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이별은 여전히 아팠다.
마흔, 이별은 여전히 아팠다.
여섯 달이 흘렀지만, 그녀의 흔적은 여전히 내 삶 곳곳을 떠돌고 있었다. 몇 번이고 치우려던 물건들은, 언젠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 앞에 손을 대지 못했다.
욕실 구석에 놓인 목욕용품, 침대 맡의 커플 잠옷, 그리고 가끔 집 안을 스치듯 퍼지는 향수 냄새까지. 그녀의 체취는 여전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퇴근 후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마치 아직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닥쳐오는 현실—그녀는 없다는 사실이, 날 다시 무너뜨렸다. 심장은 터질 듯 뛰고, 가슴은 쿡쿡 쑤셨다. 이 감정을 이기지 못해 위스키 잔을 들었고,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 힘겹게 잠이 들었다가도, 새벽이면 공허함에 깨곤 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의 어둠 속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버텼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늘 조용히 참고,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어른처럼 굴었다. 하지만 이별 앞에서 감정은 무너졌다. 사랑의 상처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예리한 칼날처럼 나를 찔렀다.
그녀를 잊기 위해 업무에 몰두했다. 해외 매출 건을 챙기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생각할 시간을 줄이려 애썼다. 생각이 곧 기억이 되고, 기억은 고통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인사팀에서 전화가 왔다.
“상하이 지사, 급히 한 사람 필요해요. 전임자가 건강 문제로 복귀를 요청해서요.”
뜻밖이었다. 상하이라니.
“좋은 제안 감사합니다. 며칠만 시간을 주세요.”
상하이. 낯선 도시, 낯선 언어, 낯선 사람들.
그러나 그 낯섦은 오히려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잔상이 너무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 익숙한 서울, 그 안에 나는 더는 설 자리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녀로부터, 그리고 나 자신으로부터.
상하이행을 결정했다. 동료들에게 말을 꺼냈고, 친한 이들은 걱정스레 만류했다.
“중국? 요즘 분위기 별로잖아. 그냥 여기서 버텨.”
“상하이에 가면 진급도 늦어질 텐데… 굳이 왜?”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내 안의 고통을 알지 못했다.
머뭇거리던 마음은, 어느새 결심으로 굳어졌다.
나는 인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상하이에 가겠습니다. 준비할 것들 알려 주세요.”
비자 서류를 준비하고, 집을 정리하고, 가져가지 못할 가전과 가구를 중고 사이트에 올렸다.
‘거의 새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누군가에게 팔려나가는 내 물건들을 보며, 문득 나 자신도 ‘중고 인생’처럼 버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출국 전날, 동료들과의 마지막 술자리.
웃음과 건배가 이어졌지만, 나는 어쩐지 점점 외로워졌다.
익숙한 얼굴들이 떠들고 웃을수록, 그들과 내 마음 사이의 거리는 더 멀게만 느껴졌다.
술기운을 빌려, 그녀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었다.
아직 지우지 못한 연락처, 그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 두 번. 그리고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녀의 목소리.
“… 왜?”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말을 꺼냈다.
“나… 상하이로 가. 그냥, 인사하려고.”
짧은 정적. 그리고 건조한 목소리.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뚝—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따뜻한 말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차가움은 의외였다.
그러나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던 미련도 스르르 씻겨 내려갔다.
그래. 정말 끝이다. 되돌릴 수 없는, 차갑고 단단한 끝.
그제야 나는 진짜 떠날 준비가 된 듯했다.
다음날, 김포공항.
이른 아침 비행기에 올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도시의 어둠 너머로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두려움 반, 기대 반, 그리고 알 수 없는 해방감.
그렇게 나는 상하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