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를 꺽는 사람들

삶을 돌아보는 철학 동화

by 진리의 테이블

마을 동쪽에는 커다란 강이 있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오고 가며 이야기 나누는 곳.

가족들이 먹을 물고기를 주는 곳.

논과 밭에 필요한 물을 나눠주는 아름다운 생명의 강이 마을 동쪽에 흐르고 있었어요.


“충식아 수영하러 가자”

강아지의 긴 혀가 땅바닥을 날름거리는 무더운 여름.

아이들은 수영하기 위해 동쪽 강으로 모여들었어요.

“와! 시원하다.”

강가 커다란 바위 위에서 물 위로 뛰어드는 아이.

강바닥으로 잠수하며, 예쁜 돌을 찾는 아이.

마을 사람들은 동쪽 강을 즐거워하며 함께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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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강 건너에 커다란 건물이 하나 생겼어요.

철로 만든 높은 벽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그 가운데 아주 작은 문 하나가 있었어요.

이 작은 문 외에는 어느 곳으로도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곳이었어요.

건물의 높은 꼭대기에는 화살촉처럼 생긴 방이 하나 있었어요.

그 방 안에는 보일 듯 말 듯한 커다란 눈이 있었는데, 무서운 눈초리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어요.

어느 날, 커다란 눈이 깜빡였어요. 그러자 작은 문에서 검은 개들이 나와 땅을 파 헤치고, 커다란 하수관을 묻었어요. 하수관에서는 검고 진득한 젤리 같은 것이 나와 강으로 흘러 들어갔어요. 사람들은 검은 건물 주변에 가지 않았어요. 보기만 해도 으스스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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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 하수관 주변에는 갈대가 자라기 시작했어요

밑동은 검은색이며, 키가 2m 가까이 되는 커다란 갈대였어요.

갈대는 매일 하나씩 늘어나 검은 건물의 앞을 가득 채우게 되었어요.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갈대밭에서 울음소리인지, 비명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어요.

갈대밭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마을 사람들은 배를 타고 갈대밭 가까이 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곧 더 많은 사람들이 갈대밭에 가까이 가게 되었어요.

이상하게도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은 양손에 갈대를 한 가득 꺾어 집으로 가져와 몰래 태우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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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에는 무언가 적혀 있었어요.

갈대의 검은 밑 둥에는 마을 사람들의 이름과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이 적혀 있었어요.

진수가 철수를 때린 것이 적혀 있었어요.

영미가 현진이를 미워한 것이 적혀 있었어요.

하수관 앞에 갈대에는 마을 사람들의 잘못이 하나도 빠짐없이 적혀 매일매일 자라났어요.

마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알까 두려워, 매일매일 갈대밭으로 가서 갈대를 잘라 태웠어요.

이제 동쪽 강에는 수영하며 노는 아이들도,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낚시를 하는 아빠도, 논과 밭에 물을 대는 사람도 없었어요.

대신 사람들은 갈대를 잘라내느라 정신이 없었고, 서로서로 만나지 않았어요.

그렇게 마을은 점점 죽어가고 있었어요. 마을의 이장님은 죽어가는 마을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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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이장님은 갈대에 이름이 적히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이상하게도 그 사람만이 잘못이 적힌 갈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이장님은 우연히 길에서 그 사람을 만났어요.

잘못이 없는 사람은 마을을 다니며 외쳤어요.

“여러분 자신의 갈대를 꺾지 마세요. 갈대를 꺾어도 다시 올라올 뿐입니다.”

잘못이 없는 이 사람은 매일매일 마을을 다니며 소리쳤어요.

마을의 이장님이 이 사람에게 물었어요.

“그런 당신은 뭐 뾰족한 수라도 있소? 갈대를 나지 않게 할 방법이라도 있느냐 말이오?”

“예,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적힌 갈대를 태우지 말고, 누구든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의 갈대를 꺾어 태워버리세요.”

“뭐요? 내 잘못이 적힌 갈대가 아니라, 나에게 잘못한 사람의 갈대를 태워버리라고?”

“예,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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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의심했어요.

과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갈대를 꺾어 태워줄지 믿을 수 없었어요.

이 모습을 본 잘못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배를 타고 갈대밭으로 갔어요.

그리고는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의 갈대를 움켜쥐고 그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어요.

“내가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리고는 갈대를 뽑아 태워버렸어요.

잘못을 용서받은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어요.

“저의 잘못을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용서받은 사람은 또 다시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의 갈대를 움켜쥐고 말했어요.

“내가 당신을 용서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씩 다른 사람의 갈대를 태우며 서로 용서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갈대를 태워줬음에도 용서를 구하지 않은 사람의 갈대는 다시 생겼어요.


얼마 후,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벌어졌어요.

동쪽 강 맞은편 하수관 앞에는 갈대밭이 사라졌어요.

가끔 갈대가 자라기는 했지만, 곧 갈대는 꺾이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동쪽 강은 다시금 수영하는 아이와, 낚시하는 아빠와 논과 밭에 물을 대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잘못이 없는 사람은 이 모습을 보면 행복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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