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이야기를 읽고 느끼는 먹먹함이란
지은이 김초엽
7편의 단편 소설집
2025년 8월 출간
차례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양면의 조개껍데기
진동새와 손편지
소금물 주파수
고요와 소란
달고 미지근한 슬픔
비구름을 따라서
김초엽 작가를 “SF 대표 소설가”라고 표현한다. 맞는 말인데 나에게는 김초엽 작가가 마냥 SF 작가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SF’라고 하면 뭔가 거대하고 거창하고 번쩍번쩍 스펙터클 할 것 같은데, 내게 와닿는 김초엽 작가의 이야기는 고저가 크지도, 자극적이지도, 압도하지도 않는다. 잔잔한 일상 이야기를 풀어내듯 담담하게 전해진다. 그렇게 읽다 보면 편안함의 함정에 빠져든다.
팔랑팔랑 가볍게 책장을 넘기며 시작하지만 어느새 몰입하여 잠들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읽을 때는 무던하게 넘어가놓고 뒤늦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한다. SF 장르에서 흔한 것 같은 소재도 뻔하지 않은 이야기로 종결된다. 가상 세계의 이야기에 남겨지는 감정과 감각은 무척 현실적이다. 아마 결국은 사람 이야기여서 그런 지도.
이번 소설집에서 개인적으로는 [수브다니의 여름휴가]가 가장 흥미로웠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를 따라가는 동안 머릿속에서 화려한 비주얼이 얽히고설켜 흥미진진했다. 포장된 상자 속의 상자 속의 상자를 풀고서야 진짜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읽고 난 뒤에는 쏟아지는 햇볕 아래 파도를 맞으며 홀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수브다니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는 얼마 동안 그렇게 있을 수 있었을까? 그는 왜 그런 방식을 택했을까? 어렴풋이 헤아려보는 그의 생각과 감정들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제목의 주인공은 수브다니인데, 수브다니가 직접적으로 알려 주는 건 없다. 그러니 정답 없는 생각만 길어질 수밖에. 여운을 곱씹는 내내 바다를 데우는 열기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표제작인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제목처럼 겉면의 이야기를 훑다 보면 열린 틈 사이로 진짜 이야기가 보인다. 하나이자 둘의 이런 이야기겠구나, 했는데 잔인한 사랑 이야기였다. 다자 연애 같으면서도 아닌 듯한 그 독특한 삼각관계 속에서 사랑이란 감정은 바다 위 윤슬처럼 잔잔하게 빛난다. 동시에 아래 깊은 곳에서는 쉽게 버릴 수도, 포용할 수도, 공명할 수도 없는 이중적인 내면의 자아가 밀고 당기며 물결친다. 과연 더 세게 파도쳐 고요한 수평선을 깨뜨릴 것인가. 반짝이는 해면을 결국은 새하얀 물거품으로 뒤덮을 것인가. 그 선택의 끝을 마주하기 위해 내달렸던 것 같다. 알고 싶은 마음은 확실하게 알기 어렵고, 알기 싫은 마음을 회피할 수 없다는 건 가혹한 것 같다. 타자와 생각과 감정의 공유를 이어가며, 같은 사랑을 하는 것 역시 나의 얕은 포용과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다. 아무래도 내가 하나의 인격체만을 가진 인간이어서 그럴지도.
이 외에도 소설집에 담긴 7개의 단편은 모두 각기 다른 세계관과 주제를 담고 있다. 스포가 될까 싶어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지만, 나로서는 감히 닿지 못할 세상으로 작가가 인도하는 대로 빠져들어 마음껏 유영했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아른아른한 잔상을 즐겼다. 김초엽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먼 미래에도, 드넓은 우주에서도, 이면 세계에서도, 허무의 세계에서도 우리는 살아갈 테다. 무지갯빛 감정의 나래를 펼치며.
이미 너무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김초엽. 부디 그녀의 세계가 고갈되지 않고 또 다른 세계로부터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가져오길 기대한다.
지나가던 어느 소시민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소하고 소소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