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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의 테이블 Aug 25. 2022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현대철학의 개념들

道可道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장자 <도덕경>은 '도가도 비상도'이라는 문구로 시작합니다. 

 '도를 도라고 부르는 순간, 그 도는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1) 도를 2) 도라고 부른다고 할 때, 

1) 번 '도'는 항상 그러한 도이며, 2) 번 '도'는 인간에 의해서 규정된 도를 의미합니다. 

'부른다'라는 것은 언어를 사용하여 규정하는 행위이며, 규정한다는 것은 인간이 규정할 수 있는 능력 안에 '도'를 제한하는 것이 됩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고 해봅시다. 


"너 성윤이 알아?" 

"응 알지, 왜?" 


"너 걔 어떻게 생각해? 걔 괜찮아?" 

"응 걔가 괜찮은 편이지" 


"그래? 어떤데?" 

"걔가 착하고, 친절하고, 좋은 애야" 


위 두 사람은 성윤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성윤이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착하고, 친절하고, 좋은 애'라고 말했습니다. 


착하고, 친절하고, 좋은 애


과연 이 말은 성윤이에 대해서 얼마나 충실히 설명하고 있을까요? 

또한 착하고, 친절하다는 언어적 의미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할 때, "와~ 멋지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감탄사로 우리가 경험하는 내적 느낌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경험하는 바는 그 말보다 더 클 수도 적을 수도 있습니다. 


'도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도 그 자체는 인간의 생각과 언어를 넘어서는 더 큰 차원의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인식론적 '코페르니쿠스의 전환'

코페르니쿠스는 1473년 폴란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부유한 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1473년 당시 진리처럼 믿어온 지구중심설(천동설)의 오류를 지적하고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주장하였는데, 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부릅니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상에 반한 것으로서, 이는 당시 성경의 해석에 의해서 뒷받침되었습니다. 

아래는 당시 상황을 설명한 글이며 조선일보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으며 우주의 아주 작은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런 지동설은 17세기까지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되는 위험천만한 사상이었다.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기독교가 자신의 교리의 정당성을 천동설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역사적으로 볼 때 천동설은 기독교와는 상관없는 이론이었다. 천동설은 기독교가 발생하기 전인 기원후 1세기경,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K. Ptolemaeos·85~165)가 만들어낸 우주 운동의 원리였다. 그가 자신의 천동설 이론을 집대성해 쓴 책은 사후에 '가장 위대한 책'이라는 뜻으로 불리우면서 신성시됐다.

중세 초기 서구 사회를 지배한 기독교는 자신들의 교리에 정당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학문적 토대가 필요했고, 이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인간 중심적인 기독교 사상과 아주 잘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주 전체가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그러면 인간의 위대성과 더 나아가 이런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위대성이 더욱 강조되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천동설은 서구사회에서 기독교와 함께 천년 이상 절대적 진리로 군림해왔다.

당시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일은 당연히 이단으로 몰릴 만큼 위험했다. 그러나 역사에는 '권력'에 순응하기보다는 '진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지동설 역시 이런 용기 있는 네 명의 과학자 겸 성직자에 의해 이루어진 과학이론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전환은 중심의 전환입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부터 태양이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중심이 이동되는 전환입니다. 


칸트는 '인식론'에 있어서 이러한 전환을 가지고 왔습니다. 

칸트 이전에는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 '안다'라고 할 때, 외부에 있는 대상이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그대로 들어와 인지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물은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지되어 생성된 '개념'이 100% 외부로부터 온 것인지(경험주의), 아니면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통해서 형성된 것인지(합리주의)에 대한 논쟁이 있었을 뿐 존재하는 대상을 그대로 인식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칸트로부터 '인식론'의 일대 전환이 일어납니다. 


지식은 세계로부터 출발해 인간에게서 완성된다

칸트는 1724년에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그곳을 떠난 적이 없으며, 청교도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칸트 이전에는 인식은 '대상을 인식'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출발이 안에서 밖이냐, 밖에서 안이냐를 놓고 싸웠지, 인간의 밖에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올바른 인식 또는 진리라는 생각에는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칸트는 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붕어빵을 생각해봅시다. 추운 겨울에 거리를 지나다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붕어빵은 참 큰 유혹입니다. 

붕어빵 한 봉지를 사서 들기만 해도 손이 따끈따끈하죠. 

붕어빵 한 개를 집어 들고 고민합니다. "머리부터 먹을까, 꼬리부터 먹을까?" 

붕어빵이 붕어 모양인 것은 '붕어빵 틀' 때문입니다. 틀이 빵의 모양을 결정합니다. 

그렇다고 반죽이 없으면 붕어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빵틀이 없어서도 안되죠. 

붕어빵은 빵틀의 모양과 반죽의 만남으로 형성됩니다. 


칸트는 지식이 붕어빵처럼 '인간의 인식 틀 + 감각의 재료'로 만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마주하면 우리에게 무엇인가 인식이 됩니다. 쉽게 말하면 눈을 뜨면 뭔가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그것이 무엇인지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건 컵이구나, 이건 책상이구나" 

"컵이 책상 위에 있구나"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컵과 책상이 들어옵니다. 이때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는 인식의 틀이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감각 재료에 지식의 모양을 만들어냅니다.


"이건 컵이구나" 


감각을 통해서 들어온 둥그렇고, 손잡이가 있는 모양을 순간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개념적으로 무엇인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등의 틀을 통해 '컵이 있다'는 사실을 재빠르게 인지해냅니다. 



출처: 군나르 시르베르크 '서양철학사' 


위의 도표는 인식의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나의 대상(물자체: 인간의 인식 틀이 씌어지기 전의 사물 자체)이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면 인간은 고유의 인식 틀(질서 부여 능력)을 통해서 개념화(지식화)합니다. 


인식 형식(틀)

그렇다면 인식의 한계를 정하고, 인식의 최종 결과물을 결정하는 '인식 형식'은 무엇이 있을까요? 

칸트는 인간의 인식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직관적 형식과 '인과성'과 같은 범주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직관적으로 인지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고, 선후 관계를 인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간 안에서 무언가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출처: 군나르 시르베르크 '서양철학사'


인간의 의식은 무언가가 감각에 포착되면, 인식 형식(틀)을 통해서 개념화합니다. 

이 개념화 작업이 공간과 시간을 대표하는 '판단 형식', 그리고 '12개의 범주'의 만남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제 '지식'은 단순히 외부의 대상이 우리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뭐라 말할 수 없는 사물 그 자체가 인간의 인식 틀을 통과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질문이 던져집니다. 

"인식 이전에 사물 그 자체는 어떠한 상태인가?" 


물자체 (Das Ding an sich , 物自體)

칸트 이전의 철학적 인식론의 탐구는 '대상을 어떻게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존재하는 것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이는 회화의 역사에서 회화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 했던 역사의 맥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칸트 이후의 인간은 '사물 그 자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사물 사이에 '인식 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틀'을 통해서 사물을 볼 수 있을 뿐, 그 사물 자체 -> 물자체는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의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 transcendental' 영역이 놓여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세계 속에서 살지만, 세계 그 자체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중세에 스콜라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최대한 '하나님'을 설명해보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입니다. 칸트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사람들의 시도가 일견 의미가 있지만,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시도입니다. 왜냐하면 '신'은 인간의 인식의 틀로는 포착할 수 없는 '초월적' 또는 '물자체 그 존재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지점에서 칸트를 비판합니다. 칸트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후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결국에는 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오해입니다. 칸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모든 면에 도달할 수 없으며,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신학적 내용과 교리를 마치 하나님인 것처럼 말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그저 교리이고, 신학이지 하나님을 그것 안에 담아둘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칸트가 '신'의 존재를 부정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실천이성비판'을 통해서 '설명할 수 없는 초월적 영역'으로부터 우리 인간에게 '올바른 삶'에 대한 요청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설명될 수 없으며, 그저 '당연한 것'으로서 정언적이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를 '칸트의 윤리론'으로 불립니다. 


물론 칸트의 이 설명으로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모든 면을 설명할 수 없고, 그 깊이를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칸트는 철학자로서 인간의 이성의 한계와 초월의 세계, 그리고 그 초월의 세계로부터 우리에게 요청되는 바가 '분명히 있다'라는 주장을 통해서 인간의 이성안으로 구겨저 들어가는 세계를 구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인식을 넘어서는 하나님

장자는 칸트의 저서를 알지 못했지만, 인간의 이성이 세계 그 자체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장자의 말을 칸트적으로 옮겨본다면 '물 자체를 인식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물 자체가 아니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의 언어로 바꿔어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전부일 수가 없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성으로는 그분의 이해가 한계적이고,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방식으로의 만남을 통해서 그분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그 방식이라면 기도함과 실천함일 것입니다. 모든 감각을 닫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서서 그분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어야 하며, 우리의 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역동적 묵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성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하려는 노력 + 이성의 한계를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님을 기도 가운데 만남 +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몸을 통해 현실이 되도록 하는 실천


이 종합적 삶의 양식 속에 하나님을 바로 알아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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