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러운 끌림의 시작
며칠 뒤, 현지 대리점과의 회식이 있었다.
장소는 푸시(浦西) 쪽의 고급 광동 식당.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서로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나는 자꾸만 그녀의 말과 표정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식당 안은 북적였고, 조용히 말하지 않으면 목소리가 소음에 묻히기 일쑤였다.
서로의 말이 잘 들리지 않자, 우리는 조금씩 몸을 기울여야 했다.
그 거리의 좁혀짐이 어쩐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날 프레젠테이션 중 던졌던 농담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아무도 안 웃으면 어쩌나 싶었어요. 진짜 땀이 다 나더라고요.”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저도 좀 걱정했어요. 갑자기 그런 농담을 하셔서요.”
“아, 웃겨서 웃은 게 아니라... 동정심이었나요?”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진짜 웃겼어요. 어설퍼서요.”
그녀의 농담에 나도 웃고 말았다.
대화는 점점 편안해졌고, 우리는 서로의 음식 취향, 좋아하는 영화, 어릴 적 기억 같은 사소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나눴다.
“매운 건 잘 못 먹어요,”
그녀가 말했다.
“사천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부터 상하이에서 자라서 그런가 봐요. 광동 음식처럼 부드럽고 담백한 게 더 입에 맞더라고요.”
“의외네요. 외모랑 분위기는 딱 사천 사람 같은데…”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떤 면에서요?”
“글쎄요, 직설적이고, 원하는 건 꼭 쟁취하려는 느낌?”
그녀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요. 갖고 싶은 건 참을 수 없어요. 눈앞에 있으면 꼭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에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
그녀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잠깐 멈춰서, 다시 잔을 들며 말을 이었다.
“사람도, 일도 마찬가지예요. 주저하다 놓치는 건 질색이라서요.”
장난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단단했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누군가가 나일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스쳤다.
며칠 뒤, 상하이 고객사 방문 일정이 있었다.
그녀의 대리점이 담당하고 있던 곳이라, 우리는 같은 차를 타고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운전석 옆에 앉은 그녀는 가죽 재킷에 흰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전보다 말수가 줄어든 듯했지만, 얼굴은 여전히 차분하고 단정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거리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는 대화를 시작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먼저 말을 꺼낸 건 그녀였다.
“그런데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게 좀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예상 못 한 질문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편이에요. 특히 마음이 가는 사람일수록, 더 조심스럽죠.”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저는 반대예요. 마음이 가면, 오히려 숨기는 게 더 어려워요.”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덧붙였다.
“처음엔 당신이 좀 불편했어요. 무표정하고, 말도 아껴서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조용한 분위기가 이상하게 믿음이 가더라고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그래요. 이제는 더 이상, 함께 있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오히려 편안해졌어요.”
그녀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날 우리는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가까워졌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 주말, 시간 괜찮으세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왜요?”
그녀는 창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냥… 같이 걷고 싶은 길이 있어서요.”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이상하게도, 상하이의 밤공기가 전보다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녀의 말이 내 안 어딘가를 따뜻하게 덥혀놓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