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첫 해외 근무
2008년, 나는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으며 미국으로 향했다. 기대했던 첨단 기술의 중심지에 대한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도시의 규모는 예상보다 작았고, 한국 가게들이 밀집한 ‘엘까미노 거리’의 소박한 상점들은 한국의 읍내를 떠올리게 했다. 미국의 대도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고, 내 기대와의 다른 모습으로 인해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잔디밭이 있는 타운하우스에서 살아보게 되어 주거 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높았다.
내가 도착한 그해 말,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었고, 실리콘밸리도 영향을 받았다. 대규모 해고와 회사 내 긴장감이 팽배했고, 일부 회사에서는 해고로 인한 불만으로 총기 사건까지 발생했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도 해외 인력을 줄이라는 지침이 내려와, 몇몇 동료는 본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나 또한 불안을 느끼며 이 시기를 버텼지만,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모바일 고객과 시장을 담당하고 있었다. 2007년에 처음 출시된 첫 아이폰은 애플 마니아층 사이에서만 인기를 끌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피처폰을 사용을 고집했다. 특히 업무용으로는 스마트폰과 가장 유사했던 블랙베리나 Palm의 PDA폰이 주로 쓰였으며, 블랙베리는 오바마 전 대통령조차도 애용하고 있어 아이폰의 성공은 불확실하였다. 그러나 아이폰 3GS 모델 출시 이후 판매량은 급증했고, 덩달아 전체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하게 되었다. 시대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고객을 지원하며, 모바일 시장이 가파르게 커가는 것을 직접 지켜보며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향후 나의 경력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힘든 일을 버틸 수 있었다.
2010년에는 Apple이 iPad를 출시하면서 모바일 기기 시장은 더욱 확장되었고, 나의 업무 또한 가중되었다. 미국은 한국처럼 다양한 동호회 문화가 활발하지 않아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주말에도 가끔씩은 회사 업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삶이 피폐해져 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골프를 시작했다. 회사 동료들과 골프를 치면 매번 업무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나는 혼자 골프장에 가서 처음 보는 현지인들과 골프 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자주 찾았던 골프장 중 하나는 웬티라는 와이너리 골프장이었는데, 포도밭이 펼쳐진 경관 속에서 골프를 치는 경험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또한 집에서 가까운 랜치 골프 코스는 산악 지형에 있어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공을 날리는 묘미가 있었다. 골프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일시적인 스트레스 해소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실리콘밸리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당히 컸고, 그의 죽음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가 쓴 자서전은 실리콘밸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어 봤을 정도로 그의 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절실히 느꼈다. 첨단 기술의 세계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조차도 췌장암 앞에서는 무력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개인적으로 매우 힘들었지만, 최첨단 기술의 변화와 발전을 현장에서 목격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평소 동경했던 인물의 죽음과 나의 극한 스트레스 경험을 통해, 건강한 삶과 정신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