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중화권 생활
처음 해외 근무지를 선택할 때, 나의 목표는 미국, 중국, 일본이었다. 미국은 IT 기술의 선두주자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중국은 글로벌 경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기초 기술 면에서 여전히 강국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하지만 대만은 처음부터 계획에 있던 곳은 아니었다. 그러다 2017년, 회사에서 대만 마케팅 포지션을 공지했고, 상사의 권유로 나는 그곳에 지원하게 되었다. 대만은 남한보다 작은 섬나라이지만,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TSMC가 위치해 있고 많은 글로벌 IT 업체들의 ODM 기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지만, 선배들의 강력한 추천과 대만 생활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2017년 말, 나는 타이베이로 이주하게 되었다.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처음으로 느낀 것은 예상보다 추운 겨울이었다. 대만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해 있지만, 습도가 높아 겨울철의 추위가 한국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대만의 겨울은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몸을 파고드는 습기 때문에 새벽마다 차가운 공기에 잠을 깨곤 했다. 으슬으슬한 추위로 인해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겨울에 동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만에 있던 지인이 오기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할 목록으로 전기장판을 언급했던 점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대만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연재해 역시 자주 접하게 되었다. 대만은 지진과 태풍이 빈번한 지역이다. 내가 타이베이에 있을 때 몇 차례 지진을 경험했지만,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파트 고층을 좋아하지만, 대만 사람들은 고층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이유를 들어보니 고층으로 갈수록 많이 흔들려, 지진이 발생하면 위험하다고 한다. 큰 태풍은 1년에 2~3번씩 왔었고, 임시 휴무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매년 태풍이 오기 전에 우리 가족들은 코스트코나 까르푸에 가서 비상식량과 물을 사놓았다. 대만 사람들은 휴지도 엄청나게 사가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컸다. 나는 한국에서 2년간 중국어를 배웠지만, 대만에서는 번체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문자 표기부터 낯설었고, 현지인들의 중국어 억양도 조금 달라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로 소통이 자유로워지기까지는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미국이나 중국에서는 구매 부서 직원들이 대부분 남성이었던 반면, 대만에서는 많은 여성들이 구매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언어 장벽이 있었음에도 친절한 고객사 여직원들 덕분에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다.
대만 생활의 큰 매력 중 하나는 음식과 주류였다. 대만은 스린 야시장 같은 유명한 시장뿐만 아니라, 동네 곳곳에 맛있고 저렴한 음식점들이 넘쳐났다. 대만의 외식 비용은 저렴해 부담 없이 다양한 음식을 시도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대만에서의 식생활은 풍요로웠다. 나는 대만에서 조개 볶음, 굴전, 죽순 요리, 대만 소시지 등 다양한 음식을 즐기며 현지의 맛을 탐험했다. 대만의 대표적인 술은 금문고량주였는데, 동료들과 저녁을 먹을 때 매번 빠지지 않고 마셨었다. 또한 대만의 유명한 위스키인 ‘카발란’도 빠질 수 없는 주류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이름 없는 싸구려 위스키인줄 알고 마시지 않았는데, 몇 번 마시다 보니 특유의 향과 맛에 푹 빠졌었다
대만에서의 여행은 다른 나라에 비해 크기가 작아 간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대만에 도착하면 '예스진지'라는 관광 코스를 방문한다. 타이베이와 비교적 가까운 '예류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줄임말이라고 한다. 이후 화롄, 타이중, 타이난, 가오슝 등 대만의 주요 도시들을 차례로 여행하게 된다. 나는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대만의 독특한 풍경을 즐길 수 있었고, 온천 문화도 체험해 보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더 이상 가고 싶은 곳이 없어, 유럽, 호주 쪽으로 여행을 갔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많은 동성애자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내가 있을 때 동성애 결혼에 대한 찬반 투표가 있었고, 지금은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되었다. 부동산 중개인이었던 피터는 전형적인 게이였고,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동성애 커플들이 가볍게 입맞춤하거나 서로를 사랑스럽게 쓰다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대만은 동성애에 대해 개방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일상 속에서 그런 모습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업무적으로는 매출에 대한 압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미국에서 겪었던 강도 높은 스트레스에 비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덕분에 대만에서는 다양한 음식 및 주류 문화와 함께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