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 신도시
대학생 시절 이후로 나는 기숙사와 해외 생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실에서 보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단지의 다른 동에 전세로 거주하면서 익숙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삶을 이어갔다. 우리 집은 지하철역에서 도보 3분 거리여서 출퇴근이 편리했지만, 역과 인접한 만큼 소음 문제를 피할 수 없었다. 차 소리나 인근 상가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종종 불편을 주었고, 오래된 아파트는 겨울철 외풍 때문에 추위를 견뎌야 했다. 또 주차 공간이 부족해 저녁이면 주차 자리를 찾느라 30분 이상 헤매는 일이 빈번했다.
아버지가 어느 날 나에게 청약 통장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청약 통장이 있다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위례신도시에서 곧 분양이 시작될 예정이라며 한 번 신청해 보라고 권유하셨다. 위례신도시는 서울 남쪽 끝에 위치해 있었고, 남한산성도 가까이 있어 주말에 산책을 하기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단지 옆에 미군 골프장과 대규모 골프 연습장이 있어 여가 생활을 즐기기에 적합해 보였다. 많은 미국인이 골프장 옆에 사는 것을 버킷 리스트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갔었다. 분양 신청을 했고, 다행히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학교와 공원이 가까운 동의 높은 층을 분양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입주 날이 찾아왔다. 위례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완공된 아파트 단지였던 우리 집은, 당시 개발이 한창진행 중이었던 지역의 첫 주민이 되었다. 주변 대부분이 공사 중인 상태였고, 조감도에서 봤던 트램, 냇물 조경, 대규모 쇼핑 단지는 아무것도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다. 편의점조차 없어서 일상적인 생필품이나 식료품을 구하려면 송파 쪽으로 나가야 했고, 저녁 늦게는 주변이 너무 어두워 날이 밝을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의 생활은 상당히 불편했다.
입주한 지 2주가 지난 어느 날, 아파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푸드 트럭이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단지 앞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파는 음식은 순대와 분식, 곱창볶음 같은 간단한 메뉴들이었는데, 잠실에서는 크게 관심 없던 음식이었지만 위례에서는 반가웠다. 푸드 트럭에서 음식을 사 먹으며 작은 기쁨을 느꼈지만, 메뉴가 한정적이라 금방 질리게 되었다.
한 달이 더 지나자, 드디어 단지 건너편 상가에 위례신도시 최초의 편의점이 입주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파트 주민들 모두가 편의점 오픈 소식에 들떠 있었다. 편의점에 어떤 음식이 들어올지, 겨울철 호빵 판매 여부에 대한 질문이 게시판을 가득 채웠다. 오픈 날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나도 퇴근 후 편의점을 찾았을 때 물건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며칠 후에는 물건이 충분히 공급되어 정상적으로 운영되었고, 그때부터 조금씩 생활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입주한 지 1년이 지나자, 단지 주변에는 대규모 공원이 조성되었고, 다른 단지들과 연결된 산책로도 생겼다. 아침저녁으로 공원과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다. 또 아파트 바로 앞에 학교가 들어서면서 아이들이 걸어서 5분 내에 등교할 수 있게 되자 가족 모두가 만족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아파트 단지들이 완공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상가도 점차 들어서면서 생활 편의성이 향상되었고, 도로도 정비되어 남한산성으로 이어지는 길도 사람이 편하게 다닐수 있을 정도로 정비되었다. 이렇게 도시가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신도시에서의 생활이 마치 새로운 관계를 맺고 쌓아가는 우리의 삶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적응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도시의 발전과 닮아 있었다. 신도시에서 처음으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모든 것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