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이전의 철학 '마르크스'
최근 들어 MBTI라는 심리검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MBTI를 해본 것은 90년대 대학 취업센터에서 적성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입니다.
몇 달 전 약 25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MBTI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ENTJ라는 동일한 타입이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는데, External (외향성)로 표기되는 성격이 Internal(내향성)로 상당히 많이 이동했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사람들과 어울리며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던 과거와 달리 혼자 시간을 보내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으로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를 던져보겠습니다.
나의 성격은 타고난 것일까요? 아니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요?
2010년 겨울, 대한민국은 영화 '007'의 주제곡에 귀를 기울인 채 긴장된 침묵으로 김연아 선수의 연기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당시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는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스케이팅 능력과 동약적인 미모로 전 세계를 사로잡은 그녀는 단번에 '김연아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대한민국 최고의 Celebrity가 되었습니다.
한 영웅의 탄생 뒤에는 영웅이 탄생하기까지의 서사가 만들어지고, 영웅의 피나는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가 밝혀지는데요. 당시 유행하던 '아웃라이어'책과 김연아 선수에 대한 관심이 합쳐져 '1만 시간의 법칙'이 또 다른 열풍이 되기도 했습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씩 훈련하면 약 10년이 걸린다. 안데르스 에릭손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가 1993년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에릭손 교수는 실력이 상위권인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경우 20세까지 평균 1만 시간을 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능력은 타고난 재능보다 연습량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미국의 경영사상가 말콤 글래드웰이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연구를 인용하며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출처: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30690
1만 시간의 법칙은 '연습하면 누구나 대가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타고난 기질과 재능보다 환경과 노력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을, 더 나아가서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결과물은 환경과 개인의 의지에 의존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MBTI를 통해서 발견된 나의 성격의 대부분은 후천적인 것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현재에 존재하는 것의 반영이라 볼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이마저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사들끼리 자주 하는 이야기 중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말을 하는데,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이는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노력을 했기 때문이지, 태어날 때부터 공부 잘하는 DNA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반면, 세상을 구조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마르크스는 보편적 인간성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고 믿었습니다.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것은 한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마치 아프리카 흑인들이 선천적으로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라서 지적인 활동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인간은 오로지 자신이 속해 있는 계급에 의해서 생각과 행동이 정해진다고 보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사회집단이 역사적으로 변화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인으로서 '계급'에 주목했습니다. 그가 지적한 것은 인간이 '어느 계급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사고방식이 달라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출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_우치다 타츠루
이러한 아이디어는 영화 <기생충>에 잘 나타납니다.
극 중 주인공 기택(송광호 분)의 아내는 부자들의 착한 성품과 반듯하고 순수한 생활양식을 경험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돈이 다리미라고,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
영화 <쓰리, 몬스터>의 박찬욱 감독은 '착한 성격마저 부자들이 독점하는 세상이 슬퍼서 만든 영화'라고 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를 세습하면서 잘 교육받은 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매너가 좋고 젠틀하며 어려서부터 어려움 없이 자라니까 성격은 꼬인 데가 없다. 그러니까 부자가 착하기도 한 세상이다. 반면 가난뱅이는 더욱 박탈감이 커지고, 가난해서 성격이 더 나빠지기 쉬운 세상이 됐다. 21세기를 생각한다는 무슨 모임에 나가게 된 적이 있는데 재벌 2세, 의사, 변호사 등의 내 또래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들 부드럽고 예의바를 수가 없었다. 겉으로만 내보이는 모습이랄 수도 있지만, 속속들이 정말 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수히 많은 영화들에서 부자들은 돈 밖에 모르고, 자기중심적이며, 안하무인인 듯 묘사되지만, 실제의 현실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한 때 6호 처분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소년법원은 청소년 범죄를 1호~10호까지 나누어 처분을 하고 있습니다. 이중 6호 처분은 아동보호 시설에서 6개월가량 머물며 교육을 받는 처분입니다. 해당 청소년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많은 경우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그 환경에서 심리적으로 흔들리게 되고, 그러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기에 비슷한 경로로 범죄 청소년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적 측면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며, 별문제 없이 살아가는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자신의 공으로 돌릴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과연 한 개인의 생각과 행동의 결과물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을 발전시킨 것일까요? 아니면 후천적인 노력의 결과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