 것이다. 사실 나만 해도 잘 모른다. 모르는 작가도 많고, 그림이 지닌 의미에 대한 해석은 더욱 어렵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림으로 감상하는 습관을 길러준다면, 자연스레 그 작품을 그린 사람의 노고도 인정해주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작품을 소유하는 의미가 다소 변질된 것 같다. 작품의 퀄리티를 존중해서 소유하기보다는, 돈의 세탁 등 부정적 용도로 사용되면서 그림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허세와 사치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젋은 바이어들의 운동도 있었다고 들었다. ‘내 인생 첫 예술작품’에 의미를 두고 구입하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이 더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는가?
사실 9월 개인전이 300평 규모의 큰 전시였다. 영혼까지 탈탈 털어 준비했기에 일단 올해까지 작품은 잠깐 쉬려고 한다. 일단 지금 운영하고 있는 클래스는 그대로 가져갈 계획이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오지 않나. 작년에 크리스마스 카드 만들기 클래스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작년 만큼 재미있는 크리스마스 콘텐츠를 구상해 봐야 할 것 같다.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오면 다시 공모전 준비를 할 것 같다. 사실 돈 내고 대관하면 아무나 개인전을 열 수 있지만, 공모전 당선을 통한 개인전은 업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위상이 훨씬 높다. 나는 운 좋게 지금까지 100% 공모전을 통해 개인전을 열어왔다. 새해에 새로운 마음으로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할 것 같다.
김민경 작가의 애장품 공개!
- 캐논카메라: 더 좋은 작업을 위해 구입한 내 인생 첫 DSLR
- 핸드폰: 수시로 나의 영감을 담아주는 간편한 존재
- 붓: 그림에 사용하는 색 하나하나 따로 사용. 닳아도 버리지 않고 수집하고 있음
- 고양이 '까루': '품'이라고 할 순 없지만, 말이 필요없는 나의 가족. 민스페이스의 인기만점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