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지도 잇지도 못한 관계
이성적으로는 이미 끝난 관계라는 걸 안다.
서로를 붙잡을 이유도, 붙잡힐 이유도 사라졌다는 걸 인정했다.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결론을 냈다.
“그렇게까지 깊은 인연은 아니었어. 이제 각자의 길을 가는 게 맞아.”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그 단순한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이미 끝났다고 정리해 놓고도, 불쑥불쑥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그녀가 웃던 모습, 공항에서의 짧은 인사, 아무 의미 없이 주고받던 메시지.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사소한 장면들이 시간이 지나 이렇게 아릿한 통증이 될 줄.
상대방은 친구로 남자고 했다. 그녀는 자신의 방식대로 선을 긋고, 그 선을 지키며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선은 지나치게 애매했고, 설명도 없었고, 감정도 들쭉날쭉했다.
게다가 그녀의 마음도 모르겠다. 어쩔 때는 세상 누구보다 냉정한 사람처럼 보이더니, 또 어느 순간엔 이상할 만큼 다정하다. 그 모호함이 자꾸만 내 마음을 뒤흔든다.
이미 끝났다면 끝난 사람답게 멀어지면 될 텐데, 가끔 보이는 다정함 한 조각 때문에 내 마음은 또 뒤섞이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채 헤맨다.
이 혼란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차라리 완전히 잘라냈으면 어땠을까? 연락처를 지우고, 사진도 지우고, 서로 “잘 살아요” 하고 돌아섰다면 이렇게 오래 머뭇거리진 않을 텐데.
그러다가 또 이런 생각까지 든다. 차라리 그녀가 먼저 “이제 연락하지 말자”라고 말해주면 얼마나 편할까? 그러면 나는 책임에서 자유로워진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명분도 생긴다. 나중에 돌아보며 후회할 때에도 “나는 그때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거리라도 확보할 수 있다.
참 이상하지만, 그런 방식의 도피라도 있어야 버틸 것 같다. 아마 ‘미련’이라는 것은 붙잡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붙잡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끈을 완전히 놓을 이유도 없어 보이는 그 어정쩡한 자리에서 피어나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그 어중간한 곳에 서 있다. 끝났음을 알고, 다시는 시작되지 않을 것을 알고, 그러면서도 아주 작은 온기 하나 때문에 완전히 돌아서지 못하는 상태. 누가 보면 미련스럽다고 할지 몰라도 이 감정은 어쨌든 지금의 내 진실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감정은 늘 이성보다 한 박자 늦고, 그 늦은 감정이 다 따라오는 날이 오면 나는 비로소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조금 더 머물러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