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상하이에서의 첫날

그녀 없는 낯선 도시의 쓸쓸함

by 역마자

새해 첫날 아침, 김포공항에서 상하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마음은 무거웠고, 의자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창밖을 바라봤다. 흐릿한 회색 빛 하늘이 마치 내 속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 같았다.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날씨처럼, 내 앞날도 흐릿했다.


두 시간 남짓 비행 끝에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장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그 안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주변의 말소리, 발소리, 안내방송… 모두 낯선 언어의 파편들로 가득했고, 나는 그 속을 존재감 없이 조용히 부유하고 있었다. 사람 사이에 있으면서도,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고립감이 짙게 밀려왔다.


공항 밖으로 나섰을 때, 싸늘한 겨울 공기가 폐 깊숙이 파고들었다. 피곤함보다 외로움이 먼저 몸을 움츠리게 했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낯섦 속에서 느껴지는 어떤 무심함이 오히려 위안처럼 느껴졌다. 기대할 것도, 실망할 것도 없는 도시는 묵묵히 나를 받아들였다.


상하이 지사에서 보낸 조선족 기사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강 팀장님 맞으시죠?”


익숙한 언어지만 어딘가 어색한 억양이, 이곳이 한국이 아님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차에 올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상하이의 풍경은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창문 너머로 쏟아지듯 솟은 빌딩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하나같이 높고, 화려했고, 하늘을 향해 자신을 과시하듯 서 있었다. 간판은 낯선 한자로 빼곡히 적혀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수많은 사람들과 차량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호텔에 짐을 두고, 점심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프런트 직원이 추천한 ‘홍췐루’. ‘상하이 속 한국 거리’라는 말이 어색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익숙한 간판들이 보였다. 한식당, 미용실, 한국 마트…. 이국의 거리에서 불쑥 튀어나온 익숙함은 반가웠지만, 그 반가움이 오히려 서글펐다. 집이 아니라는 걸 더욱 선명히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김치찌개를 시켜 조용히 먹었다. 익숙한 맛이 입안에 퍼지자, 몇 달간 억눌러왔던 감정이 속에서 불쑥 올라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밥을 씹었지만,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따뜻한 국물은 속을 데웠지만, 그 따뜻함은 오히려 그리움과 외로움을 더 깊이 흔들었다. 사람은 참 모순적인 존재다. 따뜻함을 느낄수록, 더 외로워진다.


저녁 무렵, 와이탄으로 향했다. 황푸강을 따라 걸으며 마주한 상하이는 마치 두 얼굴을 가진 괴물 같았다. 한쪽은 과거의 유럽, 다른 한쪽은 미래의 도시. 그 속에서 나는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직 ‘지금’에 고립된 사람이었다.


강변엔 연인들이 손을 잡고 있었고, 가족이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 틈에서 혼자 걷는 나는 유령 같았다. 지나치는 사람들과 어깨가 스치고, 발소리가 섞였지만, 누구도 나를 인식하지 않았다. 사랑했던 사람과 손잡고 걷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지만, 그 기억마저 이제는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아득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쳤고, 그 바람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돌아서려 했지만, 택시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몇 대를 놓치고, 길을 헤매던 중, 용기를 내어 친절해 보이는 젊은 여성에게 다가갔다. 서툰 중국어로 말을 걸었고, 그녀는 금세 내 상황을 알아챘다.

“한국 분이세요?”


따뜻한 눈빛, 부드러운 말투. 그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했다.

“여기선 디디 앱이 없으면 택시 잡기 힘들어요. 위챗은 있으세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디디 앱을 열었다.

“괜찮아요. 가까우니까 제가 불러 드릴게요.”


그리고는 택시 번호와 올 방향을 가르쳐주고 나서 손을 흔들고 떠났다. 망설임도 없었고,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다. 단지 잠깐, 처음 본 외국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할 만큼 길게 느껴졌다. 그건 단순한 도움이 아니었다. 이국 땅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낯선 이의 온기였다.


호텔로 돌아온 뒤, 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천장을 바라봤다. 잠은 오지 않았고, 생각은 깊어졌다. 몸도 마음도, 어딘가 허전하고 무너져 있었다.


그녀와의 마지막 날이 불현듯 생각났다. 이젠 더 이상 눈물도 없었고, 원망도 없었다. 서울을 떠난 지금 그저 더 이상 우리 사이의 인연이 이어질 수 없음을 현실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상하이.

너무도 크고, 너무도 낯설고,

그리고 생각보다 조용히 외로운 도시.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녀가 없는 나를 익숙해지려 애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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