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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의 테이블 Aug 01. 2022

미셸푸코의 구조주의

미셸 푸코의 '역사적 구조주의'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  

제가 사랑하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은 이념, 인종, 언어로 인해 갈라진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한국전쟁 시기입니다. 남과 북이 목숨을 빼앗는 전쟁을 벌이던 때에, 어느 깊은 산골에 위치한 동막골의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난 줄도 모른 채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동막골에는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이 있습니다. 소위 미친*이라 불리는 여자입니다.

머리에 꽃을 꽂은 여인은 어느 곳에서도 격리되거나 배척받지 않고, 마을의 일원으로서 살아갑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돕고,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자신의 역할을 합니다.

제가 어렸을 적, 우리 마을에도 미친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 식구가 같이 살았는데, 엄마는 무당이었고, 아들과 딸이 정신이상자였습니다. 어렸을 적 기억으로는 그 두 사람이 상당히 폭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귀신에 들려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신이상을 겪던 그들이 얼마나 심한 괴롭힘과 고통에 시달렸을지 상상이 됩니다.


제가 아는 한 목사님께서 정신병원을 방문하셔서 환우들과 예배를 드리는 일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목사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정신병원을 다니면서 느낀 게, 예전에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이 우울증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밖에 돌아다니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원에 있는 것 같아요."


푸코는 자신의 책 <광기의 역사>를 통해서 '광기'의 기준이 시대마다 다르다는 점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오늘에 사용되는 '정상'이라는 말은 과거에는 전혀 다른 말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푸코는 '당연하다'라는 것이 시대마다 다르게 변천되어 왔으며, 한 시대의 구조 안에서 '당연하다'는 것은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개념의 계보학적 방법을 통해 당연한 것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였으며, 이것이 푸코 철학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미셀 푸코가 살던 시대의 상황

푸코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상황은 부조리한 구질서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희대의 사상적 반항아라고 할 수 있는 푸코의 지적 영향력은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에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그가 철학을 영원한 비판으로 이해하고, 그러한 철학관을 철저하게 구현하는 열정의 삶을 살았다는 데에 기인한다."


"푸코는 서양의 세계관에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던 여러 이념적 전제들의 은폐된 이면과 계보를 현미경처럼 자세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러한 전제들에 귀속되어 왔던 정당성과 보편 타당성의 허구적 성격을 폭로한다"

_<현대철학의 흐름들> 동녘, 미셸 푸코, 윤평중


당시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68 혁명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68 혁명의 대표적인 슬로건은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입니다.

"2차 대전 직후 10만 명도 채 되지 않던 프랑스의 대학생 수는 베이비붐 세대 성장으로 60년대 말에는 65만이 넘어섰고, 이 과정에서 교원 부족, 대형 강의 위주의 암기·주입식 교육, 교수들의 권위주의 등 다양한 문제가 응축됐다.

그런 와중에 기숙사 통금과 남학생들의 여자 기숙사 방문 금지 규정 등 당시 일견 사소해 보이기도 한 일상의 억압들이 자유를 갈망하던 학생들의 분노에 불을 댕겼다.

특히 68의 발단이 됐던 낭테르대는 빈민촌으로 둘러싸인 열악한 교육환경 탓에 학생들의 저항 심리를 더욱 부추겼다.

세대갈등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68세대의 부모들은 대부분 1910∼1915년 태어나 1차 대전에서 부모를 잃고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경제위기를 견뎌냈지만,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수없이 많은 동년배가 처참히 죽는 것을 목도하고, 나치와 부역 정권인 비시 정부 치하에서 숨죽이며 생존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프랑스가 해방된 뒤에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래서 그 어떤 세대들보다 '프랑스를 내손으로 다시 일궜다'는 자부심이 강했다.

이른바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1945~1975) 시기 프랑스 가계 소비는 한 세대에 2.7배나 증가할 만큼 이들은 성장의 달콤한 과실을 소비자본주의로 맛본 세대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들은 대학생 자녀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반항심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기성세대가 물질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자본주의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고 여겼고, 물질적 풍요보다는 권위주의 타파, 정신적 자유를 갈망했다.




1968년 5월 프랑스 학생운동 지도부. 가운데가 낭테르대 점거 시위를 주도한 다니엘 콘 벤디트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런 세대갈등과 긴밀히 맞물린 것은 바로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이다.

1968년은 1·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샤를 드골이 1958년 제5공화국을 세운 지 10년이 지난 시점이다. "10년으로 이제 충분하다"는 유명한 구호에서 볼 수 있듯이, 청년들은 드골로 대표되는 권위주의와 가부장적 질서를 끌어내리려 했다.

드골은 위대한 프랑스의 재건을 내걸고 경제성장을 이끄는 한편, 전후 강대국들 사이에서 프랑스의 위상을 독보적으로 높인 거물이었지만, 그의 집권 기간 사회는 전반적인 보수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특히 대통령에게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되고 의회가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짓눌리면서 의회 민주주의의 위기가 부각됐다.

이런 가운데 1960년대 후반 실업률 증가 지역 간 불균형, 외국인 저임금 노동자 문제 등 경제문제 역시 권력에 대한 저항 심리에 기름을 붓는 요인이 됐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80421004100081 


푸코는 자유를 향한 혁명을 인류 역사의 발전이라는 관점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그는 마르크스 주의자였고, 헤겔 주의자였습니다.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68 혁명을 전통과 윤리가 붕괴되는 사건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시대가 낳은 가출 청소년이라 생각합니다. 혁명이 일어날 시대의 사회적 구조도 건강하지 못했지만, 혁명을 일으킨 주체도 건강한 방법과 방향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의 도구로서의 계보학

푸코는 계보학적 방법은 쉽게 말하면,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너를 조작해서 그런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한 사회에는 도저히 깨서는 안 되는 금기들이 있습니다.

근친상간이나 부모 살해와 같은 것들은 절대적 금기 규칙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이냐는 의문을 갖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푸코는 한 사회가 갖는 당연한 규칙들은 옳고 그름의 여부를 떠나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받아들여진다면 해당 규칙의 절대성은 상대적인 것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푸코는 광기, 질병, 여러 인문 과학의 성립, 범죄, 성 등의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영역에서 서양인들이 지금 갖고 있는 지배적 관념이 생성되어 온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모든 근원 철학의 역할을 해명하고 그 정당성에의 요구를 전복시키려 한다. 모든 근원 철학의 역할을 해명하고 그 정당성에의 요구를 전복시키려 한다. 각 시대에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담론의 체계는 그 시대에 특유한 권력-지식 연계의 사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푸코는 일상적인 생활양식이나 지식 체계를 통해 은밀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행사되고 있는 권력의 자기 정당화를 해체하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는 표준적인 삶의 방식이나 사유 양태를 뒤집어서 끊임없이 '박으로부터 사유하려'하며 그 한계들을 넘어서려 하기 때문에 지배적인 담론들이 설정한 제한을 위반하는 시도는 푸코 철학의 근본적인 에토스인 것이다."

출처: 윤평중, 미셸 푸코 298~299p.


"계보학은 전통적인 역사학의 틀을 거부하는 일종의 반 역사로서, 주체가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역사를 창조하며 조율해 나간다는 식의 전통적 역사 철학관과 총체성의 이념을 거부한다. 니체로부터 크게 영향받은 푸코의 계보학은 따라서 단절과 불연속성에 주목하며, 광기, 질병, 성, 범죄, 육체 등에 대한 우리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특징들의 기초를 재구성하고 해체시킨다."

출처: 윤평중, 미셸 푸코 298~299p.


권력과 지식의 연계 Play

푸코는 현대의 억압이 권력과 지식의 연계를 통해서 발생했다고 보았습니다.

유튜브의 동영상 중에 'like a girl'이라는 영상이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jJQBjWYDTs


20대, 10대, 10대 미만의 남녀에게 '여자처럼' 달려보라, 싸워보라 등의 요구를 하고 관찰하는 영상입니다.

10대, 20대들은 '여자처럼 달리라'는 요구에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전통적인 여성?처럼 달립니다.

하지만 10살 미만의 아이들은 '여자처럼' 달리라는 말에 그저 자신의 평소 달리는 모양대로 달리고, '여자처럼'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여자처럼'이라는 말은 한 사회의 시선을 담은 구조입니다.

"너는 여자가 왜 그러니?"

"여자답지 못하게 무슨 태도가 그래?" 등의 말은 어떠한 태도를 강요하는 문장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강요라는 것이 늘 나쁜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이 제가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닌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늘 좋은 성향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구조와 권위 아래서 교육되고 배워야 하는 존재입니다. 좋은 가르침도 때로는 '강요'로 느껴질 수 있기에 '강요'라고 느낀다고 해서 언제나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앞선 문장들은 한 인간 존재를 사회의 특정한 위치에 묶어두기 위한 의도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한 인간 존재의 내면의 풍성함을 드러내 주기보다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 살게 하려는 듯합니다.


푸코는 이러한 지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식이 권력에 복종하고, 권력은 지식을 이용하여 구조를 만듭니다.

진실이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고, 거짓이 하나의 구조가 되면, 불의한 일들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됩니다.


우리 사회도 언론과 권력의 유착 관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두 그렇습니다.

어떤 진보 언론은 작정하고 진보의 편을 들고, 보수 언론은 묻지 않고 보수의 편을 듭니다. 진리를 서로의 싸움에 유리 한대로 사용할 뿐, 진리를 위해서 싸우지는 않습니다.

과연 푸코는 이러한 지점에서 자유로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그가 지적했던 지점들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 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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