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Tango Life
탱고를 처음 알게 된 것은 90년대에 개봉된 영화 ‘여인의 향기’를 통해서였다. ‘알 파치노’의 팬이었던 나는 당시 그가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를 보았다. ‘여인의 향기’라는 영화에서 눈이 먼 퇴역 군인 역을 맡았던 그는 유럽풍의 식당에서 아름다운 여자에게 춤을 신청하고,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멋지게 춤을 추었다. 그의 대사, “If you make a mistake, if you get all tangled up, you just tango on. (실수하거나 스텝이 엉키면, 그게 탱고다)” 라는 말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언젠가는 꼭 탱고를 배우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대기업에 엔지니어로 취직했지만, 지방에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다. 지방에서의 삶이 상당히 무료했던 시기에, 어느 날 지인 소개로 소개팅하게 되었다. 식사 후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었고, 그때 상영하였던 것이 ‘Tango’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여인의 향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탱고를 보여주었다. 프로 무용수들의 화려한 동작과 감미로운 음악이 내 가슴을 강하게 울렸다. 그 영화를 본 이후, 나는 아르헨티나 탱고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헤맸고, 결국 강남에 있는 한 동호회에서 탱고를 배우기 시작했다.
탱고를 배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상대방에게 춤을 신청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러던 중 아르헨티나에서 온 탱고 공연단의 방한 소식을 듣고, 그들의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경기도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매일 저녁 서울로 올라와 수업을 듣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생활을 이어갔다. 워크숍 동안 회사 생활은 고달프고 힘들었지만, 새로운 동작을 배울 때마다 고생할 만한 가치가 있음을 느꼈다.
탱고에 대한 나의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 댄서들의 워크숍이 점점 많아졌고, 나는 그 워크숍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하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세계적인 탱고 댄서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나는 1년에 한두 번씩 유럽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가서 페스티벌이나 워크숍에 참석하였었다. 춤바람이 무섭다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나는 탱고에 빠져들었고, 춤을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몇 년 후, 지인 2명이 새로운 탱고 동호회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고, 우리는 압구정에 동호회를 설립했다. 강남 지역에서 탱고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동호회는 빠르게 성장했다. 다양한 행사 문의가 들어왔고, 나는 여러 공연을 통해 무대 경험을 쌓아갔다. 물론 첫 공연은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실수투성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호텔 프로모션, 파티 오프닝 행사, 홈쇼핑, TV 방송, 영화 촬영, 심지어는 세종문화회관 협연까지 다양한 무대에서 탱고를 선보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경험 중 하나는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여배우와 함께 작업하게 된 일이다. 그 여배우는 내가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란 영화에서 처음 보고 한눈에 반했던 인물이었다. 우연히 영화 속 탱고 장면을 위해 여배우를 지도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놀랍게도 그 여배우가 주연이었다. 그녀는 춤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이 뛰어났고, 나는 가르치는 보람을 느꼈었다.
이후에도 그녀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TV 프로그램 ‘여걸 식스’에서 그녀가 신규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신고식으로 탱고 공연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나는 그녀의 탱고 파트너로 출연하게 되었고, 갑작스러운 결정으로 인해 1주일 정도 매일 새벽까지 안무하고, 함께 연습해야 했다. 노력의 결과로 성공적인 데뷔 무대를 만들었고, 이후에도 방송 작가로부터 출연 문의가 있었다. 그리고 여름 특집 신문 화보 촬영에서도 그녀와 함께 파트너로 작업을 했었다. 그녀와의 작업은 내게 큰 의미로 남아 있으며, 탱고 덕분에 맺은 특별한 인연 중 하나다.
하지만 그 무렵 나는 회사로부터 미국 지사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탱고와의 열정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결국 직업적인 책임을 선택하게 되었다. 몇 년간의 탱고와의 열정적인 시간을 뒤로하고 본업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그 시절처럼 열정적으로 춤을 추지는 않지만, 아르헨티나 탱고에 빠졌던 그 몇 년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였다. 나의 화양연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